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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를 어떻게 믿느냐고요?

[양지훈 변호사의 법과 책] <미스 함무라비>

슬픈 우리 역사에 가끔 등장했던 판사의 이미지는 순응하는 창백한 엘리트로 묘사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중앙정보부 직원이 법원에 상주하며 판결 자체를 감시하던 엄혹한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고문과 은폐, 조작으로 점철된 수사 기록을 아무 말 없이 순한 양처럼 받아들이던 그 법관들 말이다. 그들의 형사 법정에서는, 어떤 피고인들이 들어와도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면 주문 제작된 결론이 나오는 것처럼 '생산'된 유죄 판결이 있었다.

그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2차 인혁당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군사 정권을 전복하고 민중에 의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학생 데모를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여덟 명의 피고인들은, 1심-2심-대법원까지 한결같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국제법학자협회는 사형 집행이 있었던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치욕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사법 불신의 기원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사법부는 그 치욕을 극복하고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 있는가. 이제 법원은 물리적인 외부 세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시민들로부터 불신의 눈초리를 받는 것 같다.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과격한 논평 외에도, 실제 내가 '필드'에서 만나는 민·형사 사건의 당사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법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표시하곤 한다.

'대형 로펌 소속 상대방 변호사는 혹시 재판장과 친분이 있는 거 아닐까요?'

작은 회사에 속한 나는 이 때 법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뉴스에 가끔 나오는 판검사들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니 이를 성급하게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고, 우리 사법부는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집단보다 성실하고 도덕적이다.'

나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몇몇 판사를 제외하곤 실제 내가 '사법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행하는 재판들을 통해 만나는 법관들은 전체 3000여 명의 법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현직 부장판사가 쓴 소설, <미스 함무라비>

▲ <미스 함무라비>. ⓒ문학동네
그 고민의 와중에, 판사가 소설 형식을 빌려 법원 안팎의 이야기를 풀어낸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를 읽었다. 현직 지방법원 부장판사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판사들이 어떻게 일하고 생각하는지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이면 몇 번씩 법정에서 마주치면서도 몰랐던 그들 일상의 장면들을 보면서 묘한 관음증적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내 가상의 합의부를 배경으로, 한세상 부장판사와 임바른 판사(우배석), 박차오름 판사(좌배석)가 마주하는 사건들은, 저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서인지 너무나 현실적이다. 저자는 오히려 그 리얼리티를 조금이라도 감쇄해보기 위해 주인공 이름을 희화화하여 짓고, 각 에피소드들에 콩트적인 요소들을 가미한 것처럼 보인다. 원고가 지면의 제한이 있는 신문에 연재되던 것이어서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기승전결이 명확한 것도 읽기에 편했다. 아마도 저자는 시민들이 <미스 함무라비>를 많이 읽고, 사법부 구성원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개인적 시민으로서의 법관'으로 이해받고자 했던 욕심을 품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욕심을 통해 저자가 최종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재판하는 자의 한계와 숙명을 법관들 본인 역시 깊이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이 단순히 잘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한계를 엄중하게 깨닫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도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의 첫 부분, 초임 박 판사에게 법복을 주며 한 부장판사가 하는 말은 바로 저자의 것이다.

"그 옷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에 위임한 임무를 상징하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사시 수석, 연수원 수석 출신으로 등장한 오 부장판사 역시 자기 한계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다.

"난 우연히 공부 하나 잘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 직업을 갖게 되었죠. (…)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 속의 괴물을 들여다볼수록 내 안의 괴물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은 내 겉만 보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해요. (…) 처지가 바뀌었으면 나 또한 내가 재판하는 범죄자들과 같은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재판의 한계와 숙명

저자의 인식은, 에피소드 중간에 등장하는 에세이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법이나 재판이란 건,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안온한 중산층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하고, 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는 것이다. 법관의 판단이 도저한 한계에서 행해지는 것은 그들이 완전히 가닿을 수 없는 '진실'로부터 비롯된다. 진실이란, 사건을 더 직접적으로 다루는 검사나 변호인으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피고인 자신만이 스스로 무죄인지 유죄인지 알 수 있을 뿐이며, 그를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저 위의 신만이 아닐까.

그래서, 책의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한세상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한 부장은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 성적이 좋지 못하면서 정치에도 능하지 않아 법원 조직에서 무시당하지만, 무엇보다 서민을 이해하는 부장판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인간이 너무 오래 이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옷을 벗는다. 한 부장과 반대편에 서 있는 자는 성공충 부장판사다. 그는 동기 중 첫 번째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었고, 기자들에게는 폭탄주를 돌리며 오늘도 스마트폰의 건배사와 인기 유머 시리즈를 읊고 있는데, 투철한 국가관과 지역 대표성을 무기로 대법관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인물이다.

저자가 한세상과 성공충의 명확한 대비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어렴풋이 드러난다. 사직서를 던지고 마지막 재판을 마친 한 부장판사가 국민참여 재판의 배심원들에게 정중하게 고객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나는 그 장면이,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참여재판 제도와 시민 배심원들에 대한 저자의 사려 깊은 지지와도 같이 느껴졌다.

범죄를 저지른 전·현직 고위 법조인들이 구속되고 처벌받는 뉴스들을 지켜보는 것은 일개 변호사로서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들이 나의 선배라는 동류 직업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끔씩 만났던 사법불신이 현실에서 똑똑하게 증명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관과 판결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섣불리 내려지는 비난과 과도한 사회적 비판 앞에 서면, 나는 법조를 구성하는 변호사로서 법원을 변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 법원에는 한세상 부장판사와 같은 분들이 여전히 더 많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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