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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인민'…언어의 종다양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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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인민'…언어의 종다양성을 위해

〈전태일통신 10〉 우리사회와 문화의 건강성

북극 지역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은 어떤 종류의 눈과 얼음, 그리고 바람이 사람과 개와 카약의 무게를 견뎌주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압니다. 그것이 생존에 필수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눈과 얼음과 바람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 한국인들은 눈을 그냥 눈이라고 하나의 종류로만 부르지만 이누이트족은 서로 다른 눈 종류에 따라 눈을 부르는 수십 개의 말이 있습니다.

해양 생물학자인 R. E. 요하네스는 1894년에 태어난 팔라우 어부 한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 어부는 서로 다른 물고기 300종 이상을 알고 있었고 전세계 과학문헌에 기재된 어종 자료의 몇 배나 되는 어종들에 대해 그 음력 산란 주기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북서쪽 민도르 섬에 사는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종 이상의 식물을 구별합니다. 이 지역 식물에 대한 하우누족의 분류는 서구 과학에 따른 분류보다 400종 이상이나 많은 것입니다.

서시베리아에 살던 한티족의 언어에는 새나 물고기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특정 종에 해당하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한티어의 80%는 동사이며 특히 소리에 관련된 단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리가 물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소리'가 따로 있고 '곰이 크랜베리 숲을 걸을 때 내는 소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풍부'라는 단어는 한티어로 '산딸기가 많다'는 의미이고, '행복'은 '내 마음이 즐겁다'입니다. 한티족은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이름을 붙일 때 자연에서 표현을 빌려왔습니다. '사진'은 '물이 고요히 고여 있는 웅덩이'라 불렀고, '모자'는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위쪽이 넓은 나무'로 번역했습니다.

언어는 문화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보물창고입니다. 언어는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생태계 보존과 문화 종다양성 보존의 열쇠는 언어 속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언어가 지금 자살이 아닌 학살을 당하면서 멸종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1974년 영국령 맨 섬에서는 맹크스어를 할 줄 알았던 마지막 사람 네드 매드럴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옛 맹크스어는 이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1987년 캘리포니아 주에 살던 로신다 놀라스케스가 94살의 나이로 죽자 쿠페뇨어 사용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와포어의 마지막 사용자 로라 소머설도 1990년에 죽었습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원주민 언어 187개 가운데 149개가 이제 아이들이 더 이상 배우지 않는 언어로 추정됩니다. 1992년 카프카스 북서부 지역에 사는 마지막 우비크어 생존자 테비크 에센크의 죽음과 함께 우비크어도 이 지상에서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유럽과 접촉하기 전까지 250여 종에 달하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언어는 이제 거의 사멸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인디언 언어는 미국의 일부 주 이름으로, 다시 말해 대평원이란 뜻의 인디언 말에서 유래한 와이오밍, 친구라는 말인 텍사스와 다코타, 잔잔한 물결이란 뜻인 네브라스카, 붉은 사람이란 뜻의 오클라호마, 미래의 땅이란 뜻의 켄터키 등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세계에 알려진 언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아주 풍부한 내용을 자랑하던 문화, 지역 생태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와 함게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던 생태적 삶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정확히 얼굴 흰 사람들의 제국주의 침략과 원주민 대량학살과 일치합니다. 영국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니아 원주민들을 짐승보다 못한 동물 취급하면서 강간하고 사냥하듯 가죽을 벗기며 마구잡이로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처음 접촉한 지 75년만에 모두 몰살시켜버렸습니다. 물론 태즈메니아어는 언어학의 관점에서 매우 희귀하면서도 가치있는 언어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비크어의 사멸도 19세기 말 러시아의 시베리아 침략과 원주민 대학살의 결과였습니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도 영어 공용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무식하면서도 그처럼 위험한 파시즘 발상이 나올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토양이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미국이나 서양의 문화제국주의에 깊숙이 침윤된 '누런 피부 흰 가면'의 친미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수백만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대량학살 당했습니다. 이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빨갱이란 용어가,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라는 용어가 무소불위의 저승사자 역할을 하며 남북한 사회를 각기 기형의 정신병 사회, 증오와 학살을 당연시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남쪽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상과 문화를 반공이라는 가시철망 투성이의 절대 감옥에 가두어 놓아 버렸다는 점입니다. 반공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아예 싹까지 잘라내버리는 기형의 사상과 문화가 몇 십년 동안 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동무', '인민'이란 말의 역사는 아마도 제일 도드라진 경우일 것입니다. 동무와 인민이란 말은 한국전쟁에서 학살당한 언어였습니다.

동무는 친구라는 말이나 동지라는 다분히 이념의 냄새가 풍기는 말에 비해 정말 따뜻하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뒷동산의 풀과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감어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근 반세기 동안이나 마음놓고 쓸 수 없었습니다.

인민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황국신민'을 줄여서 쓰던 용어로서 다분히 파시즘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제헌국회 헌법은 처음에 인민이란 말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이 인민이란 말은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말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되고 국민이라는 말을 쓰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나중에 일본제국주의보다는 덜할지 모르지만 그와 비슷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려다가 4.19혁명으로 '인민'에 의해 쫒겨난 이승만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헌국회 헌법 제정작업을 했던 유진오는 인민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정말 아까운 말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안타까와 했다고 합니다.

동무란 단어를 빨갱이 단어로 낙인찍고 인민이란 말을 쓰기가 겁나는 세상에서 사상이 깊어지고 문화가 꽃피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우기는커녕 사상과 문화의 사막화를 초래하는 야만의 언어학살, 사상학살, 문화학살입니다. 그런 사회는 절름발이 사회, 아주 천박한 사상만이 판치는 단세포의 문화가 지배하는 불임 사회일 뿐입니다.

단일민족이나 단일종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널리 잘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단일민족이나 단일종은 종다양성이 꽃피는 경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금방 멸종되어 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환경적응력이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한 품종의 감자만을 재배한 결과, 병충해가 돌자 아예 감자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오늘날 바나나가 이런 단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조만간 바나나가 멸종되고 말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600만~700만에 이르는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가 모두 나서서 다양한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대안에 대해 그것은 사회주의 발상이다, 공산당 견해와 똑같다, 빨갱이와 똑같은 짓이다 등등의 간 떨어지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야당이나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경제단체에서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근시안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그런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으려는 반공전체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는 아무런 대안을 모색조차 하지 못하는 미래가 없는 사회로 전락하게 됩니다.

문제점 투성이의 법안이지만 과거사법이 통과되고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늦었지만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고 해원의 단초를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동무와 인민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상과 문화의 종다양성을 되찾는 일이자 우리 사회의 대안과 미래의 종다양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동무'와 '인민'이란 말을 당당하고 거리낌없이 쓰고자 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동무'들이여, 저 쪽방에서 시들어가는 '인민'들의 고통을 한번만이라도 느낀다면, 열대 밀림이 껍질까지 벗겨지고 있는 지구의 신음소리를 단 한번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러면 이제 더 늦기 전에 한 발짝 행동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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