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진성 후보자는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충돌한다고 이해되고 있는데, 저는 두 가지가 꼭 그렇게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했듯이, 일정한 기간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1973년 '임신 말기 이전의 낙태를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로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6년에는 낙태 조건을 강화한 텍사스주의 '낙태 금지법'에도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법은 임신 20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고, 낙태 클리닉이 아닌 특정 기준을 갖춘 외과 병원에서만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진성 후보자는 "저도 며느리가 있고 손자가 넷이나 되는데, 보다 보니까 임신한 여성은 태아의 태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모성애가 발현되기 시작하고, 태아와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임산부는 보통 임신 18주~20주부터 태동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진성 후보자는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성이다. 그런 임신한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태아의 생명과 충돌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 노르웨이의 임신중절 진료 행태, 완전히 바뀐 까닭?)
이날 인사청문회는 후보자 신상 검증보다 정책 질의에 집중됐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 이진성 후보자는 "국가보안법이 여러가지 독소 조항들로 오남용된 적이 많아서 지적 표현물에 관해서는 제가 위헌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면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폐지하기보다는 잘못된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군 사이버사령부가 '정치 댓글'을 달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군이 현직에서 정치에 관여한다면 당연히 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지원 대상을) 자의적으로 분류했다면 그 자체로 잘못이고, 그런 기준을 가지고 지원하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한 침해"라고 답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공무원이라고 해서 전혀 정치적 의사 표현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무원이 근무 시간이 아닌 주말 등에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 문제가 된다면 새로운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 이진성 후보자는 "특수고용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각하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서 그런 보호를 해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조항 폐지 안 돼…국민 안전권 신설 찬성"
이진성 후보자는 개헌과 관련한 입장도 내놓았다.
자유한국당 개헌특별위원회 의원 등이 헌법상 '경제 민주화 조항'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서는 "헌법 119조 2항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부의 집중을 막기 위해 경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은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시장경제를 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 안전권'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자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얼마 전 지진 같은 재난이나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때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안전권'을 헌법에 신설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적극 찬성 입장을 냈다.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헌법에 넣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5.18에 대해서는 법률로 민주화 운동으로 보장되고 저도 당연히 민주화 운동으로 생각한다"면서 "사회적 합의가 되고 국회에서 그에 대한 결정을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권력구조 개편안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꼽았다. 선거제도 개편안으로는 "소선거구제는 정확한 민의 반영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탄핵 결정에 세월호 책임 의견 채택 안 돼 아쉬워"
앞서 이진성 후보자는 인사청문위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지금껏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을 꼽았다. 이 후보자는 김이수 재판관과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충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진성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국가 위기 상황에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린 불행한 일"이었다며 "탄핵 심판 사건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위반이라는 의견이 채택되지 못해 아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밖에도 이진성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임기가 논란되는 헌재소장 후보자는 저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없기를 입법 기관인 여러분들께 강력히 희망한다"고 국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제 임기가 10개월도 안 남았는데, 헌재소장 후보자로 이 자리에 섰다. 최고의 헌법 해석기관인 헌재소장의 임기가 해석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국회가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킨 이후 두 번째 후보자다. 만약 이 후보자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부임하면, 잔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