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녹색평론> 11~12월호에 실린 다니구치 나가요(谷口長世) 국제 저널리스트의 '북핵 위기라는 허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녹색평론>의 허가를 받아 기사 전문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 1편 보러 가기 : 미국이 파키스탄 핵 개발에 눈감은 이유는)
다니구치 나가요 씨는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브뤼셀 지국장을 거쳐 1998년부터 독립, 벨기에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 저널리스트입니다. 현재 국제기자연맹 부회장으로 저서로는 <N나토―변모하는 지역안보>(2000), <사이버시대의 전쟁>(2012) 등이 있습니다.
아래 기사의 일본어 원문은 월간 시사종합지 <세카이>(世界) 2017년 7월 및 8월호에 '北朝鮮核緊張のまぼろし'(북핵 긴장의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됐습니다. 한국어 번역은 김형수 씨가 맡아주셨습니다.
북한 관련 원전기업의 중역이었던 초강경파 미 국방장관
얼마 전에 도널드 럼스펠드라는 미국 국방 장관이 있었다. 긴 얼굴에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의 노인이라고 하면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생각날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과의 전쟁으로 점철된 미국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전 정권 시절에 구축된 북한에 대한 유화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북한을 대량파괴무기를 확산시키는 '테러국가'라고 비난하면서 체제 교체를 요구했는데, 그러한 부시 정권에서도 럼스펠드는 가장 강경파였다.
그런데 영국의 〈가디언〉은 2003년 5월 9일 "럼스펠드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인물의 또다른 '얼굴'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국방장관 취임 직전까지 스웨덴계(당시)의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기업 ABB(본사는 스위스)에서 비상근 이사로 10여 년을 재직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는 하필이면 북한에 세울 경수로 2기의 매각 계약을 따낸 기업이었다는 것이다.
기사는 "국방장관은 ABB 이사회에서 경수로의 북한 매각 안건이 상정된 기억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미 국방성 대변인의 코멘트와, "이사는 북한과의 거래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ABB 홍보실의 코멘트를 나란히 소개했다. 게다가 "럼스펠드는 워싱턴에서, 경수로 북한 매각에 반대하는 강경파에 로비활동을 했다"는 익명의 ABB 중역의 〈포츈〉 인터뷰도 인용했다.
ABB의 2억 달러에 이르는, 북한으로 갈 경수로 2기 매각(설계, 본체) 계약은 2000년 말까지 체결되었다. 그런데 겸직에 불과한 럼스펠드의 ABB 비상근직 연봉은 19만 달러. 흥미롭게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관을 추방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여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는 데 이르러서도, 미국 정권은 ABB사의 경수로 계획 유지를 위한 350만 달러 지출을 승인했다. 역시 '배려가 있었던' 것인가….
미 국방 장관의 '두 개의 얼굴'에 관한 기사는 북한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의 복잡한 배경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럼스펠드는 강경파, 클린턴 정권은 온건파, 부시 정권은 강경파, 김정일보다 그 아들이 더 심한 독재자'라는 식의 판에 박은 이해방식으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더 큰 시야로 배경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2001~2004년의 암전(暗轉)―합의 직전까지 간 북미 교섭
북한을 둘러싼 정세는 2000년 후반에 국면이 타개되면서 한반도의 안전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달했다. 같은 해 6월에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되어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났고, 10월에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첫 평양 방문이 있었다. 또 같은 해에 북한군 수뇌의 첫 방미도 성사되었다. 그러나 클린턴 미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세부 조정 교섭과 준비 단계에서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일촉즉발의 상황, 즉 전쟁 발발마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자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관련 정책 특별고문으로 일했던 원디 셔먼 전 국무차관(정치 담당)은 2001년 3월 7일, 이날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갖게 된 한미 정상회담에 붙인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클린턴 정권 말기에 합의 직전까지 갔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의 제조, 배치, 실험과 미사일 및 그 기술의 수출 중지"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부시 정권이 계속 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태는 이 특별고문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이날 한미 정상회담 후의 공동 기자회견은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의견대립을 시사하는 외교적 표현이 사용되는 등, 그 후의 사태의 암전을 암시했다.
한반도 정세에 암운이 드리우는 가운데, 2001년 5월 2일과 3일 양일간 유럽연합(EU) 대표단(단장은 EU 의장국인 스웨덴의 수상)이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했다. 회담에 참가한 EU 대표 중의 한 사람은 훗날 회담의 모습을 당시의 수첩을 보면서 회상했다.
