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민주주의의 후퇴', 더 나아가 '파시즘'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시각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선거를 치르고, 이를 통한 권력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본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것. 다만 이명박 정부의 권력 운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가 '민주주의 후퇴론'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모든 문제를 '이명박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립축이 'MB 대 반MB'로 이어지기 때문. 이는 곧 현재 나타나는 한국정치의 많은 문제들이 '정권교체'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낳는다.
하지만 '묻지마 정권교체'를 통해 해결되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최장집 교수의 진단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세 정부의 탄생과 국정운영 과정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는 "체질을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행운들이 동시에 작용해서 집권한들 그 결과가 어떻겠냐"고 지적했다.
최 교수가 보기에 더 시급한 일은 현재 정치-학계-언론이라는 일종의 '엘리트 동맹'을 통해 유지되는 '보수화된 정치체제'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정치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정당 구조를 갖춰야 한다." 최 교수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제기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화될 경쟁구도와 관련해 정치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뼈 있는' 조언을 했다.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좋은 리더가 선출될 수 있는 구조가 좋은 정당이고 좋은 정치다. 우리는 대통령이 되는 게 너무 쉽다. 정치 리더에 대한 스크리닝 과정이 너무 압축돼 있다. 국가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이해해야 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잘 판단하고 자제해야 한다. 본인은 누구보다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다 생각할지 몰라도, 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재난적일 수 있다는 걸 잘 알았으면 좋겠다."
최장집 교수와 대담은 지난 12월 22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임경구 편집국장,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가졌다. 최 교수와의 대담을 정치, 남북관계, 2012년 선거와 복지담론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주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레임덕은 민주주의의 필연…MB, 순응해야
프레시안 : 2011년이 되면서 이명박 정부 4년차를 맞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의 국정운영,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최장집 : 상당히 범위가 큰 질문으로, 대답하는데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민주화 이후라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를 위치시켜 평가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87년을 우리 민주주의의 기점이라고 본다면 20년도 넘었습니다. 이 사이에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 한국 민주주의는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민주주의, 민주화를 만들었던 사회 세력들이 힘을 많이 갖게 됐고, 이명박 정부 이전에 두 번에 걸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대선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앞의 민주화 이전의 정치체제는 권위주의가 아니었습니까.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는 민주화 직후의 일이고, 민주주의로 이행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통해 보수 세력이 집권한 최초의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의 진보적 정권 이후에 정권교체를 통해 보수정부가 들어섰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은 앞의 두 번에 걸친 진보적인 정부가 선거에서 패배한 결과가 아닙니까? 앞의 두 정부가 국민의 신망을 지속적으로 획득하지 못했고, 그렇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사회는 모두 보수 세력이 주도해서 만들었습니다. 정부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과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요. 진보 세력의 경우,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국가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고, 인적 자원도 취약했습니다. 이는 정부를 운영하는 학습이라고 할 수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두 번의 민주정부가 정부운영, 국가경영의 경험미숙으로 정권을 넘겨준 것은, 민주화과정에서 일종의 학습비용을 치른 것이 아닐까요.
그 결과 보수적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앞의 정부와 자연히 대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수가 재집권했을 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선거에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보수가 선거를 통해 컴백했을 때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줘야 하는데 의외로 보수 세력이 이런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국정운영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진보파 민주주의 세력과 차이가 전혀 없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더 실망스러웠어요.
왜냐하면 보수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을 상실했을 때 절치부심하면서 뭔가를 보여주고자 실력을 비축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의 인사실패,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통상실패는 곧 촛불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4대강 사업은 엄청난 국론 분열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북정책이랄까,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는 정책에 있어서도 보수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어요. 전체적으로 두 번에 걸친 앞선 진보적인 정부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마치 보수의 과업인 듯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계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답보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돌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은 경제가 좋은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정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수출이 잘 나가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죠. 중국이나 신흥 개발도상 국가들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은 것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 경제가 상당히 좋은데, 이런 조건에 힘입어 이명박 정부는 정부를 끌고 가는 데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보수와 진보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인데, 보수가 진보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허약했다는 겁니다. 이건 정말 의외입니다. 도대체 보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정치적인 프로파간다 이상이 아니었어요.
