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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괴짜'가 주인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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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괴짜'가 주인되는 세상을 꿈꾼다

[프레시안 books] 'Unfuck the world', 나우매거진의 첫번째 도시

몇몇 유서깊은 도시를 빼고, 현대에 번영한 도시들의 목적은 어쩌면 인간을 위한 게 아니었을 거다. 시스템과 체제를 위한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삶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본과 그 자본의 거대 산업이었던 전쟁을 위해 삶의 터전이 도시로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근대 국가가 탄생한 이후로 도시는 근대 국가의 시스템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포틀랜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개척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후엔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강력해진 연방 국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도시엔 공장이 생기고, 군함을 만들기 위해 조선업 관련 금속 산업이 발전했다. 전쟁은 확실히 돈이 됐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도시가 형성되면 도시적 삶이 탄생한다. 산업을 만들고 정치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생존 환경을 정비했다. 낡은 건물은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세웠다. 무질서하게 만들어진 도시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 태어나야 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필요했다. 냉전마저 끝나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사람들은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언제나 역사의 정점을 갱신해 왔다. 매일 고기와 야채가 싼 값에 공급되고, 수많은 상품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진다. 엄청난 양의 석유를 퍼올리고 그 석유로 자동차를 굴리고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철을 만든다. 전기를 생산한다.

매일 아침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도시 밖으로 실려 나가고, 우리는 또 무언가를 만들고 쓰고 버리는 하루를 살아간다. 생존의 문제보다 안락함과 편안함, 간편함이 더 중시된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남김없이 사용해버릴 기세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인간은 도시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까?

처음 포틀랜드를 알게 된 것은 미국 NBC에서 방영한 드라마 <그림>(GRIMM)을 통해서였다. 인구 60만 남짓의 도시에서 온갖 기괴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인간 틈에 섞인 '베슨'이라는 족속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살며 벌어지는 일들이다. 우리 틈엔 늑대인간, 사자인간, 돼지인간, 생쥐인간 등 수백 종류의 베슨이 있고, 그들을 발견해 처단하는 주인공이 '그림'이다. 그림은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의 학자이자 작가인 그림 형제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림 형제가 수집해 정리한 동물과 인간, 그리고 마녀와 왕족의 스토리가 실제 존재해 왔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이 현대판 판타지 드라마의 배경이 왜 포틀랜드인가 궁금했었다. 포틀랜드에 대해 알게 되니 그제야 무릎을 쳤다. 온갖 기괴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그 곳이 포틀랜드였다.

▲ 나우매거진 1호, 포틀랜드

Keep Portland weird, 포틀랜드를 '정상적인 도시'로 오염시키지 말라

나우매거진(nau magazine)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1년에 두 번 발행되는데 매호 도시 하나를 선정해 그 도시의 삶을 상세하게 취재해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 나우매거진 창간호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는 미국 오레건주의 포틀랜드다. 묵직한 잡지 한권에 포틀랜드를 통으로 담았다.

나우매거진은 포틀랜드에 기반을 둔 패션 브랜드 나우(nau)가 독립 출판사와 함께 손을 잡고 창간한 잡지다. 나우는 2007년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탄생한 지속가능한 라이프 웨어 브랜드다. 포틀랜드는 나이키와 파타고니아 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다. 이곳 출신 디자이너와 MD가 새로 만든 브랜드가 나우다. 친환경적이고 기능적이며 자연과 도시의 공존을 꾀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지난 2014년 국내 기업인 블랙야크에 인수됐다.

나우의 슬로건이 재미있다. 'Unfuck the world', 망친 세상을 되돌리자는 의미다. 욕설을 뒤집은 유쾌한 발상이다. 이는 그만큼 세상이 'Fucked up'된 상태라는 걸 상기시킨다. 아이러니를 통해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인간이 얼마나 '엿같이' 만들었나 되돌아보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한가. 그 삶이 가능한 도시로 왜 포틀랜드를 꼽았는가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왜 포틀랜드일까.

"포틀랜드 사람들은 푸르른 자연에 둘러싸여 일과 삶이 조화롭게 균형 잡힌 삶, 로컬 채소를 즐기며 지역 아티스트의 제품을 사용하고 메이커스 정신을 살려 가능한한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을 지향한다. 미국 최대의 자전거 도시이자 개인은 물론 기업까지 지속 가능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포틀랜드는 타투가 성행하고 마리화나와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자유로움이 보장된 도시다. 자연과 도시 그리고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Keep Portland weird(포틀랜드를 '독특한' 도시로 남게 만들자)'라는 슬로건 아래 반골 기질이 다분한 '힙스터의 도시'로 알려졌던 이 도시에서 그저 나는 나, 내 일에 상관하지마 정도로 해석되던 weird의 의미는 각자가 지닌 독창성과 타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다양성에 대한 가치로 멋지게 변모했다."