"김정일은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주 앉아 군사, 외교, 정치의 각 분야에 관해서 참모들과의 상의도 없이 제법 긴 시간 이야기했습니다. 딱 한 번 경제분야에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죠. 그 외에는 폭넓고 적확하게 사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이즈미―부시 비밀회담, 그리고 2002년 10월의 암전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발생하고 이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소위 국제사회에 호전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북한 정세와 관련해서 저주받은 2002년의 동이 튼다. 1월 29일의 일반교서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국민들을 기아상태로 방치하고, 미사일과 대량파괴무기로 부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같은 해 9월 17일에는 고이즈미(小泉) 총리가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북일 수뇌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 앞서서 고이즈미 총리는 유엔총회 출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여 부시 대통령과 북한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협의를 한다. 이 내용은 고이즈미나 그 측근들이 무덤까지 가져갈,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이 미일 회담에 대해서는 별로 보도되지 않았는데, 그 후의 사태 전개의 기점이 되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그리고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차관보가 평양에서 북한 측과 만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계획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자, 북한 고위 관료가 이러한 계획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미 국무성은 10월 16일,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인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북미 관계는 급속하게 악화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나중에 이 공식적인 고백에 대해서 그 의미가 고의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북한 관련 정책에 관여한 EU 관계자는 "통역이 북한 외무차관의 발언의 미묘한 뉘앙스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식으로 통역했다고 들었다. 그게 고의였는지, 그저 단순한 실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정세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11월 15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부시 정권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재직한 ABB가 수주한 경수로 2기를 북한에 건설하기 위한 국제컨소시엄) 이사회가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중단에 합의했다.
험악해지는 상황에 박차를 가하듯, 같은 달 25일자 〈뉴욕타임스〉는 "원자폭탄이 북한과 파키스탄을 이어주고 있다. 미국은 우라늄 기술과 미사일 부분의 물물교환 사실을 찾아냈다"라는, 데이비드 생어 기자의 특종을 게재하고, 같은 달 29일에 IAEA 이사회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계획에 대한 비난 결의를 채택했다. 이에 대해 12월 12일 북한은 핵시설에 대한 감시카메라를 제거하기 시작하고, 같은 달 27일에는 IAEA 조사관의 국외추방 명령을 내렸다.
해가 바뀌어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 다음 달 2월 12일에 IAEA 긴급이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3월 7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하여 부시 대통령과 회담 후, 4월에는 미국, 중국, 북한의 3자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7월 31일에는 뉴욕에서 북미 교섭이 열린 후 일본, 한국, 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을 개최하기로 결정되어 8월 말 베이징에서 제1회 6자회담이 열렸다. 이 6자회담은 2008년 7월 제6회 수석대표자 회합을 마지막으로 더 열리지 않고 있다.
한편, 1994년 클린턴 정권하에서 조인된 북미 기본합의(북한의 흑연감속로 및 관련 시설의 동결에 대한 대가로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한 경수로를 제공하고, 완성될 때까지 중유를 매년 50만 톤 공급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에 기초해서 이듬해인 1995년에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2006년 5월에 경수로 사업의 종료를 결정, 뉴욕의 본부도 폐쇄되었다.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북한은 같은 해 10월 9일에 첫 지하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에 걸쳐 조성된 긴장 구조
장황하게 2001년부터 사태가 악화한 경위를 설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의 제1부에서는 현재의 북한 핵 문제가 긴장국면에 이르게 된 흐름을 칸 박사와 그 친구인 슬레보스가 중심이 된 '핵 암시장'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그 '암시장'이 대대적으로 국제사회에 '폭로'되고 주목을 받게 된 것이 '2003년 10월'이었다.
미국의 정찰위성이 몰래 감시 중이었던 독일 선적 BBC차이나호가 기항지인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관헌에 의해 화물 검사를 받고, 그 결과 리비아를 향하던 우라늄농축 관련 기기 약 1000점이 압수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앞에 두고 리비아의 지도자 가다피 대령은 핵무기 제조계획을 포기할 것을 표명하는 데 이르고, 이를 계기로 칸 박사가 주도하는 '핵 암시장'의 실태가 차례로 발각되었다. 2004년 2월, 칸 박사는 북한에 핵무기 제조 기술 등을 제공, 수출한 것에 대해 전 세계를 향해 고백하고 사죄했다.