프레시안 : 권력 내부의 작동 메커니즘에 하자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최장집 : 보수가 운영하는 정치의 작동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도를 운영한다는 면에서 민주주의는 보수 세력들에게 있어 생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새로운 규범과 에토스, 새로운 이념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전체적으로 갖게 되는 인상은, 민주주의 제도를 다루는 데 너무나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제도는 민주주의인데 실제로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가치와 행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리더십이나 국정운영의 엘리트들의 가치와 행태,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 사이에 괴리가 큰 결과로 봅니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 큰 틀에서의 민주주의는 작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권위주의적이다 보니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인 듯이 인식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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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가리는 문제들
프레시안 : 민주주의의 후퇴를 많은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은 이명박 정부는 파시즘이 아니냐는 진단까지 하셨습니다.
최장집 : 보수가 권력을 상실했다가 재집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인데, 두 번에 걸친 민주 세력들이 권력을 가졌다가 상실한 것도 첫 경험입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발전과 후퇴의 관계로 보는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아요.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 크게 후퇴했는가? 나는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제도적으로 정상적인 선거를 치르고, 정당들이 경쟁해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고, 이 과정에서 큰 정치적 위기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퇴행했다, 파시즘으로 나아갔다, 3공이나 5공보다도 못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비판세력들의 민주주의관에 대해 나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권력이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할 때 분연하게 저항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촛불시위가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촛불시위는 쇠고기 협상, 통상 문제로부터 발생한 이슈라는 면도 있지만, 민주주의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가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중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것은 보수정부가 권위주의화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였습니다. 정부가 비판적인 소리를 억압하니까 과감하게 여기에 도전하고 저항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민주주의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민주 대 독재, 민주 대 반(反)민주라는 등식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20년 전 민주화투쟁 당시의 정치상황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극히 협소한 문제인식이지요. 8,90년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도 역동적으로 변화했고, 사회도 변화했고, 새로운 문제들도 많이 제기됐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작동시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엄청나게 많은 거지요. 정치의 초점은 권력에 대한 저항, 투쟁으로부터 국가와 정부를 어떻게 잘 운영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통치의 문제로 이동했고, 따라서 정부운영의 능력이 핵심주제가 됐습니다. 이것은 거리의 운동의 정치에서 정당, 선거, 정책, 대표와 책임 등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로 정치의 중심이 이동했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민주 대 독재라는 대립구도는 이 문제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소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인식, 발상, 담론은 너무 협소할 뿐 아니라 사람을 계속 흥분하게 만듭니다.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마치 민주주의나 진보처럼 인식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시각은 실제 민주주의가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들, 즉 정치 사회 경제적 이슈들을 표출되지 못하게 하고, 다루지 못하게 하는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인 공론의 장, 담론이 좁은 범위에 갇혀,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고, 야유하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수의 틀에 갇히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봐요. 이런 조건에서는 다른 사회경제적 이슈들이 제기되기 어렵습니다.
민주정치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굉장히 많습니다. 이를 테면 정당정치의 문제가 그렇고,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갈등문제 같은 것이 그런 것이지요. 민주와 진보를 이야기하고 촛불이다, 서민이다, 복지다, 이런 것들이 담론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들은 터치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 사회의 인사이더(insider--체제안에서의 사회층)들의 문제의식이 좁은 범위 안에서 쳇바퀴 돌듯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격적 열정은 충만하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내용이 다뤄지지 못함으로써 실제로 정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청와대와 정당의 이원화, 정치 부재의 배경
프레시안 : 정치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이번 예산안 처리과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을 여당은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보였습니다.
