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이 27일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보다 의문이 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제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우리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 특강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지난해 4월 장 교수를 초청해 특강을 들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와 신자유의의에 대해 반신반의 하고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경제 성장에서 세계적인 모범 국가인 대한민국이 언제부터인가 저성장 늪에 빠져 국민소득 2만 달러 벽을 못넘고 있다. 양극화 심화, 고용 불안, 금융위기는 상시화됐다. 이런 현상은 문민정부의 세계화 선언으로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은 "우리가 믿고 따라온 길을 되돌아보며 '오매 이길이 아니었나벼' 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라면서도 "천장에 비가 새는데 천장을 고칠 생각은 않고 계속 날씨 탓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불편한 진실을 외면만은 할 수 없다. 고통과 저항이 따르더라도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이 시점에서 그 일(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도태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를 쓴 한나라당이 한순간에 일본 자민당 신세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최고위원은 "신자유주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심화시킨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라며 "장하준 교수의 강연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길을 성찰하며 새로운 번영,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이-친박-민주당 의원들 참석…한나라 의원 '노트 필기'도
이날 강연은 성황리에 진행됐다. 김충환, 남경필, 백성운, 이혜훈, 임해규, 정몽준, 정태근, 전재희, 조해진, 홍일표 의원 등, 정 최고위원과 함께 공동 주최로 이름을 올린 의원들만 10명이다.
서병수 최고위원, 한선교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차명진, 강명순 의원 등 친이계 의원들 다수가 참석했다. 민주당 원혜영, 이용섭, 최영희, 박병석 의원 등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강연을 경청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수첩에 장 교수의 강연 내용을 메모하기도 했다. 최근 장 교수의 저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는 모습이었다.
장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현안 문제에 대해서도 일부 언급했다. 장 교수는 "북한과의 (연평도 포격 이후) 갈등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지수가 2000이 넘었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 아니고 되려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의 이례적인 금융위기로 이자율을 낮추자, 국제 자본이 이자율이 높은 후진국으로 몰리는 것이다. 한국의 주가 지수가 많이 오른다고 하는데 남미 국가들은 두 배 이상 오른 곳도 있다. 이 돈이 다시 선진국으로 돌아가면 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FTA와 관련해 "한나라당에서 한미FTA 반대하는 장하준이 강연한다니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워낙 현안이기 때문에 제 의견을 말하겠다"며 "양국간 협정을 할 때는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규모가 선진국의 50%정도 되는 나라인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효과를 내려면 경제 규모가 선진국의 80%정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0% 규모의 한국이 한미FTA를 체결하면 경제가) 도리여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복지'와 관련해 "복지 국가의 복지 정책이 좌파 정책으로 생각하지만 복지 정책을 만든 것은 독일의 보수 정치가 비스마르크"라며 "그는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그냥 놔두면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얻어서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료보험 연금 등을 차례로 만들어 보수 정치학자가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한나라당도 이같은 복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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