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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성, 보이지 않는 발, 연목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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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성, 보이지 않는 발, 연목구어

[손혁재 칼럼]① MB, 이제 내려가는 길을 생각해야

새해 새날이 밝았다. 영어로 1월은 January인데, 이 말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야누스(Janus)에서 비롯되었다. 야누스는 앞과 뒤에 모두 얼굴이 있는 신이다. 야누스는 뒤의 얼굴로는 과거를 보고 앞의 얼굴로는 미래를 본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바뀌는 1월이 야누스의 달이 되었다. 2011년 1월은, 아니 2011년 한해는 야누스의 앞의 얼굴만 있으면 좋겠다. 희망과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한 미래만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요즘은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메시지로 새해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연하장을 주고받는 것보다 정성이 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세태의 변화에 따른 새 풍습이니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십 개씩 날아오는 문자메시지 가운데 가슴을 때리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2011년은 그저 2010년만 같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2010년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2010년보다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착잡했다.

돌아보면 지난해는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실망과 절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던가. 폭설과 강추위 속에서 세종시 문제로 어수선하게 시작된 한해는 민간인 사찰과 대포폰, 예산안 날치기 등 퇴행적 정치행태로 막을 내렸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시한 일본 교과서 문제, 미국에게 잘 보이려 국민의 이익을 팽개친 한미 FTA 재협상 등 국민에게 실망과 좌절만을 안겨주었다. 김연아, 남아공 월드컵과 여자축구의 쾌거,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성적만이 국민에게 반짝하는 기쁨을 주었을 뿐이다

새해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그러나 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인다. 2010년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11년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것들이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리라. 희망은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우울한 한 해가 될 거라고 이야기들도 나온다. 특히 일반 서민과 노동자들이 임금삭감과 물가상승, 대량실업, 게다가 복지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겪을 고통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4년차로 접어드는 2011년 벽두의 정국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예산안 날치기로 여야대화는 막히고 야당은 거리투쟁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가 새해의 국정운영 자세를 담은 4자성어로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일기가성(一氣呵成)'을 내세웠다. 이 말은 16세기 중국 명나라 때 시인인 호응린(胡應麟)이 8세기 당 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작품 '높은 곳에 올라(登高)'를 평하면서 쓴 표현이다. 청와대는 일기가성이 '두보의 시처럼 문장이 처음과 끝이 일관되고 빈틈없이 순리에 따라 짜였다'는 의미에 더해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고 풀이했다.

일기가성이란 4자성어를 청와대가 아니었다면 국민은 죽을 때까지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려운 말을 고르면서 청와대가 빈틈없이 매끄럽게 이뤄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날치기 처리하면서까지 예산을 확보한 4대강 사업일까. 형님예산이라는 비양을 들으면서까지 확보한 대통령의 고향 관련 사업들일까.

일기가성을 고르면서 청와대 관계자가 놓친 부분이 있다. 두보의 시 '높은 곳에 올라'는 다음과 같다.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無邊落木蕭蕭下(무변낙목소소하)/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내)//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百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태)/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빈)/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바람은 빠르고 하늘은 높아 원숭이 휘파람 소리 애달파/물가는 맑고 모래는 깨끗한데 새는 날아 돌아돈다./끝없이 펼쳐진 낙목에선 나뭇잎 떨어지고/다함이 없이 흐르는 장강은 도도히 흘러간다.//만 리 먼 곳 서글픈 가을에 항상 나그네 되어/한평생 병 많은 몸, 홀로 누대에 오른다./어려움과 고통에 귀밑머리 다 희어지고/늙고 쇠약한 몸이라 새로이 탁주마저 끊어야 한다네."

시의 앞부분에서는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내려다보이는 정경을 노래하고 있지만, 뒷부분에서는 인생의 절정기를 지난 노인이 느끼는 삶의 무상함과 무력함을 읊고 있다. '높은 곳에 올라'를 제대로 읽었다면 임기의 절반을 넘긴 정부가 '높은 곳(정권)'에 올랐음을 실감하기보다는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퇴임)'는 점을 인식하고 대비하기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2011년 신년연설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새해를 맞아 새삼 정치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정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우울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잿빛이 가장 잘 들어맞으리라. 국민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생결단의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은 '고장난 불량정치'일 것이다. 난장판이 된 정치를 지켜보는 국민의 불신은 정치무관심을 넘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치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도 정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 차라리 정치를 포기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욕만 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 정치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설령 오늘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내일이면 해결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도 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그 동안 우리 정치가 이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냈고, 희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절망에 빠뜨려왔다. 특히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최근 보인 행태는 국민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신보수주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퇴보시켰다.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소통의 부재는 지난 20년 동안 발전시켜온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대표적인 현상이 공안기구의 복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등에서 드러났듯이 검찰권의 중립성은 상실되었다. 경찰은 국민을 잠재적 적,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해 몰아세웠다. 청와대는 국민과 정치인, 심지어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비판적인 여당 정치인들까지도 불법 사찰을 서슴지 않았다. 사이버모독죄,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탄압 등에서 보듯이 민주주의 수준의 척도인 '표현의 자유'도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원래 정치란 '반대의 행위'이다. 권력자가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정치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도 정부에 대한 반대이다. 국회에서 이 같은 반대의 행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야당이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다수인 내 의견이 중요하듯이 소수인 상대의 의견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라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이명박 정부는 무시하고 있다.

소수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다수의 횡포일 뿐이다. '입법전쟁'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돌격대식 국정운영의 똘마니가 되어버렸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의 뜻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붕괴되었다.

ⓒ손혁재
2008년 촛불시위 때 '명박산성'이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과 추도과정에서는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막았다. 그러나 정작 명박산성에 막히고 차벽에 둘러싸인 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정부는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을 두려워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랑그로와(Langlois)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본다면 '보이지 않는 발'은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 밖으로 차내는 것을 말한다. 2000년 4.13 총선 때 나타났던 낙선운동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발'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면 '보이지 않는 발'에 의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아닐까.

* 손혁재 한국 NGO학회 회장(정치학 박사)이 2011년을 맞아 칼럼을 연재합니다. 날카로운 시각과 재치있는 글 솜씨로 유명한 손혁재 씨의 칼럼은 2주에 한번씩 게재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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