최장집 : 이 문제에 대답하는 배경으로서 그 맥락이나 틀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포함하여 민주화된 이후에 정치, 권력의 작동방식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집행부 중심의 정부운영, 대통령과 정당정치의 괴리, 대통령권력에 대한 정당정치의 위계적 종속이라는 말로 특징될 수 있고, 이것은 보통 편리하게 당정분리라는 말로 나타나고는 합니다. 사실상 이런 식의 통치방식은 모든 정부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청 (당과 청와대) 분리를 특징으로 하는, 청와대의 지휘를 받는 당정관계랄까, 정치의 이원화는, 권력관계에 있어 대통령의 강함과 정당의 약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은 정당들이 그들이 기반으로 삼고 대표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지 못하는 조건에 기인합니다. 청와대가 중심이 된 집행부 권력과 정당이 이원화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부재를 가져오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권위주의적 정치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서 대통령의 의사와 결정을 여당과 의회를 통해 권위주의적으로 밀어붙여 관철하는 현상이 일반화된다고 봅니다.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폭력적으로 법안이나 예산안같은 중대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방식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것은 권위주의시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행태이지만, 그 행태는 모두 다른 내용과 동기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이 임기말에 가까워지니까 레임덕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한 행위는, 투표자들이 선거를 통해 잘못한 것에 대해 정당을 징벌할 수 있고, 정당이 이러한 징벌이 두려워 대통령을 견제하고 압력을 가해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의 결과이지요. 거기다가 한국에서는 사법부가 허약하기 때문에 집행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4대강 사업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야당의 견제에 부딪힌 법안이 법원의 판결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법원의 결정이 정부여당의 의사와 다른 것이 되기는 어렵겠지요. 법원을 통해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에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전반적으로 정치의 부재현상은,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과 연결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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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운영의 주체, 즉 대통령 개인이나 집행의 담당자, 이를 지지하는 세력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장집 : 결국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시민 투표자들의 판결에 따라서 권력을 운영하고 공적 결정을 내리는 체제입니다. 그러므로 선거의 결과에 순응한다고 할까, 이것을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예로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자들의 집합적 결정이 굉장히 이성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선 대선이나 총선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패배한 결과로 인한 야당 견제세력의 상실, 그것에 대한 보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힘의 균형은 국민의 소리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제 중단하라는 국민이 보내는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민주주의라는 게 소수자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하는 겁니다. 선거의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이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영어로 말해 델리버레이션 (deliberation--熟議 또는 논의), 즉 공적 영역에서의 이성적 논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건입니다. 이러한 공적 논의의 중심에는 의회가 자리 잡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공적 논의의 전통이 없고 정치가 이것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공적 논의과정을 무시하는 것을 너무나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가 제일 중요한데, 그런데 그것은 전체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것이 핵심이예요. 다수와 소수의 힘의 균형과 배분을 결정짓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정책결정, 공적 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공적 논의의 장에서 의제를 심의하고 사회의 소리들을 논의하는 것은 다수결주의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의회 자체는 투표만 하는 장소가 되고, 누구의 권력이 더 강한지를 겨루는 격투장이 될 수밖에 없어요. 다수결은 모든 이성적 논의과정들이 끝난 다음 결정을 위해 행해지는 최종의 의식(儀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논의과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미국에서도 오바마와 민주당이 집행부와 상하 양원에서 다수인데 힘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지 않습니까.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습니다.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상원은 여전히 민주당이 다수이고, 대통령도 민주당이니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던 부시의 부자감세안 문제를 공화당과 타협했습니다. 다수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론을 타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말하자면, 유권자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줬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다수로 만들어줬지만, 자신이 다수이기 때문에 모든 결정을 다수결로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지요. 이 점 때문에 우리는 국회운영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민주당, 인사이더 플레이에서 벗어나야
