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개혁 성향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이 새해 예산안 날치기 사태와 관련해 "더 이상의 인책론은 없다"는데 15일 공감대를 형성했다. '청와대 작품'인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사퇴 선에서 이번 파문을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다만 낮은 수준의 '정풍 운동' 등 추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열어뒀다.
'형님 예산' 등 예산안 강행 처리 후폭풍으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내홍으로 번지는 것은 막겠다는 의미다. '민본21'이 이같은 결정을 내림으로 해서 당에서는 '날치기 후폭풍 책임론'이 더이상 나오기 힘들게 됐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소장파도 별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무성-민본21 한목소리 "형님 예산? 야당이 침소봉대"
김무성 원내대표와 오찬을 함께 한 '민본21' 소속 의원들은 이 자리에서 지역구 민심 등을 전달하며 "예산 처리 시한도 중요했지만 내용 검토가 미비한 상태로 강행처리 한 것, 그리고 이 때문에 국민 앞에 국회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결과적으로 야당에게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실망했다고 (질타)하는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명분에 있어서 야당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으로 '지도부 사퇴론'에 대한 방어막을 미리 친 것이다.
여기에는 '민본21'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세연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청와대 지시에 의해서 예산안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고, 민본21도 그에 수긍하는 등 공감대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형님 예산'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형님 예산이 (야당에 의해) 침소봉대 되면서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도록 (설명 등을 잘) 해야 한다"는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김 의원은 또 "정치 쇄신, 개혁 등의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반성하는 차원의 내용을 담도록 추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만 말했다. 약한 수준의 '정풍 운동' 추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일 벌려봤자 도움 안된다"는 초선들 '구태 정치' 닮아가기
이같은 '민본21'의 태도는 '자중지란'을 일으켜봤자 도움이 안된다는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실제 홍준표 최고위원이 "지금이 당의 전열을 정비할 시점"이라고 하는 등 우회적으로 안상수 대표의 퇴진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재오 특임장관도 연일 '정치 개혁', '객토(기존 토양에 새로운 토양을 섞어 토질을 개선함)'를 외치고 있다. '이재오 복귀설'도 당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시나리오다.
이 상황에서 지도부 퇴진론 등을 펼쳐봐야 권력과 거리가 먼 초선 의원들에게 정치적 이득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여론이 생각 이상으로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있기는 하나 당장 눈 앞에 선거도 없는 상황이라 "숨 죽이고 있어보자"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세연 의원과 함께 '민본21'의 공동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태 의원을 위시해, 대부분의 초선 의원들이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장 몸싸움에 '돌격대' 역할을 해 놓고, 사후에 지도부만 비판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명분도 서지 않고 추동력도 떨어진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0억여 원에 이르는 '형님 예산' 추가 증액분이나, '실세 예산', '각종 복지 예산 미반영' 등과 관련해 초선 의원들이 적극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태정치'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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