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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1번지에서 '귀족노조' 프레임을 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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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동1번지에서 '귀족노조' 프레임을 깨겠다"

[인터뷰]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본부장 후보 출마한 하창민 지회장

얼핏 보아도 탄탄해 보이는 팔뚝이다. 어깨는 떡 하니 벌어졌다. 손가락은 굵고 짧아 영락없이 노동자 손이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누가 보아도 몸을 쓰는 노동자였다. 성격도 급하다.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 간간이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실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고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주위 평가다. 지난 7년 넘게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를 이끌고 있는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그가 요즘은 무척이나 바쁘다. 지난 6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후보등록을 마친 뒤, 본격 선거운동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차기 본부장 선거가 박준석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 윤한섭 현 민주노총 울산본부 부본부장이 맞붙는 3파전으로 진행된다.

하 지회장은 오는 15일부터 29일까지 울산지역 조합원 약 6만3000명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1차 투표(11월 30일~12월 6일)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득표 1·2위 후보조를 놓고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 결선투표를 한다.

정치1번지가 서울 종로라고 한다면, 노동계의 정치1번지는 울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민주노총의 중추세력인 금속노조, 그리고 그 금속노조의 주춧돌 세력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그렇다보니 지난 22년 동안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선거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으로 움직였다. 반대로 말하면 비정규직 사업장 조합원이 출사표를 던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표밭이 만들어진 게 울산 지역이다. 울산본부장은 그동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의 몫이었다.

그런 울산에서 하 지회장이 본부장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다. 12일 서울 시청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에 그를 만났다.

▲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후보로 나선 하창민 지회장. ⓒ프레시안

"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나?"

"민주노총 내에서 비정규직이 조직이 중요하다는 것은 계속 이야기돼 왔다. 하지만 제대로 실행된 적은 없다고 판단한다. 비정규직 당사자로서 그간 느꼈던 생각이다. 그렇다 보니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누구보다 컸다. 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고민은 그 문제에 나서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 지회장은 지금까지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운영됐다고 평가했다. 조직적 이해관계, 노동계 내 정파관계 등으로 사업이 결정되고 집행됐다는 것. 자연히 조직 외 이슈인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했다. 그가 생각하는 비정규직 조직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다.

대표적으로 울산 지역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 3만여 명이 정리해고 되는 동안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서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블랙리스트'로 해고된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두 명이 107일 동안 고공농성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울산지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선거에 후보로 등록한 이들은 하 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기업 정규직 노조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난 2000~2003년 제5대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역임한 기호1번 박준석 본부장 후보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소속이다. 현재 민주노총 울산본부 부본부장을 역임 중인 기호3번 윤한섭 본부장 후보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출신이긴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하 지회장은 "지역에서 그간 비정규직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조직한다면서 후보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부족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자신이 후보로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자신의 공장 내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번이라도 실천했는지를 묻고 싶다. 외면했고, 방관했다. 그렇게 비정규직 문제에 손 놓고 있던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자격이 있는가. 반성해야 하고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새 민주노총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고 바꾸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 행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서"

하 지회장은 이번 선거가 검증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기 조직에서 나왔으니, 자기 정파에서 나왔으니 찍어라. 우리 사람이니 찍어라. 그간 선거는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선거가 자기 조직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 공간(선거)이 비정규직을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검증하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 내용을 보고 조합원들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민주노총의 핵심 정서 아닌가. 그래야만 민주노총이 수구·보수, 심지어 문재인 정부 지지층에게도 공격받는 '귀족노조'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그간 말로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는 주장이다.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 즉 지역본부장 선거 등에서는 결국, 자신의 조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한 게 원인이라고 하 지회장은 판단했다. 하 지회장은 자신의 출마를 두고 '정규직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균열내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의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 지회장은 "겉으로만 비정규직을 내세우니 일반 시민이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서"라며 "그런 정서를 보수 수구 세력이 선전하면서 확장하는 식"이라고 말하며 이를 깨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고 비난을 받는가. 나는 자체 정화가 없으면 민주노총이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사는 것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게 답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야 민주노총이 귀족노조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사회적 지지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107일간 고공농성 당시 하창민 지회장. ⓒ프레시안

대의와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결국, 선거는 조직력과 실력으로 당락지어진다. 민주노총과 같은 특정 유권자, 즉 이해관계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조직 내 선거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조직력이 약한 후보자일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 지회장은 "조합원이 조직적 이해관계, 정파적 관계에서만 벗어난다면 이길 거라 생각한다"면서 "이런 싸움은 지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를 통해 모든 하청 노동자들이 작은 희망이라도 가졌으면 한다. 우리는 시혜를 받는, 배려를 받은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계의 주체다. 그리고 그 주체로서 비정규직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출마한 것이다.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할지 모르나, 상상을 못하는 운동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상상한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인 셈이다. 반면, 대공장으로 대변되는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항이라는 등식도 성립된다. 하 지회장의 싸움이 어떤 결실을 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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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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