프레시안 : 집권여당이 힘의 정치를 밀어붙이니 야당들로서는 자신들의 정치공간을 잃어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야당도 불가피하게 장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최장집 :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수인 정부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격렬하게 반대하고 투쟁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측면이 우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야당이 잘했다, 여기에 만족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거지요. 야당은 왜 이렇게 하는가, 뭔가 대안을 보여줌으로써 여당이 야당의 정치적인 수준과 행위에 대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야당의 구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이야기해 봅시다. 나는 민주당의 구조나 제도가 잘못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선출에서부터 시작해서 당의 리더가 권위와 리더십을 갖고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것을 진행할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면서 지휘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 야당의 구조는 리더가 리더로서 행위하지 못하도록 옥죄는 느낌을 받습니다. 결국 사회적 기반이 너무나 약하고 협소하기 때문에 야당이 너무 취약해서 야당의 리더십과 행태는 결국 언론에 의존하게 되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또 언론은 앞에서 언급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같은 이분법적 발상에 지나치게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판언론은 이념적으로 급진화됐고, 정서적으로 흥분해 있으면서, 사회의 급진적 비판적 의견만을 집중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민주당의 리더들은, 이러한 급진적인 언론에 의존하게 됐고, 투쟁적인 진보경쟁을 통해 스스로의 입지나 지지를 획득하려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튼튼한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다면, 또는 갖기 위해서는 당을 컨트롤할 수 있고, 당의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리더십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것을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강경 경쟁이랄까, 그 외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결국 정부여당의 권위주의적 권력운영에 보조를 잘 맞춰주는, 하나의 짝이 돼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읍니다. 이것은 보수적인 주류언론들과 보수적 정치인들이 깔아놓은 텃밭에서 야당이 잘 맞춰주고 있는 셈이지요. 야당으로서 대안을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현재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지적해 주신 야당 내부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단초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최장집 : 내가 대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웃음), 우선 민주당의 지지기반, 사회적 지지기반이 상당히 얕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지역적으로 호남에 편중돼 있는 점도 있고, 정당으로서 체제를 정비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밖에서 동원된 정치랄까, 목소리가 크고 강한, 강경한 비판적 정치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는 구조입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고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집단으로 확대하려는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인사이더들의 경쟁구조를 갖게 된것 으로 보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야당의 정치인들과 정당 밖의 언론인, 지식인전문가 그룹 등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이 인사이더들의 이해와 관심사항을 담론장으로 끌어내고 이슈로 만드는, 일종의 닉서스(nexus : 결탁)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이를 실제 사회세력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론의 영향력으로는 야당의 역할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실제 투표에서 얼마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보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이러한 진보경쟁, 급진적 경쟁보다는 어떻게 당을 사회의 주요 집단들과 연결할 것인가? 어떤 사회적 문제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나?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아울러서 지지기반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 내에서 경쟁하는 정치인들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것은 급진적이고 날 선 언어와 담론을 사용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내부에서 제한된 수의 정치 엘리트들 간의, 인사이더 플레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계속해서 급진적 담론만 갖고 서로를 끌어내리거나 혹은 리더십을 나눠 가지면서 각자가 이를 향유하는 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민주당에 미래는 없지요.
MB 정부 개헌론은 국면전환용 카드
프레시안 : 정당들의 이런 취약한 구조에 기반한 정치의 부재 문제가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최장집 : 개헌은 기본적으로 진공상태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의 정치적 조건에서 권력을 향한 경쟁자들이 우월한 지위를 점하기 위해 이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결부돼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개헌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동기를 갖는 사람들이 개헌을 둘러싼 논의의 틀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개헌 드라이브의 배후에는 모두 알다시피 청와대가 있지 않은가요. 상당히 좋지 않은, 정치적이고 정략적 목적이 강한 개헌 제기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까워지면서 이를 벗어나고자하는 국면전환용 카드랄까, 이는 우리의 현재 헌법이 작동하는 문제, 그 효과의 문제, 새로운 개헌 이슈가 실제로 어떤 제도적 효과를 갖느냐 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현실을 특정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장 왜 개헌을 하는가,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과연 잘못된 것인가부터 살펴야 합니다.
