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의 사계절>(2017)을 보았습니다. 밀양 할매 김말해를, 저는 밀양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한겨레21>, <밀양을 살다-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봄 펴냄), <밀양전>(박배일 감독, 2013), <밀양아리랑>(박배일 감독, 2014) 등 시사 잡지와 구술 증언집과 TV다큐, 독립다큐 모두에서 그녀는 밀양의 상징처럼 등장합니다.
남편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목숨을 잃고, 첫째 아들은 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다치고, 둘째 아들은 생활고에 못 이겨 목숨을 끊은 비련의 여인. 평생 국가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온 그녀를 국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괴롭힙니다. 삶의 터전에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 것이죠. 게다가 말해의 집은 길목에 있어 늘 경찰들이 코앞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말해의 모습입니다. 이 드라마틱하고 슬픈 삶이 매체를 불문하고 반복해서 재현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밀양, 반가운 손님>(하샛별·노은지·허철녕 감독, 2014) 중 '말해' 편을 만들었던 허철녕 감독이 말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다큐멘터리 제작을 선언했을 때의 소란을 기억합니다. 주인공이 이미 여러 번 말해진 인물이라는 것, 말해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다른 감독이 있다는 것 등이 그 소란의 이유였습니다. 외부의 소란이 무색할 정도로 허철녕 감독은 먼저 찍고 있던 감독과 사이좋게 소통하며 밀양에 거처를 마련하고 밀양에 머물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사이 밀양에 송전탑은 섰고, 밀양을 찾는 발길은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허철녕 감독의 <말해의 사계절>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고마움이었습니다. 저도 한때 밀양을 다녔습니다. 다녔다는 단어를 쓸 정도로 시간을 쪼개고 일상을 조직해 가며 틈만 나면 밀양에 갈 계획을 세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밀양'이라는 단어는 슬픔 혹은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동반했습니다. 가끔 밀양 어르신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그리움에 눈물이 솟곤 했지만, 다시 그곳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밀양에서 그랬듯이 이제는 성주에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급작스럽게 사드를 배치하려는 국방부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미디어 활동가들과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그 곁을 지키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장소와 슬로건만 달라질 뿐 역사는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만 해도 '푸른영상'의 동료 감독들을 돕느라 동강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만났고, 대추리 너른 들판을 걸었고, 밀양의 산을 탔으니까요. 한때는 이런 반복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밀양에는 못 가면서 가끔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밀양을 떠올리다가 <말해의 사계절>을 보았습니다.
영화가 펼쳐 보이는 세상은 '말해의 사계절'이자, '밀양의 사계절'입니다. 가끔 등장하는 송전탑의 섬뜩함은 가슴 한쪽을 서늘하게 하지만, 송전탑이 섰어도 고사리는 통통하게 순을 내밀고 감은 주렁주렁 달립니다. 그림 같은 밀양의 풍경 속에서 말해는 삶을 들려주고 슬픔을 토합니다. 그 말들이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목숨이 너무 많은 기다. 외로워도 안 죽고 속 썩어도 안 죽고 많이 울어도 안 죽고… 고생해서 죽었으면 나는 열두 번이라도 죽었을 텐데."
경찰에게 푸지게 욕하는 말해의 모습은 여전하지만, 그녀의 삶을 일기로 남기고 싶었던 허철녕 감독 덕분에 말해의 어떤 모습들이 조금씩 스며 나옵니다.
너무나 작고 여렸던 그녀. 남편은 자식들 발바닥에 흙 한 조각 묻을세라 소중히 여기던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실종된 후, 그 여린 몸으로 홀로 두 아들을 책임져야 했던 세월. 어쩔 수 없이 모질어지고 말았던 그 긴 세월. 그래서 말해는 어린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모진 말들을 눈물 속에서 후회합니다. 말해가 가장 슬피 우는 곳은 송전탑 때문에 울타리에 갇혀 버리고 만 시부모의 무덤 앞입니다. 자본의 욕망은 철탑처럼 단순하고 굳건하지만, 그것 때문에 깨져 버리는 삶은 이토록 사무치고 처절합니다. 일방적인 국책사업과 처절한 주민 투쟁. 이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들이 반복해서 만들어져도 여전히 새로운 이유는 각자의 이름과 얼굴과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만드는 이의 마음과 시선 덕분에 이토록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봐 왔던 밀양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지금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기가 어디인지 저 때 무슨 일이 있어서 화가 났었는지 저도 아는 장면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만 영화는 그런 설명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해의 말, 말해의 눈빛, 말해의 표정을 소중하게 담아냅니다.
고사리를 꺾던 봄에 시작한 영화는 사계절을 돌아 이른 봄에서 끝납니다. 멀리 송전탑은 섰고, 이제 더 이상 말해의 집 앞에 경찰은 없습니다. 볕이 잘 드는 토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말해의 모습에 목이 멥니다. 습관적인 슬픔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 모습 또한 우리는 곧 잃을 것이고, 그래서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해를 만나러 가 볼까요? 마지막에 흐르는 자막으로 안내를 대신합니다.
"이제 밀양에는 송전탑 건설이 완료되고 밀양시 5개면 150세대의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한국전력과의 협의를 거부하고 원전 폐쇄, 송전탑 철거,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문의 : 허철녕 감독 sensorcub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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