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선 실패, 나아가 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한 두려움마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정치 구제역'이다.
수도권 인사들의 잇따른 경고음…그래도 주류는 '도로 영남당'?
최근 만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나라당은 원래 영남 중심 정당이다. 주류가 영남 TK(대구경북)이다. 민정당 출신, 경북고 출신, 여기가 성골이다. 이게 한나라당의 보이지 않는 뼈대다. 그래서 항상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영남 중심으로 가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 인사가 언급한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열린 전당대회다. 한나라당은 당시 영남 인사이자 민정계 출신의 박희태 대표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동작을로 지역구를 옮긴 정몽준 전 대표는 2위에 그쳤다. 관리형 대표 체제를 위한 주류 결집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당내 수도권 세력이 밀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려면 영남이 아니라 수도권 출신들이 당 대표도 하고 수도권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수도권 이익을 지켜주는 당이라고 해야 표를 주고 지지를 하는 거 아니겠나'고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은 영남 쪽에 더 가까이 있다. 형님예산, 실세예산이 전부 영남 예산이다. 이렇게 비치면 수도권 사람들이 정말 이 정부를 싫어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한나라당내 '수도권 반발'의 키워드는 지역구의 '공포' 그리고 청와대의 '둔감'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 2008년, 구정을 앞두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시장을 방문해 두부를 시식하고 있다. ⓒ뉴시스 |
서울 강서갑 출신 구상찬 의원은 "지금까지 모두 248개의 연말 송년 모임을 다녀왔다. 어제는 코피까지 나더라.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면 뭐 하나. '자연산' 발언으로 한 방에 날아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바람을 타고 대거 당선된 초선 수도권 의원들의 '공포감'이 묻어나오는 발언이다. 이같은 공포감에 대한 반응은 당내 부자감세 일부 철회 움직임, 법안 강행처리시 총선 불출마 등 수도권 의원들의 '움직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강경론에 반기를 든 의원들도 대부분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다. 휴전선에서 직선으로 30Km 떨어진 서울 지역 의원들 입장에서 '불안감'은 쥐약이다. 강경책 재검토를 주문한 홍준표 최고위원은 서울 동대문, 정몽준 전 대표는 서울 동작, 남경필 의원은 수원 팔달을 지역구로 두고 있고, 홍사덕 의원은 서울-수도권에서 4선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민심은 이런데, 수도권 인사들의 '자책골'마저 잇따르고 있다. 안상수 대표는 경기도 과천 의왕, 공군 장교 출신으로 안 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을 거든 안형환 의원과 황진하 의원은 각각 서울 금천, 경기도 파주다. '국회 핵주먹 논란'의 김성회 의원은 경기도 화성이고, 지금은 무소속이지만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은 서울 마포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둔감하다. 당의 부자 감세 철회 논쟁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45%에서 50% 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수도권 의원들의 '반란'을 '오버'로 이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은 횟수와 강도 모두 높아지고 있다.
MB의 한나라는 TK도 아닌 PK(포항·경북)?
한 한나라당 인사는 "수도권 민심을 중심으로 형님 예산 논란이 커질수록, 영남 예산 논란이 커질수록, 중앙 일간지를 받아보는 영남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배어나온다"고 했다.
수도권이 소외되면, 한나라당은 '도로 영남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로 영남당'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영남 민심이 그에 호응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영남'은 '정통 TK'와는 거리가 있다.
이 대통령을 밀어올린 두 축은 수도권과 포항, 안강, 영덕 등 경북 해안지역이었다. 영남 주류인 대구와 경북 내륙 지역에선 박근혜 전 대표 지지세가 강했다. 대구에선 "MB정부는 PK(부산-경남이 아니라 포항-경북을 뜻하는 말)정부다"는 말이 돌 정도다.
경북고 출신인 김문수 경기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TK 본류인가. 따지고 보면 내가 TK 본류"라고 한 것도 이 대통령의 영남 기반의 취약성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발언이다. '도로 영남당'이라고 해봤자 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이상득계가 주류가 되는 상황이다.
현재 주류 TK의 패자는 박근혜 전 대표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현재 복지 화두를 꺼내들고 수도권 민심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다. 한 친박 핵심 인사는 사석에서 "수도권 의원들이라고 하더라도, 2012년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면 과연 누구에게 유세를 부탁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가장 확실한 지지율을 담보하는 박 전 대표의 지원에 목매는 것이 영남만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물론은 박근혜, 지역기반은 '비주류' 영남으로…총선, 대권 모두 '빨간불'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의원들이 주류에서 이탈하게 되면 한나라당은 급속도로 '정통 영남당'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다. PK(포항경북)와 TK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게다가 세종시 문제로 충청 민심을 휘저어 놓은 이명박 대통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에게 '세종시 원안 사수'의 공을 얹어주게 됐다.
또 민주당은 끊임없이 PK(부산경남)을 두드리고 있다. 김영춘 최고위원이 부산 몫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김두관 경남지사는 무소속이지만 그 뿌리를 야(野)에 두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의 '부산 출마설'도 끊임없이 들린다. TK중심성이 강화될 수 있는 배경이다.
수도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집권한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이 49%다"라고 했고, 한나라당 내 'MB친위그룹'은 "수도권 민심도 예산안 날치기 정국을 통과하면서 극악스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 초선 의원들이 '오버'한다"고 평가절하 하고 있다. 청와대의 기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인식이 이와 같다면, 수도권 민심이반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야성(野性)이냐 박성(朴性)이냐의 경쟁에 이 대통령이 낄 자리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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