나는 5년 단임제 개헌은 한국에서 민주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막강한 대통령 권력의 독주나 전횡을 견제하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아직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도 때문에 민주주의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언젠가는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사회제도의 기본 틀이 헌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도에 천착하는 것은 정치를 보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제도가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 여기에 대해선 많은 학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의 틀 안에서 정치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를 보지 않고 그 제도를 일거에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좋은 정치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의 개헌논쟁이라는 것은 위험한 문제제기이며, 큰 정치적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개헌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선거구제 개편 문제입니다. 현재의 선거구제가 표심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런데 우리 선거구제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가 아닙니까. 이것이 가장 좋은 제도, 비례성이 가장 높은 선거제도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선거구가 작을수록 대표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선거구제는 2당에 상당히 유리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 소선거구제를 고쳐서 2당의 위협을 견제해 보려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학계에서는 합의가 돼 있는 문제입니다. 언론에서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어요. 아무래도 언론이 현실정치에 밀착되다 보니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복잡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프레시안 : 야권에선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염두에 둔 연대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맥락에서 본다면 야권연대 과정에서 역시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장집 : 선거 과정에서 정치세력이 서로 연합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에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어요. 선거를 통해 여러 다양한 정책적 차이들이 너무 다양화되면 수렴과 통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즉 연합은 수렴과 통합의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대선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번의 단순다수 선거제도를 통한 대통령중심제가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양당적 효과랄까, 크게 두 블록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것을 부추기는 제도이기 때문에 정치연합을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정치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나 담론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의 정치연합은 기본적으로 반(反)이명박 전선,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결과물입니다. 굉장히 네거티브한 정치연합이라는 것이지요. 누구를 반대하기 위해 정당이든 뭐든 사회정치 세력이 모여 적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진보 영역에서 제기되는 정치연합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당들은 일단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자신의 사회적 대표성을 확대, 강화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합니다. 이런 차이들은 다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성급하게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드라이브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합은 대선에서는 좀 더 용이할 것이고, 총선에서는 더 어렵겠지요. 특정 선거구에서 어떤 근거로 특정한 후보와 정당을 주저앉히고 연합의 이름을 내세울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연합을 할 때 필연적으로 후유증의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어쨌든 현재 정치권 밖에서 야당통합에 대한 압력이랄까, 이런 것은 과도해 보입니다. 운동적 차원에서 연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MB, 진보적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프레시안 : 올해부터 정치권도 서서히 선거 모드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2년 선거를 앞둔 정치권, 어떻게 전망해 볼 수 있을까요.
