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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의 '희한한 나라 한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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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의 '희한한 나라 한국' 여행기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18>"짐승 나라가 그립다"

내가 그간 돌아다니며 쓴 '별난 나라'들의 이야기 '걸리버 여행기'(원제: 세계의 몇몇 먼 나라에의 레뮤엘 걸리버의 여행기)를 순수 동화로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최근 개봉된 영화 '걸리버 여행기'도 키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릴리파트 소인국 기행에, 브로브딘나그 거인국 기행 내용만을 약간 보태 동화처럼 꾸며져 있다.

그러나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는 모두 4부로 된 내 여행기의 1부와 2부로, 전체 소설의 절반정도에 불과하다. 아마도 키가 15cm정도의 난쟁이 나라나, 한 사람의 발걸음 폭이 9m에 이르는 거인들의 이야기가 어린이들의 꿈을 자극하는 내용이어서, 동화취급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여행기는 처절할 정도로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하는 풍자소설이다. 1부 소인국과 2부 거인국에 이어 3부는 날아다니는 섬나라의 이야기이고, 4부는 말이 사람을 사육하는 말의 나라 여행기다.

특히 4부는 추악하고 음흉하며 사악한 인간, 그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인간보다 훨씬 양질인 말의 지배를 받는 나라의 이야기다. 그 때문인지 오랫동안 많은 나라에서 나의 여행기를 동화로 각색해 펴내면서도, 이 4부는 신성모독 등을 이유로 삭제해 왔다. 인간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말이 사람을 지배하는 그 훌륭한 나라에서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했었다.

짐승일망정 말을 존경했다. 인간을 경멸했다. 따라서 내 여행기의 핵심부분은 4부에 있다. 인간이 얼마나 부정직하고, 위선과 가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탐욕스러운가를 지적해 내고 싶었다. 내가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 동안 내가 '별난 나라'들에 가게 된 것은 해적이나 풍랑을 만나는 등의 돌발사고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여행이었다.
▲ 영화 '걸리버 여행기'의 한 장면. ⓒ걸리버 여행기

그러나 이번 한국여행은 아시아의 동북쪽에 최근 '별난 나라'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고, 내 스스로 찾아 나선 여행이었음을 먼저 밝혀둔다. 한 마디로 한국은 희한한 나라였다. 지금까지 여행기에 나오는 나라들은 사람의 세계였건 짐승의 세계였건, 몇몇 수준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긴 했으나, 대체로 한 부류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내 보기에는 확연했다.

살아가는 행태가 다른 두 부류, 부유층과 서민층이 각각 자기 색채를 더욱 짙게 하면서 뚜렷이 구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대통령이 부유층 쪽에 서서 그렇게 구별해 놓았다고 말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부유층과 대기업은 고환율정책으로 뒤를 밀어주며 세금까지 깎아 주면서도, 서민층은 거의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내가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으로 간주되는 간접세가 지난해 국세수입의 52%를 넘어섰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 해인 2007년엔 47%남짓으로 직접세 비율보다 낮았으나, 3년 만에 5% 가까이 높아졌다고 했다. 내가 갔을 때도 구제역과 전세대란에 물가고까지 겹쳐 서민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국회에서 여당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도 서민들의 민생복지 예산을 무 자르듯 잘라버렸다 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부자들은 맹렬하게 더 부자되고, 서민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내가 말의 나라에 있을 때 주인 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기 인간 다섯 명이 있고 그들에게 50마리 분쯤 되는 짐승의 고기를 던져준다고 치자. 인간들은 사이좋게 나눠먹기는 커녕 자기가 전부를 독차지 하려고 싸움만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에게 먹이를 줄 때는 언제나 감시하는 말을 옆에 세워두고 서로 싸우지 못하게 한단다." 그러나 한국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과 식성이 강한 적은 수의 인간그룹이 있었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이라고도 하고 양극화가 심해졌다고도 했다.

물론 정부가 정책을 그 쪽으로 몰고 가면서 빚어지는 현상이었다. 일부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으나, 내가 알기로도 전세난리 일으키고, 물가 밀어 올리는 경제 대통령은 없다. 웬만한 나라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화나 인권, 환경, 국가안보, 살림살이 등에서 형편이 나아지는 법인데 이 나라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거꾸로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5년 동안 통째로 전세 내 사설(私設)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자기들만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거꾸로 가는 통치를 하는 것 같았다.

특히 대통령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특별한 기술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 정권 잘못하고 있다."면서 지적한 세 가지가 회자되고 있었다. 모두 거꾸로 가는 것들이었다. 민주주의 파탄, 남북관계 파탄, 서민경제 파탄의 세 가지였다. 남북관계와 서민경제의 파탄으로 서민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고들 했다.