제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약 사반세기 동안 이 부정한 수출을 방치해왔다. 그런데 왜 2003년 10월에 돌연히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양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일까? 1부에서부터 이어지는 수수께끼지만, 제2부에서는 북한 정세를 둘러싼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그렇게 보면, 미국의 차관보에게 북한 측이 충격적인 고백을 함으로써 정세가 악화되는 2002년 10월과 마치 호응하기라도 하듯이 이듬해 2003년 10월에 '핵 암시장'이 국제사회에 폭로된 것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보다 일찍 '핵 암시장'이 폭로되지 않았던 것인가? 과거 사반세기 동안 국제사회는 매스컴을 총동원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오늘의 위기는 아마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글 1부의 첫머리에 등장한 슬레보스 피고의 자택과 회사의 쓰레기통까지 뒤진 네덜란드 공안 수사관들은 내심 "왜 당국은 이 일당을 잡아들이지 않는가" 하고 의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2003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 출석한 미국 군산정(軍産政)복합체의 주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미국 핵우산에서 지구 전체를 덮는 '대·중·소 우산' 체제로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3년 2월, 앞에서도 봤듯이 북한 정세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열린 뮌헨 안보회의는 이라크 침공을 서두르는 미국과 그를 따르는 영국,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프랑스, 독일의 대립이 표면화되는 파란의 상황이었다.
회의에 참가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동행한, 장관의 맹우이기도 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 P와 나는 오랜만에 재회했다. "이라크 침공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단언하는, 70년대 말부터 미국 국방정책의 중추에 있었던 이 인물에게, 그럼 북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더니, 잠깐 생각하는 듯 순간 침묵했다. 그리고 "우선은 이라크를 정리해야지. 북한은 아직…먼 훗날의 일이요"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 예언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우선 이라크에 대한 침공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일단락된 후 같은 해 10월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 네오콘 중심 인물이나 럼스펠드는 도대체 어떠한 북한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안보 양태를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훗날의 일'을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1983년 3월, 핵우산에 더해서 미국의 군산정복합체는 새로운 개념의 '우산'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즉 전략방위구상(SDI, '스타워즈 계획')이다. 레이건 대통령 밑에서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과 조금 전에 언급한 P 등의 그룹이 추진했다. 참고로 P는 중거리핵(INF)미사일 배치의 추진자로, 이 무기의 삭감 교섭에도 관여한, 말하자면 창과 방패 양쪽에 다 관여했다.
SDI는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장사정(長射程) INF를 발사 단계, 대기권 밖에서 타성항행(惰性航行)하는 중간 단계, 대기권 재돌입 단계 등, 각 단계에서 파괴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인데, NATO 가입국 외에도 자유주의권의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 등이 계획에 참가하도록 요청받았다.
SDI에는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괴물 같은 거울과 지상으로부터 발사된 초전자파로 미사일 파괴를 시도하는 등, 마치 SF영화 같은 계획도 적지 않아서, 당시 서독 각지의 SDI 참여 하이테크 방위산업체들을 취재하러 다녀보면, 전문가와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그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지 레이건 정권 말기에 계획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그 개념 자체는 계속 성장해서,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이 아니라 그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전역(戰域)미사일(중거리 무기), 나아가 단거리의 전장(戰場)미사일을 요격하는 다양한 시스템의 개발계획이 만들어졌다. 즉, 핵과 통상적 무기에 대한 대·중·소의 다양하고 새로운 '우산'을 신제품으로 만들어 미 국방성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의 동맹국들, 파트너 국가들에게 판매하는 시장개척이 시작된 것이다.
레이건, 부시(아버지), 클린턴, 부시(아들), 오바마로 정권이 바뀌는 중에 명칭이나 계획도 수정되어 현재는 '미사일 방어'라는 이름으로 발사(부스트) 단계를 노리는 무기시스템, 타성항행의 중간단계를 목표로 하는 이지스 시스템과 그보다 고도의 대륙간탄도탄을 요격하는 지상배치 미사일, 재돌입 단계 직전을 노려 요격하는 사드(THAAD) 등, 여러가지 '우산' 시리즈 제품 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액을 투자해서 새로운 '우산'을 개발, 제작해도 미사일로 공격해올 적('악의 축')이 없으면 눈이 튀어나올 만큼 거액의 '우산' 시스템을 구입·부담할 동맹국도, 파트너 국가도 없을 것이다. 이란, 북한, 중국, 우크라이나 문제를 계기로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 정도가 미국과 그 동맹, 파트너들을 미사일방어라는 새로운 우산으로 지킬 잠재적 가상 적국 후보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란은 최근 민주선거를 통해 온건파가 승리하여 온건 노선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를 매개로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격 도발에 이란이 멍청하게 놀아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악의 축'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냉전시대와 같은 군사적 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북한 그리고 중국 정도가 된다.
