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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는 현실권력정치…극단적 반공세력 순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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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관계는 현실권력정치…극단적 반공세력 순치돼야"

[최장집 인터뷰ㆍ中] "강경보수에 대한 정치적 컨트롤이 가장 중요"

연평도 사태는 2010년 한반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한국전쟁 발발 60년 만에 북한의 포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근본적 책임은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도 스스로 "국방과 안보에 대해 국민 불안과 실망을 가져온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책임'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재 고조된 전쟁 위험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소하느냐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선 변화된 한반도 외부조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생각이다.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국제질서를 이끌던 때와 달리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과 중국이 'G2'로 세계의 권력을 나누게 됐다. 미국의 상대적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는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최 교수는 "동북아의 다원화된 힘의 구조에 대응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외부조건 속에서 남한 내부를 바라보면, 보수는 안보를 대표하고 진보는 평화를 대표하는 정치 구조의 문제가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전쟁 대 평화'라는 '민주 대 반민주'의 변형된 버전의 인식틀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최 교수는 "남북문제는 레알폴리틱, 즉 현실 권력정치의 문제로 남북한의 힘을 냉철하게 다루는 접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머리를 맞대고 이성적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햇볕정책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어떤 정책이든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지점은 남은 2년 임기 동안 남북문제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이명박 정부가 현재 보수, 진보 양쪽의 목소리를 듣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강경보수세력들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최장집 교수는 "나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깨트리고 북한과 어떤 형태의 무력충돌이나 크든 적든 전쟁을 일으킬 만큼 무모하고 바보 같은 정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보수정부가 실제로 그런 대북정책을 취한다면 모든 선거에서 보수세력은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보수세력을 컨트롤하는 것이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첩경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대통령 스스로가 보수세력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와 대담은 지난 12월 22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임경구 편집국장,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가졌다. 최 교수와 대담을 정치, 남북관계, 2012년 선거와 복지담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의 쇠락-중국의 부상, 변화하는 주변정세

프레시안 : 올해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아무래도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아닐까요. 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이념적 대결과 감성적 분노도 확대된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는 남북관계와 그 해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된 측면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외부적 조건의 변화에 우선 천착하는 접근법을 제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최장집 : 민주화이후 탈냉전 시대, 그러니까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나름대로 개념적 틀을 통해 접근된 한국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탈냉전 또는 데탕트(détente) 시기는 소련 붕괴와 함께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입니다. 동북아에서의 데탕트는 미국의 정책이기도 하구요. 미국이 이를 위한 기본적인 노선과 정책방향을 천명한 것이 페리보고서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러한 데탕트의 맥락에서 한국 정부 나름의 대북정책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햇볕정책 이후 부시 정부가 들어섰고, 부시는 대북 강경정책을 폈어요. 하지만 길게 보면 부시 정부가 아무리 강경한 대북 정책을 폈다고 해도 데탕트의 전체적 흐름이 반전, 역전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남북한 사이의 충돌도 많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냉전해체 이후입니다. 그 제2단계랄까, 이런 과정에서 한국에선 이명박 정부라고 하는, 보수적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 시기는 동서냉전이 해체되면서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고, 이와 함께 나타난 화해무드와는 다른 시기라는 것입니다. 또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을 했어요.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이 여전히 가장 강한 초강대국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동북아시아만 놓고 보더라도, 이 지역의 힘의 구조가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미국 사람들은 중국을 코-파트너(co-partner)가 아니라 코-매니저(co-manager)라고 표현합니다. 미국이 세계를 운영해 가는 데 있어 중국은 협력자의 지위가 아니라 공동경영자 내지는 공동운영자라는 뜻이지요. 중국의 위상과 영향이 얼마나 커졌나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의 변화라고 봅니다.

탈냉전 시대의 정책적 화두는 햇볕정책이나 화해협력, 평화공존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데 그 맥락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판이 변했기 때문에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동북아의 다원화된 힘의 구조. 즉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하는 주변국들의 다원화된 힘의 구조에 대응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것이 전반적인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안함부터 시작해서 연평도에 이른 일련의 사태는 충격적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60년 이후 처음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실제 위험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평화무드에 젖어 있다가 갑자기 전쟁의 가능성이 코앞에 닥친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과거의 냉전적 틀을 갖고 문제를 접근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남북문제는 레알폴리틱의 문제, 이성적 컨센서스가 필요

프레시안 : 기존의 햇볕정책으로는 지금의 위기에 대응하기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그 출구 모색의 단초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최장집 :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대립의 원천이 바로 분단문제, 민족문제를 중심으로한 남북한관계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한국사회 이념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고, 민주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면서 진보와 보수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북한 사이의 민족문제, 평화의 문제, 안보문제를 바라보는 양극화된 분화, 분열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보수는 안보를 대표하고 진보는 평화를 대표하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어요. 이념적 차이가 민족과 남북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여과 없이, 무매개적으로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위험하며, 피해야 할 갈등입니다.

