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톤 다운'을 시도했다. 그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교를 희망한다"고 밝히면서 재무부가 발표할 추가 제재도 "매우 상징적인 조치이며 실질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도 "강력한 제재·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어낸다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조치로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트럼프가 북한과의 냉각기를 거쳐 조건 없는 대화 재개에 나서는 데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보다 분명해졌다.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비롯한 국무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두 달 넘게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해 이를 대화 개시의 기회로 삼고자 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북 테러 지원국 재지정과 추가적인 제재 발표는 이러한 시도가 백악관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정말 "최대의 압박"에 북한이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부수적 효과에 재미가 든 것 같다. 한반도 긴장 고조는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기 판매를 늘리고 중국을 상대로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커넥션과 최근 공화당의 선거 참패 등으로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로서는 미국 여론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데에도 북한 문제가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최대의 압박"에 북한이 무릎 꿇고 나오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둘째는 북한의 예상되는 반응이다. 북한은 줄곧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흥정탁에 올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 "미국의 적대시 정책"은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강화되어왔다. 이런 와중에 테러 지원국 재지정과 추가 제재는 북한 특유의 피포위 의식과 피해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북한이 공언해온 것처럼 "핵 억제력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는 북미간의 대결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재 외교마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선보였던 한국 특유의 중재 및 조율 능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완전히 무너졌고 문재인 정부도 아직까지 이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최대의 압박"에 도취된 트럼프의 대북정책, 북한의 완강한 태도, 마땅한 중재자의 부재 등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한반도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질 전망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도 더욱 불확실해졌다.
물론 테러 지원국 재지정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북한이 테러 지원국으로 묶여 있었던 1988~2008년 동안 오히려 북미 대화가 활발했던 때도 많았다. 반면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었던 2009~2017년 동안에는 이렇다 할 대화조차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 주도의 "최대의 압박"에 동참하면서 "국면 전환"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기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운명을 트럼프와 김정은의 희미한 이성에 맡겨두어서도 안 된다.
한국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대미정책에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미국 핵과 북핵이 첨예하게 맞선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워싱턴을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도 결정권이 있는 한미군사훈련을 평창 행사 때 일시 중단하자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고 조건 없는 대북 대화에 나서자고 강력히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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