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되었다. 저임금근로자의 보수수준을 높여 임금격차를 줄인다는 의도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은 찾기 어려운 반면,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unintended consequence)에 대한 우려가 높다. 가장 큰 우려는 제도의 본래 취지인 취약근로자 보호에 미칠 부작용이다. 저숙련 중장년이나 청년 등 시장교섭력이 낮은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될 때 1차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거나, 원래보다 더 질이 낮은 비공식부문 일자리로 옮기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 전체적인 고용에 어느 정도의 충격이 가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노동시장의 특성에 따라 차이 나는 관찰결과가 보고되고 있으나, 취약근로자가 우선적인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으로 수혜를 보는 근로자들과 그렇지 못한 취약층 간의 상충되는 결과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고민점인데, 이는 사실상 훨씬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적 변화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급속한 고령화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 함께, 우리사회의 취약층이 누구이며, 이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성적 시각의 전환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구구조와 인구구조, 맞벌이 증가, 서비스업 비중 증가 등 사회경제적 구조변화 속에서 저임금근로자가 곧 빈곤층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비단 최저임금뿐 아닌, 사회정책 전반의 방향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필자)
소득불평등 분석상의 '개인'
흔히 '취약층'은 소득수준이나 취업기회, 인적자본축적 등에 있어 시장기능이나 자력구제에 맡겨두지 않고 정책적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관찰영역을 노동시장만으로 국한하면, 취약근로자는 취업역량이 열악한 근로자나 임금수준이 낮은 저임금근로자, 고용보호 상의 지위가 낮은 근로자 등을 흔히 가리킨다. 반면, 사회전체로 시야를 확장하면, 소득분포 상의 하층인 빈곤층, 그리고 빈곤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인적자본투자 부족, 필수재의 소비 제한 등 주로 소득제약에서 초래되는 결핍으로 고통받는 계층을 가리킨다.
통상 소득의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취약층에 대해서는 소득을 직접 지원하고, 중산층 이상의 계층의 경우 소득지원보다는 해당 문제들의 병목을 해결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간주된다. 예를 들어, 빈곤층에 속하지 않는 청년구직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소득지원보다 구직활동에 연동한 지원이 제공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정책상의 지원대상은 주로 각 개인이 속한 가구의 소득이 낮아 각종 기회와 소비수준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경우를 뜻한다. 이는 소득불평등 분석의 기본 단위가 가구소득을 반영한 개인경제력이라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의 핵심이 경제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 격차이므로(Jenkins & Van Kerm, 2009), 임금이나 근로소득 등 근로자 개인을 기준으로 한 경제력이 아니라, 다른 소득원천과 가구 내 취업자 분포까지 고려한 가구시장소득 전체를 기준으로 한다. 바꿔 말하자면, 임금 분석으로 소득불평등이나 빈곤, 나아가 취약층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는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국민의 일부 소득에 대한 관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가구, 가족, 개인 모두가 중요한 관찰 대상이지만, 경제력이 심각하게 제약되어 지원이 필요한 취약층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 모두를 포함한 전체 국민 모두에 대해 각자 접근 가능한 경제력을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개인이 속한 가구의 가구원이 벌어들인 소득을 풀링한 후, 가구원 규모에 따라 지출소요가 달라진다는 점을 반영해 소득규모를 조정해 개인당 소득을 산정한다. 이는 통상 소득분배의 기준 지표로 사용되는 지니계수를 산출할 때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회정책에 있어 가지는 의미는 저임금과 저소득의 분리이다. 즉, 가구당 한 명의 소득창출자가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기에는 임금격차가 소득불평등으로 직결되고, 저임금이 빈곤을 의미했다. 그러나 고령화로 무소득자 가구가 증가하는 한편, 맞벌이 및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비중이 증가하면서 복수소득자 가구가 보편화되었다. 이런 변화는 저임금근로자가 소득지원의 대상과 동일시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며, 빈곤층을 구성하는 가구는 주로 무소득자 가구이거나, 저임금근로자 1인으로 구성된 경우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임금지지정책은 약자보호라는 목표를 부분적으로 수행할 뿐 중산층 이상의 가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비효율성 문제가 커진 한편, 시장교섭력이 취약한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협함으로써 가장 보호가 절실한 대상의 어려움을 심화시킬 위험까지 내포한다.
근래 빈곤 현상의 관찰
근래 임금격차 추이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임금격차 추이 상의 변화이다. 2008년 이후 1분위와 5분위, 5분위와 9분위, 1분위와 9분위 비율의 증가 추세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악화되던 임금격차가 2008년 이후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에 따르면, 1분위(저임금)/9분위 배율, 1/5배율이 감소하고, 5/9배율은 2008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첫 번째 패널). 이를 실질급여 측면에서 살펴보면 중간층과 상층 근로자의 급여보다 저임금근로자의 급여가 향상된 것이 격차 축소에 주로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우측 패널).