남북문제는 레알폴리틱(Realpolitik), 즉 현실 권력정치의 문제입니다. 민족정서나 민족감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북한의 힘을 냉철하게 다루는 접근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또한 현실권력정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 간의 힘의 균형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은 동북아국제질서와 남북한 관계, 두 수준을 모두 포함한다고 보겠습니다.

또 이것이 이념적 구분을 아우르는 컨센서스를 만드는 기초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프랑스말로 레종 데따(Raison d'État), 독일말로 슈타트레종(Staatsräson)이라고 부르는 국가이성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를 둘러싼 갈등을 초월해서 국가가 이성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의 목표를 뜻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못할 때, 현재의 위기상황을 다룰 수 없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햇볕정책은 평화와 공존, 선의와 민족적 우애를 바탕으로 남북한관계를 접근하는 것까지는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권력정치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진보파들은 안보의 문제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갖게됐습니다. 반면 보수파는 국방과 안보가 마치 자신들의 영역인 것처럼 과도한 사명감을 보이면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여왔어요. 평화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인데, 평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거지요. 현재 남북한관계가 악화돼 전쟁위기로까지 치닫게 된 데는 보수정부가 북한정권과 감정싸움이랄까 기세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론에서 이런 종류의 대립을 "치킨게임"이라고 하지만, 이런 형태의 대립으로부터 연유하는바 큽니다. 이런 대결방식은, 작은 무력분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국지전이나 다른 형태의 대규모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보수파, 진보파, 두 가지 접근 모두가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어요. 햇볕정책은 데탕트 시기에서는 좋은 출발점이었지만 지금은 국제환경, 국내정치상황, 이슈가 모두 변했습니다. 이미 햇볕정책이 시행되고 있었고, 정상회담을 포함해서 남북한관계가 아주 좋았던 시기에서도 연평도해상에서 남북한 해군이 접전도 했고, 북한은 핵을 지속적으로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연평도에 무력도발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햇볕정책 시절이나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대북강경정책을 펴는 현 보수정부에서나 일관된 북한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공격적, 불가예측적 태도의 배면에는 한 가지 해독가능한 핵심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체제의 궁극적 가치이자 목표인 체제존립과 체제안정이라고 할 핵심요소예요.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항시적으로 되풀이될것처럼 보입니다. 항시적으로 위기를 안는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평화의 지속이라고 하겠지요. 이명박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북한 고립화, 봉쇄정책을 취할 때 이번 연평도사건과 같은 잠재적 위기가 실제의 전쟁위험으로 표면으로 부상하고는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보수나 진보가 어떻게 하든지 컨센서스를 만들어서 변화하는 동북아 시대의 대외정책을 구성하고, 국내의 이념적 갈등을 이성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이걸 통해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줄이고 평화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문제를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됐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항구적 전쟁위험 앞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레시안 :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단순한 민족애, 동포애의 발로라기보다는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축을 제시하는 등 상당한 전략적 접근도 시도해 왔습니다. 햇볕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해 왔던 분들이 듣는다면 서운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최장집 : 나는 남북 대결구조에서 데탕트, 평화공존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평화지향적 햇볕정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진행 과정에서 여러 상황의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부시 정부 들어 와서 대북 강경정책을 폈고,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는 미국의 힘이 급속하게 쇠락하게 됐고, 한국에선 보수 정부가 집권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 변화 속에서 햇볕정책이 지속적인 효과를 가질 수 없었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햇볕정책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민족정서나 동포애가 남북관계나 대북정책의 동력이 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강조되는 동안 이야기되지 않았던 측면을 제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됐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체제가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햇볕정책이든 뭐든 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체제안정을 위해 투쟁해 온 겁니다. 결국 햇볕정책도 이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전환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김대중정부 동안에도 해상 충돌도 벌어졌고,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북방한계선 (NLL--the Northern Limit Line)문제는 협상대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부시기 동안, 남북한관계에는 좋은 무드가 형성될 수는 있어도 평화의 안정적 정착을 제도화하는 것을 통해 남북한관계를 안정화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딜레마는 두 가지인데, 선의(善意)와 민족정서를 이야기하는 동안 북한의 체제를 감싸는 듯한 인상이 커지게 됐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준비하는 것까지도 대놓고 다룰 수 없는 한계를 노정했습니다. 햇볕정책의 한계는 반대로 이명박 보수 정부의 한계와도 연관된 문제입니다. 국내정치세력의 반대파로부터 지지를 얻어 컨센서스를 형성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이든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화해협력정책을 보수세력이 비토할 때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반대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컨센서스가 있어야하는데, 이것이 없을 때는 굉장한 역공을 받는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사태를 두고 보수가 나쁘다고 성토한다고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보수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전쟁도 불사할 듯한 태도로 사태를 이렇게 몰아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한반도의 위기는 실제로 눈앞의 문제가 됐습니다. 보다 안정적인 평화와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한 쪽은 안보, 다른 한 쪽은 평화라는 식으로 나뉘어선 안 됩니다. 나도 햇볕정책의 지지자이고, 평화란 절대적인 명제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더 채워야 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언어도 바뀌어야 합니다.

