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검찰은 지난 정권 시절 MBC 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본격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몹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많던 노조파괴활동을 애써 외면해온 검찰이 이제 와서 MBC 사건 하나에만 달려드는 이중성 때문이다. 3주 전에도 노조위원장 후보를 KT사측이 내정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문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검찰과 경찰, 노동부는 일제히 뒷짐을 진 채 외면했다.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한 변함없는 침묵과 방관의 카르텔이 관계당국들 사이에 작동 중이라는 뜻이다.
최근에도 노동자들이 엄동설한에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사용자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해고와 노조선거 개입 등 노조파괴행위를 저지르는데 관계당국은 일제히 귀를 틀어막거나 조사 시늉으로 그쳤다. 국정원은 불법사찰로 겁을 줬고 검찰과 법원은 시간을 끌다 십중팔구 증거 부족으로 면죄부를 줬다. 신규노조 결성시도나 어용노조 교체운동은 그때마다 부당해고자만 만들어내며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이 맞닥뜨린 불편한 진실이었다.
누구라도 그 입장이 되면 이게 국가냐고 절규하고 노동부 맞느냐고 분노하게 돼있다. 사용자와 구사대의 온갖 불법행위를 감싸는 게 경찰과 검찰이 할 짓이냐고 악다구니를 쓰다 고공농성까지 고민하게 돼있다. 민주노조운동을 하다보면 대한민국의 지배구조와 공권력 작동방식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돈과 자리가 얼마나 악마의 힘이 있는지, 상급단체는커녕 본부조직도 얼마나 멀리 있는지, 국가와 노동부는 얼마나 높고 까마득한 존재인지, 검경과 법원은 어떻게 비슷한 법을 들이대며 한통속으로 사용자 편을 드는지, 다 보인다.
사용자의 노조결성방해와 노조파괴공작, 노조선거개입 등 부당노동행위를 밝히고 제재하지 못한 책임은 1차적으로 노동부, 2차적으로는 검찰과 경찰에 있지만 최종적이고 궁극적 책임은 행정부수반인 대통령과 정권의 몫이다. 정부의 부당노동행위법 집행실패를 입법권과 감독권 행사로 바로잡지 못한 국회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당노동행위문화의 공범자다. 실은 노동위원회와 법원도 다르지 않다. 노동위는 부당노동행위 조사구제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고 법원은 면죄부를 주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노동부와 검경은 단 한 번도 대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본격적, 대대적으로 조사, 수사한 적이 없다. 삼성이 무노조경영방침아래 노조결성주모자 미행납치매수, 노조설립서류 탈취, 유령노조 등록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을 때도 삼성계열사 전부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30대 재벌대기업을 상대로 일제히 부당노동행위 실태조사를 벌인 적도 없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은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조차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중요한 국정목표로 설정하고 '부당노동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노조조직율과 단체협약적용률, 노동소득분배율은 어느 나라에서나 경제민주주의의 수준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이런 세 가지 경제민주화 지표에서 뚜렷한 연차별 목표를 설정하고 측정가능한 진보를 이룰 의지가 없이 경제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조직율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것이 부당노동행위다. 부당노동행위의 묵인과 방치, 조장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노동적폐 1호이다. 같은 이유로 부당노동행위 불관용 및 근절방침 천명은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되는 경제민주주의 개혁조치 1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문재인 촛불정부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 노동자들이 더는 고공농성 등 극한투쟁에 호소하지 않아도 되도록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부당노동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하고 단속하는 일에 노동행정력을 총동원한 대한민국의 첫 정부가 되어야 한다. 문재인 촛불정부는 노동3권(노조결성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침해가 노동인권과 경제정의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민주주의와 중산층에 대한 강력한 공격으로서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노동부에 당부한다. 노조결성방해와 노조파괴, 노조간부매수, 노조선거개입 등 만연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해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노동부가 직무를 유기하기 때문에 노동자와 노조활동가들이 차디찬 한파에 불구하고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투쟁을 벌인다. 고공농성 등 극한투쟁이 벌어질 때마다 노동행정의 처절한 실패로 알고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노동부라는 첫 단추에서 일이 제대로 안 풀리고 더 꼬이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검찰에 당부한다. 지금까지 쌓여있는 대기업관련 부당노동행위 첩보에 대해 특별수사본부를 차려서라도 본격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MBC부당노동행위사안처럼 고도로 정치화된 사건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달려들 일이 아니다. 부당노동행위는 사용자의 갑질 횡포를 비호하고 분배정의를 갉아먹으며 정치적으로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만든다.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의 암적 행태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반인권적, 반민생적, 반민주적 노동적폐다. 법과 정의의 관점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거악이다. 검찰의 일이다.
즉각적으로 검찰권이 행사되어야 할 최근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있다. 지난 20년 넘게 KT 사측은 치밀하고 촘촘한 부당노동행위시스템을 운영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회사가 밀지 않는 독립후보를 위해 사업장단위 검표위원만 해도 다음 인사 때 보복성 좌천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게 다반사였다. 지난 17일 KT노조위원장과 지부장선거를 앞두고 사측이 노조위원장을 내정해서 밀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만약에 노동부나 검찰이 당장 달려들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확인했더라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지금에라도 검찰이 KT노조위원장 내정사건에 대해 강력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더 이상 노조선거에서 사용자의 회유, 매수, 불출마 압력 기타 부당개입행위와 사후보복행위를 묵인해선 안 된다.
정부는 노동자를, 노동자는 정부를 믿지 못해온 고질적 상호불신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로 말미암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비용이 너무 높다. 근본원인은 지금까지 정부가 사용자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시절에는 정부가 대놓고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면 지금은 얄미운 시누이 노릇을 하는 변화가 있을 뿐이다. 정부의 사용자편향성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부당노동행위문화를 바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노사정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나는 노동부와 검찰이 MBC 부당노동행위 조사를 계기로 노동계에서 악명 높은 대기업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 정도의 성의를 보여야 민주노총 등 노동계도 정부의 의지를 신뢰하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수 있다. 부당노동행위 근절은 현 정부가 도모하는 모든 사회경제정책의 대전제다. 노사정 대화와 타협의 대전제다. 노조결성을 방해하고 노조매수 기타 파괴공작에 나서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중산층민주주의와 헌법, 노동인권과 경제정의의 공적으로서 반드시 응징되고 근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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