최장집 : 2012년에 두 번의 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크게 보면 진보와 보수라는 큰 틀에서 경쟁하는 것은 틀림없는 현실이고, 이런 구도로 볼 때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선거는 시계추와 같이 움직이는 사이클이니까요. 2007년에는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어요. 그런데 이 정부가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치를 했다면 모르지만, 사이클로 보면 민주당이 상당히 유리해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정당적 제도화는 여전히 너무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민주당에 부여되고 있는 기대와, 실제 민주당이 갖고 있는 힘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음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민주당이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체질을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행운들이 동시에 작용해서 집권한들 그 결과가 어떨까요. 집권을 해도 '이런 수준으로 도대체 왜 집권하려고 했느냐', '우리가 왜 밀어줬는가'라고 하는 불만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이내 반작용으로 나타나기 쉽지 않겠습니까? 경쟁의 내용이 좋아져야 하고, 이 경쟁을 통해 승리했을 때 과거 진보적인 정부들에 비해, 그리고 앞선 이명박 정부에 비해 더 잘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선거를 여러 번 거쳤는데,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이 집권했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민주당이 좋은 정당의 구조를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 기회에 강조했던 말이지만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사회집단이 너무나 많습니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되니까요, 한나라당이 1당이라고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체 유권자들을 기준으로 볼 때, 투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많지 않습니까? 결국 판가름은 투표율에서 납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지지층을 민주당 지지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제기하고, 이를 실현할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를 주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제도, 정당 밖에서 운동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포퓰리즘적 운동방식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투표율이 어떻게 선거의 성패를 가늠하느냐 하는 것은 지난 11월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도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오바마가 말했듯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박살"이 났는데, 선거결과는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오바마를 당선시킨 투표자들이 공화당으로 정당지지를 옮긴 때문이 아니고, 이번 중간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2년 전 선거에서 공화당의 온건지지파들은 기권하고, 무당파들이 오바마를 지지했고, 그동안 투표하지 않았던 청년, 노동자, 흑인등소수인종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결과가 그를 당선시킨 바 있었지요. 그런데 2년 후에는 무당파를 포함한 오바마의 잠재적 지지층들이 대거 기권했던 반면, 공화당 지지층이 모두 적극적으로 투표했던 것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예요. 한국에서의 앞으로의 선거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소외 세력들의 정치참여가 진보적 정당들의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적 동원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정당의 리더십과 체질은 진보적인 언사나 레토릭을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좋은 정치적 리더십을 만드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됐다고 봅니다. 보수적 정당이든 진보적 정당이든 좋은 리더가 선출될 수 있는 구조가 좋은 정당이고, 좋은 정치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너무 쉬워요. 대통령까지의 여과과정이 너무 짧고, 우연적이고 운수가 너무 많이 작용합니다. 국회의원 한두 번 하면, 너나없이 대통령하겠다고 나서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치 리더에 대한 스크리닝 과정이 너무 단순해요. 실제 정치적 실천 속에서 검증되고 걸러져서 위로 올라갈수록 좋은 인물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구조를 꼭 제도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리스크가 많은 제도적 맹점과 병행해서 일반의 정치적 무드를 끊임없이 흥분시키는 언론도 문제입니다. 그렇게 형성된 무드에 따라 대통령이 선출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입니다. 386이니, 486이니 하는 사람들도 아마 한두 번 국회의원 하면 모두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애국심이라는 말을 좋아하지않는데, 그러나 애국심이 정치인의 윤리적 덕목으로써 필요할 때도 있다고 봅니다. 권력추구의 야망이 큰 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에게는 애국심이 필요합니다. 그에게 애국심이 있다면 스스로의 능력을 잘 판단하고 자제해야 합니다. 본인 생각에는 누구보다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재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4년차를 맞았습니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유념해야 할 점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최장집 : 보수적이라고 해서 안보에 대한 성과를 내겠다는 강박관념은 극히 위험합니다. 그런 관념은 과거 냉전시기, 권위주의 시기와 다를 바 없는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쪽의 소리,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의견을 수렴하는 게 필요합니다.
또 레임덕에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최근의 예산안 날치기도 레임덕을 돌파하자, 피해 보자는 동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레임덕은 그런다고 피해갈수 있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빨리 옵니다. 레임덕은 민주주의 제도, 임기를 갖는 모든 공직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선거제도의 사이클에 순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돌파하고자 무리한 수를 쓰는 것은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미 후반기로 넘어 갔는데, 과단성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벌여놓은 정책이나 과제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헌법과 제도를 존중하고 선거를 잘 관리해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쪽으로 일을 해야지, 무리한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소리를 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폐쇄적인 결정구조 속에서 보수적 소리가 일방적으로 과다 투입되고 있고, 공익을 위해 공직에 봉사한다는 이미지보다 사익(私益)추구적 목적을 위해 공직을 휘두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사투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양한 소리, 비판적 소리까지 광범위하게 듣는 것이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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