북한 체제 인정, 호불호의 문제 아냐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남북관계에 있어 중요한 이슈는 북한의 체제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인데, 특히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남북관계를 현실적으로 컨트롤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체제에 대한 불인정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바람직한 인식의 전환은 어렵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최형락)

최장집 : 좋은 지적입니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굉장히 힘든 문제입니다. 바로 그 앞에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보수 세력의 대북관이라는 것은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켜 흡수통일하면 된다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보수세력 사이에서 또는 그보다 넓게 퍼져있어요. 이러한 대북불인정 노선을 유지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절대적 가치로 본다면, 뭐든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 체제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명실공히 남북 공존단계를 일정 기간 동안 유지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정착도 어렵습니다.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는 데에는 굉장한 현실권력 정치적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념적으로 북한을 좋아하느냐, 마느냐의 가치판단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예요. 김정은 체제든, 그 아들의 체제든, 3대든, 4대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만 권력의 실체로 인정하자는 것이지, 호불호(好不好)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이예요. 북한의 권력을 실체로서 다뤄야 합니다. 보수파들의 인식 전환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연평도 피격에 대응하여 전쟁도 불사할 듯한 강경한 언사를 사용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서 연평도지역에서 포격훈련을 예정대로 감행했지만,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전쟁도 배제하지 않는 반평화적 정책을 취하고 있고, 취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슬아슬한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 무력안보를 과시한다고 해서 호전적이고 전쟁추구적 정책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그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에 대한, 그리고 국내에서 자신의 지지세력과 전국민에 대한 제스처라고 봅니다. 한국의 보수적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의 범위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의 한반도평화에 대한 이해관계와 힘의 균형이 그려놓은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봅니다. 나는 이명박 정부든, 한국의 과거, 미래의 어떤 보수정부이든, 그러한 범위를 무시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깨트리고, 북한과 어떤 형태의 무력충돌이나 크든 적든 전쟁을 일으킬 만큼 무모하고 바보 같은 정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평화 대 전쟁이라는 보수정부의 비판자들이 강조하기를 좋아하는 대립축은 사실을 정확히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말만큼 현실에 정확히 기초해 있지 않습니다. 정말 보수정부가 실제로 그런 대북정책을 취한다면, 모든 선거에서 보수세력은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고, 또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유발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로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누가 그런 자해적인 정책을 취할까요? 실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차이가 있다면, 보다 강경한 수단을 동원한, 그러나 남북간의 무력충동이나 전쟁위험을 크게 안는 평화정책 대 보다 온건한 수단을 동원한 평화정책이라는 갈등 내지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떻게 전쟁위험을 줄이고, 평화공존을 정착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보수-진보가 접근할수 있는 근거리에 있는 문제영역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정당들이 강해져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평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의지, 국민의 의사를 전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선거 이슈이고, 이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정치적인 불이익을 입는다는 인식을 보수정당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극단적 반공세력들을 순치(馴致)시킨다고 할까,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굉장한 힘을 갖고 있는 경제인들, 기업인들, 재벌 대기업도 좀 진취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반공주의라는 좁은 이념적 틀에 갇혀 북한을 적대적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자율성을 갖고 정경분리 원리에 의해 북한을 상대하고 교류해야 합니다. 경제적 접근을 통해서 격앙된 반공의식, 반북의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재벌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보수, 반북이라고 규정될 필요가 없어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남북관계가 긴장되고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당장 경제에 불이익이 옵니다. 그래서 북한을 상대하고 적극적으로 북한에 진출하는 한편 정치는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국내에서는 강경보수 세력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북한관계를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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