앞서 언급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맹우이며 미국 군산정복합체의 주요 인물이기도 한 P는 이러한 냉전 종결 이후의 국제 안보 상황을 1980년대 전반의 전략방위구상 발표 당시와 비교해서, "요즘에는 걸리는 게 많아서 말이야"라고 불평했다. "예전에는 편했지. 이런저런 딴지를 거는 나라가 있으면 소련의 위협을 언급하면 그걸로 끝이었지. 그러면 모두 아무 말을 못 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아. 일 하나 만드는 게 정말 힘들어."
이런 군산정복합체 무리들이 열띤 눈으로 주시하고 있는 게 아시아인 것이다.
창과 방패―가장 유망한 군수시장, 동북아시아
얼마 전부터 "미국 군사전략의 중심이 유럽으로부터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말을 듣는 기회가 많아졌다. 동북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군사산업이나 군사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시아는 가장 장래성 있는 유망한 상업적 기회를 주는 시장"이 된다. 그들의 기대감은 실제 통계상의 수치로도 뒷받침될 수 있다.
2017년 4월에 발표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세계 군사비 동향(2016년)〉에 따르면, 세계 전체의 군사비 추계는 1조 68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0.4% 증가했다. 2011년 이후 별로 변동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시아·오세아니아권만이 전년 대비 4.6%가 증가하여 총계 4500억 달러(2016년)를 기록했다.
이 지역의 군사비는 2007년부터 2016년 사이에 64%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동아시아는 같은 기간 74% 증가한 3080억 달러(2016년). 세계 군사비가 가장 많은 15개국 중에도 1위 미국(6110억 달러)에 이어서, 2위 중국(추정 2150억 달러), 5위 인도(559억 달러), 8위 일본(461억 달러), 10위 한국(368억 달러), 12위 오스트레일리아(246억 달러)로, 아시아·오세아니아권이 5개국이나 들어 있다. 중국은 이 지역 총 군사비의 48%를 차지했다. 앞으로 한반도,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지에서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의 군사비는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군사산업 입장에서는 더욱더 유망한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증가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평화와 화해의 움직임에 진전이 있으면 군사산업 측면에서 시장가치는 하락하는 것이다. 이 글 1부에서 '핵 암시장'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기술, 부품, 특수 소재 등이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그것이 북한으로 흘러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특히 미국이나 네덜란드 정부 당국이 부정 수출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오랫동안 방치한 점을 지적했다.
실은 부정 수출을 방치한 것은 미국,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계속 방치했던 것일까? 되풀이하지만, 이른 단계에서 적절하게 대응했더라면 얼마든지 핵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는 의도적으로 아시아의 위기와 긴장을 조성하려는 의사(意思)가 국제관계 속에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동안 많은 나라들의 관련 분야 기업들은 합법/불법적으로 무기시스템, 부품, 관련 기기, 소재―말하자면 창(矛)을 수출해서 거대한 이익을 얻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지스 시스템, 사드 등, 차례차례로 거액의 요격 미사일들과 여러 종류의 통상무기―방패(盾)를 이 지역 국가들의 정부에 떠넘기고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후에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국가를 초월한 국제 군산정복합체라고 해야 할 세력이 대두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국제 군산정복합체에 휘둘리는 안보와 외교
2016년 <세카이> 6월호에 실린 '죽음의 상인국가가 되고 싶은가'라는 제목의 특집 기고문에서, 나는 투자은행과 각종 펀드 등 금융자본이 대주주가 된 결과 국가색이 옅어진 미국과 유럽의 군사산업이 나라의 안보,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경향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한 대주주가 최우선시하는 목표는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이고, 아시아의 평화나 일본과 한국의 시민생활의 안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세계 군사비 지출 8위에 오르고,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군비 강화를 주장하면서 억지로 개헌을 추진하려고 하는 아베신조(安倍晋三) 내각이 그러한 국제 군산정복합체의 눈치를 살피는 꼭두각시로 후대의 역사에 기록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진정한 위협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매스컴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부채질당하고 있는 공포감이다. 그토록 많은 각료들의 추문과 실언이 넘쳐나도 교만한 국정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지지의 비밀은, 그들이 국민의 공포심을 부채질하면서 강경파적인 자세와 군사력 강화를 통해 나라를 지킨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일, 한미, 한미일이 유사시를 상정하여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북한은 빈번히 미사일 실험을 행한다. 긴장은 고조되기만 할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호 <세카이>에서 자민당 총재와 외무상을 역임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씨가 매우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만들어지고 과장된 공포에 선동되어 그 흐름에 휩쓸려 개헌까지 이르게 되면 일본의 안정도, 일상생활도 순식간에 파괴되고 말 것이다. 국제관계라는 것은 한 꺼풀 벗기면 약육강식, 냉혹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들도 한반도의 긴장상태에 열띤 눈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7년 4월 29일, <로이터>통신은 "4월 29일에 프랑스 해군 함정 '미스트랄'이 나가사키현의 해상자위대 사세보(佐世保)기지에 입항했다"는 기사를 타전했다.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강습양륙함은 2월 말에 프랑스를 출항. 영국군 부대 약 60명과 헬기 두 대를 탑재하고 29일 아침에 사세보기지에 도착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새로이 발사하여 동아시아 정세가 긴박해진 몇 시간 뒤의 입항이었다. (중략)
