경주에 이은 포항의 지진으로 그동안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이번까지는 그 피해가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지진에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신속히 피해자 지원 대책은 물론,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철저한 점검을 할 때다. 또한 미뤄왔던 전 사회적인 지진 안전 점검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지진 이후 더 걱정되는 원전들
심상치 않게 이어지는 지진에 대비하는 것도 힘든데, 원전 안전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원자력계와 보수 정치인들은 이번 지진으로 오히려 원전이 지진에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지진이라는 재해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가 혼재된 이런 상황 속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3개월 동안 진행된 공론화 과정 동안 특히 안전의 문제, 지역주민 피해 및 대책 등이 충분히 논의되었는지 살펴보면서 관련 논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매몰비용과 전력 생산의 안정성에 대한 주목도에 비해 역시 절대적으로 재해 위험성과 원전 안전성에 대한 주목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알맹이가 많이 빠진 공론화
이번 공론화에 대해 탈핵운동진영과 시민사회 안에서는 결과도 그렇지만, 숙의민주주의로서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공론화위원회의 설계부터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건설 중단과 재개라는 선택지를 결정하는 것에 집중해 보완책들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는 비판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단적으로 탈핵운동 진영은 '전력공급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역주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이번 공론화에서 원전으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될 지역주민들의 의견이나 대책 마련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안전 문제 역시 전력공급이나 경제성 문제 등에 묻혀 제대로 검증되거나 논의되지 못했다.
시민참여단 구성에서도 이런 문제는 분명했다. 신고리 5·6호기로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지역과 미래세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시민참여단 구성에서도 주민등록 통계에 근거해 지역과 성별, 연령만 반영되었을 뿐 지역과 미래세대에 대한 안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인구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50, 60대가 이 문제의 결정 권한을 가장 많이 행사하게 되었다.
어렵지만 가야 할 시민참여, 숙의민주주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론이 나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탈핵운동진영에게 여전히 이 문제는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의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다', '정부가 책임 있게 공약사항을 이행했어야 한다', '의도가 불순한 공론화는 수용하지 않았어야 한다',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등의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여러 한계와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너무 쉽게 급하게 진행된 문제도 있었고, 탈핵운동진영의 준비도, 역량도 부족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전체를 무의미했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나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과정이 과거 에너지정책 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던 시민참여를 가능케 했다는 점과 숙의민주주의를 시도한 점은 성과를 이어나가야 한다. 과거 밀실에서 정부의 입장에 선 소수의 전문가들이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시민에 의사와는 무관한 결정을 해온 역사를 멈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단기간이었지만, 원자력발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들이 관심과 고민을 나누는 계기도 만들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잊혔던 원전 문제를 전 사회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영향력이 강한 몇몇 보수언론이 편향되고 왜곡된 기사만을 생산해 양쪽의 정보를 균형 있게 전달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번 공론화 경험을 통해 시민참여 의사결정 방식과 숙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으며, 그 준비도 부족함을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세밀한 평가와 우리 현실에 맞는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방식 등에 대한 연구와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공론화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허가 심의 당시부터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다수 호기의 안전성 평가, 인구 밀집지역 다수 호기 건설,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 주민 수용성 부재, 지진 안전성 문제 등의 문제적 이슈가 계속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거나 미뤄진 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6년 6월 23일 다수결 투표로 건설허가를 승인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이후 3달여 만에 발생한 경주 지진을 통해 지진 안전성 문제는 재부각됐다. 포항과 경주 지진이 일어난 곳은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양산단층대와 인근에 확인된 활성단층만 62개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는 부재하다.
현재 가동 중인 대부분의 원전은 내진설계가 규모 6.5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최대지반가속도 0.2g에 대비되어 설계되어 있다. 신고리 5·6호기와 같은 건설 중인 원전들은 더 강화된 규모 7.0 지진에 0.3g로 내진 성능이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반도에서 최대발생가능 지진 규모가 7.0 이상 7.5 수준까지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현재 원전은 20~30배 낮게 내진 설계가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원전의 내진설계를 0.3g로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부족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경주에 있는 월성 1~4호기의 경우에는 원자로에 해당하는 압력관 자체가 내진 성능을 근본적으로 강화시키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이번 포항 지진은 규모 5.4였지만, 최대지반가속도는 0.58g를 기록한 곳도 있어 규모 7.0=0.3g 등식마저 깨뜨렸다. 규모가 작은 지진에도 더 많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경주 지진에 비해 포항 지진의 피해가 큰 것에 대해 포항지역이 퇴적분지로 연약지반에 의해 지진파가 더 증폭되었다는 점과 진원이 지표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결론은 어떤 형태로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전부터 제대로 챙기자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결정 이후 포항 지진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유로도 놓칠 수 없는 것은 바로 안전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분명하게 우리에게 준 교훈은 결코 인간은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술에 대한 맹신과 안전 신화에 사로잡힌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과거 지진 위험이 없다는 전제 아래 진행된 원전의 안전평가와 대책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동남부 일대의 원전에 대한 내진설계 및 지진 안전성 평가를 위한 긴급점검을 실시하자. 필요하다면 운영 및 건설도 중단하자. 모든 원전의 내진 성능 및 부지 안전성 평가 자료도 투명하게 공개하여 객관적인 검증과 재평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활성단층을 포함하여 최대지진평가를 새로 해야 하며, 내진설계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성 미달 원전은 조기 폐쇄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역시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예외일 수 없다. 위험을 뻔히 알고도 그것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살고 있는 382만 명의 사람들과 같은 부지 안에 이미 존재하는 8기의 원전을 고려하면 더욱더 안전성의 확인과 담보 없이 건설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에 우선해 안전부터 제대로 챙기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