이명박 정권에는 서민들을 몹시 기분 나쁘게 하는 심대한 도덕적 흠결이 풍토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솔선한 위장전입과 '군복 착용경력 없음'말고도, 청문회에서 줄줄이 보았듯이, 부동산 투기와 탈세에, 심지어 탈영에 이르기까지, 반(反) 서민적 딱지가 너무 많은 측근들의 이마에 붙어 나돌아 다닌다. 이런 흠결이 민주주의 시계를 아무 죄의식 없이 거꾸로 돌려놓은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 눈에도 시계는 너무 많이 거꾸로 돌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편채널이라는 낚시밥으로 이른바 보수 신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코가 꿰여 있었다. "이미 언론이 아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만큼 조중동의 보호를 받는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는 극우 인사의 평가도 나왔다. 방송 쪽은 폭력배가 생트집 잡아 매질하듯이 평정했다. 어거지로 죄를 뒤집어 씌워 KBS사장을 끌어 내렸으나, 형사재판 무죄 났고, 민사재판 해고취소 판결났다.

'인간'들이 벌인 일이었다. 내가 말의 나라에 있을 때 깊이 깨달은 게 있다. "모자라는 인간은 이성(理性)을 나쁜 일에만 쓴다." 허나 어쩌겠는가. 해고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1980년 전두환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에서 허 아무개가 "정치는 선전"이라 했다는 기록을 본 적 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아무 거칠 것 없이 진실과는 상관없는 '선전'을 멋대로 해대는 정치를 하고 있다. 방송과 이른바 보수 신문들이 함께 하는 '선전정치'다.

아랍에미리트(UAE)원자력발전수주 선전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고 했다. 기록을 보면 2009년 12월 27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UAE의 칼리파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전력사장과 UAE원자력 공사사장이 원전 수주에 합의하는 서명을 한다. 한국언론들은 '건국이래 최대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 '47조 원(400억 달러) 잭팟' 운운하며 이명박 대통령 선전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실제 수주액은 185억 달러였다. 그나마 그 중 100억 달러는 한국이 빚을 조달해 UAE에 28년간 대출해 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면서 특전사 병력도 파병해 주고 원전 완공 후 60년 가동도 보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이 원전의 공개 입찰에서 한국이 제시한 액수의 2배인 360억 달러를 써 냈다고 했다. 한국의 185억 달러는 그야말로 '비지떡'수주라는 소리다. 지난 50년간 핵 산업계에서 30~40년짜리 원자로의 평균 수명은 23년 정도였다. UAE와 약속한 60년에서 보장되지 못하는 나머지 기간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어찌되는 것인지 걱정들이 많다.

게다가 UAE는 한국보다 국가 신용등급이 2단계나 높아서, 한국이 비싼 이자 내는 돈 빌려다가, 싼 이자 받고 UAE에 빌려줘야 하는 손해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쉬쉬해 알 수 없고, 해외에서 조금씩 흘러 들어온다 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국제적으로 '봉'노릇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넘쳐나는 중이다. 그런데도 2009년 12월 한국 언론들은 'MB표 세일즈 외교의 결정판'이라고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선전'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채 한국 국민들의 품을 파고드는 게 내 눈에도 희한하게만 보였다. 언론이 장악돼 가능한 것 같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터넷 접속률이 가장 높은 IT강국이라고 말들 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을 심의하는 칼자루를 마구 휘두르고 있다. 최시중씨가 지휘한다고 했다. 급기야 최근 법원이 인터넷 심의는 불법이라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때 맞춰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이 2008년 이후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보고서를 썼다. 2008년은 이 정권이 들어선 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정직하지 못한 것 같다. 북한산에서 촛불시위를 바라보며 반성하고 소통을 다짐했다는데, 전혀 그런 사람 같지 않았다. 방송 장악하려 한 적 없다고 큰 소리 쳤다는 기록도 있다. '세종시 약속'어겼고, '과학벨트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동남권 공항'은 두 군데에 각각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게 다 공정치 못한 일들인데도 말은 달리했다.

엊그제도 그랬다. "공정사회는 정권을 초월해 실행돼야 한다."고 역설하는 TV뉴스를 보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의문이 많다.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의 배후를 수사하지 않는 것은 공정한가. 한반도 대운하 않겠다고 두 번이나 약속하고도, 사실상의 운하 삽질 계속하는 것은 공정한가. 주로 '형님'이나 영포라인·동지상고 주변으로 힘과 대형 공사들이 몰려드는 것은 공정한가.

그리고 인간보다 짐승을 더 사랑하는 여행객인 나 걸리버의 입장에서도 묻고 싶은 게 있다. 한 해 겨우 20억 원어치의 육류 수출이 보장되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백신접종을 거부한 채, 수 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300만 마리 넘는 짐승을 잔인무도하게 생매장하고, 고기와 우유관련 제품의 파동에 환경대란까지 부른 것은 공정한가. 자기들은 결코 공정하지 않으면서, 서민들에게는 공정하라고 거듭 다그치는 것은 공정한가. 짐승나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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