일본, 영국, 미국의 부대를 태워 4개국 공동훈련을 실시하면서 미국령 괌을 향하게 된다. 남중국해와 한반도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유럽도 이 지역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일본이나 한반도의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무리와 함께하는 것은, 무기시스템의 판매를 위한 첫걸음이면서 동시에 유사시 전후의 복구·개발사업 등을 포함한 천재일우의 엄청난 이권을 챙기려고 앞다투어 이름을 올리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억지와 대화' 원칙 속의 편중된 군사력
'억지와 대화'는 1967년에 채택된 NATO의 기본원칙(통칭 하멜독트린)인데, 널리 세계 전체의 기본적인 방위정책으로 채용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자주 입에 올린다. 하지만 그의 언동과 정책을 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억지', 즉 군사력 강화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일목요연하다.
올해 4월 19일 자 〈도쿄신문〉 조간에는 "4월 18일, 아베 신조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과 회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북한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압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총리는 회담 서두에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펜스 부통령은 '평화는 오직 힘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일본 등 동맹국들과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확인했다"라고 전했다.
이것을 보면서 하멜독트린을 만든 고 하멜 전 벨기에 외무장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1966년 독트린 제정 당시 상황에 대해서,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힘으로 소련에 대항하여 억누르려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NATO의 새로운 원칙을 만드는 데 힘만이 아니라 소련과의 대화의 길도 열어 두 가지 수단으로 대응하는 방침을 마련한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아베 총리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발언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미국에 대한 비판이 된다. 왜냐하면 1994년 북미 기본합의를 토대로 어떻든 기능하고 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폐지하고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한 6자회담(의장국 중국)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부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6자회담 자체가 이미 2008년 이후에는 전혀 열리지 못하고 있다. 9년이나 대화가 단절돼 있는 것이다.
군비관리 그리고 동아시아 '신뢰·안보 조성 조치'의 틀을
이렇게 험악해진 북한 정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남은 길은, 기이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동아시아의 통상적 전력(戰力)에 관련하여 군비관리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핵무기 폐기나 비핵지대 구상은 일단 미뤄둔다. 중심적인 작업이 '신뢰·안보 조성 조치'라는 틀을 만드는 것이 되게 한다.
신뢰·안보 조성 조치는 성악설(性惡說)에 기초한 지역 안전보장 체제이다. "어떠한 합의를 하더라도 국가는 반드시 상대국을 기만한다"는 사실을 관계국들이 정직하게 인정하고, 서로 세밀하게 연구하여 속일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봉쇄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합동군사훈련이라고 해놓고는 갑자기 적을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연습의 규모, 기간, 성격을 서로 통고하고, 가상의 적국 관계자를 훈련에 초대하여 관전토록 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군대의 이동을 정점(定點)관측할 수 있는 감시소를 서로 설치하고, 나아가서 상대국의 군대에 대한 불시 사찰까지 합의, 명문화할 수 있다면, 우발적인 충돌 우려는 크게 불식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안정이 통상적 전력 분야에서 조성된다면, 그것은 군축으로 진전되어 적(敵)도 우리도 지역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의 폐지를 이야기할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신뢰·안보 조성 조치'의 틀이 없다. 이 지역에서 불완전하게나마 그러한 체계가 실현 가능한 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다.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 북한은 처음에는 참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동아시아라는 지역에서 이 틀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그 진척 상황을 알려주고, 제재 일변도로 소외시키기보다는 북한이 이 틀 속으로 들어오도록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면 그러한 과정 자체가 지역의 안정을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비관리 노력에 대해서는 세계의 군산정복합체가 최대한 저항할 것이다. 군비관리, 군축의 성공은 무기시장의 축소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군비관리, 신뢰·안보 조성 조치를 위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를 물리치고, 일본과 한국 정부가 평화와 안정을 주도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아베 정권은 오로지 공포를 선동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목표로 헌법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지향하는 정치가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나와 정당의 울타리를 넘어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군산정복합체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끝내주기를 기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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