도시를 다루는 잡지다. 지속 가능한 삶은 최근 수십년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말이다. 1992년 지구 온난화와 산업 폐기물 등 지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모인 '리우 협약'에서 공식화 된 '지속 가능한 세계'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화두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현재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도시, '킨포크'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삶의 방식 속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들이 많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에서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곡물을 생산하는 방식의 기업형 농업을 거부하며, 도시 집집마다 마당에서 닭을 치는 도시. 이 곳이 자본주의의 위대한 탄생지 미국에 있는 도시라는 사실은 놀랄만 하다. 유럽과 다른, 일본과 다른, '미국식 클래식'이라고 할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부츠 속 작은 돌맹이처럼 자꾸 신경쓰이게 만드는 이 도시를 탐구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나우매거진에는 독특한 패션 부티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기타를 만드는 기타메이커, 빈티지포스터 복원가, 젊은 수공예 장인들을 위한 공동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창업자,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 시계 제작소, 가구 제작소, 나무로 만드는 아이웨어(안경) 제작소 등을 찾아다니며 젊은 기업가와 노동자들을 소개한다. 식물 보육원, 포틀랜드의 명물 샐러드 전문 레스토랑, 로컬 브랜드와 제작자를 위한 공간, 천연 비누숍, 다양한 마이크로 부루어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포틀랜드에 터를 잡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도 품게 된다.

포틀랜드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면, 포틀랜드를 다룬 미드(미국 드라마) '포틀랜디아'가 있다.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다. 주인공이 식당에서 치킨 요리를 주문하는데, 치킨이 어느 집에서 어떻게 키워졌으며, 어떤 사료를 먹고, 어떤 건강 상태로 자랐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종업원은 친절하게 답을 주지만, 주인공은 그 치킨이 자란 농장에 직접 가서 확인한 후 식사를 하겠다며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가게를 나선다. 그리고 농장에 갔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생활을 하다 돌아온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한다. 판타지와 블랙유머가 섞인 에피소드지만, 포틀랜드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유쾌한 존중심이 느껴진다.

▲포틀랜드

한국의 '포틀랜드'를 꿈꾸며

한국의 도시는 대개 관 주도로 발전이 이뤄졌다. 근대 도시의 형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성됐고, 대개 식민지 수탈을 위해 만들어졌다. 전북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빼돌리기 위해 근대 도시 군산을 만들었다. 군산의 철도와 항구는 수탈을 위해 최적화되어 설계됐다. 최근에는 각 지자체별로 '도시 역사' 발굴과 정리, 복원에 공을 들이는 곳들이 많다. 전에는 국가의 구성 단위로서 도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도시로 규정됐던 것을, 이제 도시 자체의 기록으로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결국 '국가'보다 '도시'에 미래가 있다. 특별한 도시들이 탄생할 조짐도 보인다. '도시'라 부르기보다 '마을'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하지만, 그 곳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직접 공동체를 일구고,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서울에서는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을 비롯, 곳곳에 '마을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은 특히 주목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를 꾸리고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려 노력한다. 홍동마을 식당에서 파는 음식 재료는 모두 로컬이다.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보일러나, 화덕을 만드는 공방도 있다. '마을 공화국'이란 별칭처럼, 그곳 주민들은 '지속가능함'을 최우선으로 두는 룰을 정하고 'weird'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나우매거진은 "지속가능한 삶이 무엇인지 더욱 명료하게 알 수 있도록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태도를 보이는 하나의 도시를 선정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 공간과 가치관을 비롯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운영하는 기업, 지속가능한 삶에 부합하는 사회, 환경, 문화 속 여러가지 이슈들을 균형있게 전달하고자 한다. 단지 이미지 소비 차원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에 대해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한발 더 다가선다. 도시를 선정한 기준 역시 지속 가능한 삶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나우매거진이 선택한 다음 도시가 어디일지 궁금하다. 쿠바의 생태도시 아바나, 친환경 교통시스템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꾸리찌바 같은 곳도 좋을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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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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