이에 대해서는 지난 시기 동안 가파르게 진행됐던 최저임금의 인상과 공적재원의 기여분이 큰 사회서비스 일자리 비중 증가 등이 임금분포 하단부 일자리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더 올림으로써 임금격차 축소에 일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저임금근로자 중 어느 정도가 소득하위에 속하는지를 노동패널 데이터를 통해 관찰해보면, 중위임금의 2/3 이하 저임금근로자가 하위 20% 저소득 가구에 속한 비율은 전체 근로자 중에서는 21.7%, 전일제 근로자 중에선 17.9%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자면, 시급 기준 저임금근로자의 약 78.3%가 가구소득 3분위 이상에 속한다는 것이다<표 1>.
임금분포와 소득분포 하단의 이러한 불일치는 유일소득자 중심 가구구조가 약화되는 장기적 구조변화의 결과로 인식된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취업자 없는 가구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전체 가구 중 취업자가 포함되지 않은 가구가 2015년 현재 18.1%인데, 소득 1분위에서는 77.4%에 달했다. 또한 전국 가구 소득분포가 이용 가능한 2006~2015년 기간 동안 1, 2분위 저소득층 가구 중 취업자가 없는 가구 비중이 각각 6.5%p, 5.0%p 증가했다(윤희숙, 2016).
여기서 본 바와 같이 가구별 취업자 분포는 소득분배 연구에서 인구구조의 변화나 가구구성의 변화가 소득분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주 경로로 중시된다(Burtless, 2009). 다시 말해서 취업자분포는 개인 간 임금격차 만으로 소득격차를 유추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유일소득자 가구 비중이 높던 과거와 달리 가구 내 취업자 수의 이질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임금과 근로시간 격차 이외의 요소들, 특히 가구구성 변화와 가구 간 취업자 분포 변화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커지는 것이다.
그 저변에 있는 동인이자 근래 우리나라 소득분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급속한 고령화이다. 우선 연령별 소득격차가 크게 차이 나며 연령별 인구구조가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도 증가하는 추세이다(홍석철․전한경, 2013; 성명재․박기백, 2009). [그림 2]는 노인포함가구와 미포함 가구 간 불평등 정도의 차이가 큰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빈곤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고령화는 주로 소득분포 하단에 큰 시사점을 갖는데, 현재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빈곤층 구성에서 고령가구주 가구가 비고령가구주 가구들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KOSIS에 따르면, 소득10분위의 평균 가구주 연령은 1990년 44세에서 2016년 49세로 5세가 증가한 반면, 소득1분위는 39세에서 65세로 증가했다[그림 3].
고령화가 소득분포 하단에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빈곤율 변화를 연령그룹별 비중과 그룹별 빈곤율의 영향으로 분해했을 때 뚜렷이 나타난다. 근래 고령자 비중이 늘어난 것은 빈곤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주요인이다. <표 3>에 의하면, 2006~2015년 기간 동안 비고령가구주 가구와 고령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모두 줄어들었으나, 빈곤율이 높은 고령자 가구주 가구의 비중이 증가한 결과 전체 빈곤율이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 전체 빈곤율이 0.7%p 감소한 것은 고령가구 비중 변화가 전체 빈곤율을 높인 반면, 고령자가구주 가구빈곤율은 전체 빈곤율을 낮춘 결과이며, 비고령가구는 그 비중이나 빈곤율 모두 전체 빈곤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고령가구의 비중이 빈곤율을 주도하는 이러한 현상이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유사한 분석을 이전 10년(1996-2006)에 적용했을 경우에는 비고령가구의 빈곤율 증가, 즉, 주로 노동시장 참여가구 간의 격차가 전체빈곤을 주도한 것과 달리 이후 최근에는 빈곤을 악화시키는 방향의 주요 동인이 고령가구의 비중 증가로 변화했다.
저소득층 친화 정책의 중요성
근래 소득불평등 추이를 불평등의 일관된 심화로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분포 하단의 빈곤층 구성이 인구고령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관찰된다. 노후소득보장의 제도적 기반이 약한 가운데, 세대 간 부양의식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것과 함께, 노동시장에서의 일자리 배분 문제 역시 주원인이다. 따라서 근로 능력을 보유한 가구원이 있는 무소득자 가구 비중을 줄이는 것, 유일소득자인 가구주가 저임금일자리에 교착돼있을 경우에는 가구 내 소득자 수를 늘리는 것, 노동시장에서 저역량근로자의 상향이동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빈곤정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2000년 이후 꾸준히 가파르게 상승한 결과, 이제 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16.4%의 인상 폭은 그나마 존재하는 일자리 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크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을 본고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기적 구조변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책결정자나 학계의 인식이 현실의 변화를 유연하게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되고 있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정책, 고용안정이 보장된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느라 그나마 존재하는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 정책, 가구별 취업자 분포를 보다 저소득층 친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책이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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