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분당만 되도 본전"이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민주당도 "쉽지 않다"고 발을 뺐지만 더 부담이 큰 쪽은 역시 민주당이다. 몇 석을 건지느냐 뿐 아니라 야권의 맏형으로 야권연대라는 또 다른 대의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기 때문.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더하다. 당 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이른바 '통합형 리더십'을 내세우고 있는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은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
후보 공천도 하기 전부터 당 안팎에서 나오는 만만치 않은 잡음은 부정적인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른바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손 대표의 온화환 리더십이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명분도 뺏어가고 실리인 공천권도 포기하라면, 민주당은 무얼 가지고 정치하나"
▲ 손학규 민주당 대표.ⓒ프레시안(최형락) |
이를 놓고 <조선일보>는 21일 "손학규 대표의 '통 큰 양보'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양보하는 이미지'를 통해 더 큰 것을 얻으려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현실과 명분이 같이 가야 합니다. 민주당을 기득권이라 부름으로써 명분도 뺏어가고, 실리의 문제인 공천권도 번번이 포기하라면 민주당은 무얼 가지고 정치하라는 겁니까?"
이 말은 역설적으로 4.27 재보선 국면에서 민주당이 처한 위치를 드러낸다. 지금 상태로는 민주당이 명분도 실리도 얻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선거라는 첫 시험대에 오른 손학규 대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손학규의 오랜 침묵, 김경수를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처음 실타래가 꼬인 것은 김해을이었다. 야4당의 야권연대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기도 훨씬 전부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김해을을 놓고 심각한 신경전을 겪었다.
일찌감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농업특보 이봉수 후보를 내세운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했다.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놓고도 "참여당 죽이기"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과 당밖의 친노 인사들이 '조정'에 나섰고 김 사무국장이 참여당과의 단일화를 통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방법까지 거론됐지만 참여당은 '이봉수로의 단일화'만이 정의라는 태도였다.
결국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의 간곡한 권유로 출마를 결심했던 김경수 사무국장은 지난 16일 "꽃보다는 거름이 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에서는 "김경수 국장이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표출됐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손학규 대표의 얼굴은 이 진흙탕 싸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원로들에게 조정을 부탁하는 등 '친노 그룹 내부 정리'를 기다렸다"지만, 결과적으로 손 대표는 김경수 사무국장을 지켜주지 못했다.
외려 상처만 깊어졌다. 김경수 사무국장의 사퇴 이전부터 시작됐던 참여당과 민주당 내 친노 인사들의 갈등은 김 사무국장의 사퇴 이후 더 깊어졌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은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민주당 친노들은 "참여당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21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서로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없었다는 건 오리발 내미는 격"이라며 "김경수 국장은 국민들에게 자식들 간의 재산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이 걱정스러워 불출마 길을 택한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참여당을 비판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김해을 공천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순천과 김해을을 모두 무공천할 수는 없다"며 "호남이라는 민주당 기득권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순천을 양보하고 김해을은 경쟁력 있는 후보로 단일화되도록 공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참여당의 양보 요구에 유력한 자당 소속 후보가 무릎을 꿇었음에도 '화끈하게' 양보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물론 "이봉수 후보의 낮은 경쟁력"이다.
순천 양보? 여전한 호남 의원들의 반발…"주고도 욕 먹을 수도"
순천도 마찬가지다. 전날 나온 '통 큰 양보' 발언에 대해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특정 지역을 양보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이인영 최고위원 등 다수의 연대연합 특위 위원들이 '순천 양보'를 주장한 바 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날도 "(순천과 김해을) 두 군데 다 양보하기는 어려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순천 양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이다. 이정희 대표가 이미 일찌감치 민주당을 향해 "지난해 7.28 재보선에서의 약속을 지키라"며 순천 양보를 요구했다.
순천 양보를 주장하는 두 세력의 이유는 같다. 순천은 민주당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지역이라는 것. 그러나 또 똑같은 이유로 반발이 거세다. 처음 순천 양보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터져나온 호남 의원들의 반발을 손학규 대표는 좀처럼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처음으로 야권연대 관련해 입을 뗀 이튿날에도 박주선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양보도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양보를 해야지 떼쓴다고 달래기 위해서 양보하고 큰 정당이기 때문에 떼어준다면 그것이 국민의 뜻에 맞고 유권자의 권리에 충실한 방식인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민주노동당은 또 그들대로 입이 나왔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당 대표가 순천을 언급하긴 했지만 우리의 기본 요구는 지난 7.28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지금까지도 그와 관련된 어떤 공식적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순천을 민주당이 양보한다 하더라도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허신행 전 농수산부 장관 등 민주당 예비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매우 높다. 이들의 무소속 출마까지 민주당이 막을 방도는 없지만, 이른바 '야권 단일 후보'를 제치고 이들이 당선될 경우 '야권연대'를 위한 양보의 상징성은 떨어진다. 실리는 얻겠지만, "주고도 욕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정치 좌초될까 두렵다"면?
물론 '은평을에서 양보한 다른 야당을 다음 보궐 선거에서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는 이른바 '은평을 합의'의 당사자는 손 대표가 아니라 정세균 전 대표다.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번 재보선의 성적표는 정세균 전 대표가 아니라 손학규 대표의 것이라는 점이다. 통합형 리더십, 온화한 리더십을 표방하는 손학규 대표의 '스타일'도 재평가될 것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21일 '4.27 재보선 승리를 위한 야권연합 논의'를 시작하자고 야4당에 제안했다. 공식적인 첫 만남인만큼 당 대표급의 회동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당 대표급 회동'은 무산되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자리가 순수한 세레머니가 되겠냐"며 당 대표 참석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 자리에서 다들 손 대표에게 어느 지역 내놓아라고 할 텐데, 현재로서는 준다고 할 수도 없고 안 준다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큰 틀에서의 '양보' 얘긴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말할 때는 아니라는 얘기다.
김부겸 의원은 "민주당이 포기할 게 무엇이냐"며 "각자마다 민주당에게 내놓으라고 하는데 어디까지 내놓아야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김 의원은 "기득권이라 한 번 매도할 때마다 진짜 기득권자는 두려움 때문에 한 명씩 돌아설 것이고, 매도당한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불쾌감 때문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날 것"이라며 "정작 연합정치 자체가 좌초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손학규 대표 역시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는 김 의원과 다른, 제1야당의 지도자다. 그의 좌고우면(左顧右眄)이 길어질수록, 김 의원의 말대로 연대의 명분도 실리도 잃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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