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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섬 속의 섬! ‘작은 제주’ 추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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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송년특집] 섬 속의 섬! ‘작은 제주’ 추자도

2017년 12월 섬학교, ‘제주올레’ 추자도 걷기

섬 속의 섬, 제주의 추자도는 ‘생애 최고의 섬’입니다. 일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섬. 겨울에도 따뜻한 남쪽나라. 12월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는 제66강으로, 12월 2(토)∽3(일)일, ‘작은 제주도’라 불리는 추자도로 떠납니다(확보된 예약 승선권이 많지 않으니 이번에 꼭 가실 회원은 미리 신청하십시오).

▲제주 본섬과는 또 다른 매력, 추자도는 버킷리스트에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섬이다. Ⓒ추자면

추자도 인근 해역은 일본에까지 소문난 어장입니다. 그래서 추자도는 낚시꾼들의 천국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했지만 워낙 먼 바다의 섬이라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쾌속선이 뜨면서 뱃길이 가까워졌지요. 해남 우수영에서 1시간 반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추자도는 요새 영광의 칠산바다와 연평도바다에서 사라진 참조기의 최대 산란장이기도 합니다. 영광굴비도 추자도 조기를 가져다 말립니다. 이제는 해풍에 건조한 추자굴비가 영광굴비만큼이나 유명하지요.

망망대해의 작은 섬 추자도의 풍광은 제주도와는 또 다른 다도해의 수려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18-1코스인 추자도 올레길은 산과 바다와 내륙이 어우러진 절경의 연속입니다. 또 사방으로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추자도 등대에 올라서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애 최고의 섬, 이 나라 으뜸 섬으로 손꼽을 만한 섬, <송년특집> 추자도로 초대합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2월 답사지인 <추자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은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물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천상의 정보까지 운반하기 때문이다."
(찰리 라이리 <물의 치유력>)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다가 사람의 생사에 직접 관여한다고 믿는다. 조수(潮水)가 사람의 혼을 옮기고 썰물이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만조 때 태어나는 아이가 많고 간조 때 숨을 거두는 사람이 많다."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면 사람 몸 속의 액체는 바다의 인력에 끌려간다. 달이 뜬 바다를 보면 사람의 심장도 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구름이 제주의 하늘을 덮고 있다. 오늘 제주 바다는 깊고 푸르고 어둡다. 바다의 표면적은 지구 표면의 4분의 3에 달한다. 나그네는 여객선을 타고 큰 바다에 나와서야 비로소 바다의 크기를 가늠한다. 사람은 물의 행성에 떠 있는 한 점 티끌이다.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 본섬의 북쪽에 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추자군도를 이룬다.

추자군도의 횡간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최북단 유인도다. 보길도와 소안도가 지척이다. 그 너머는 해남 땅끝마을이다. 하지만 땅끝은 땅 끝이 아니다. 대지를 가로질러와 해남 땅끝 마을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산줄기는 바다 속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는 흑일도, 백일도, 넙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를 지나 횡간도, 추자도까지 뻗어있다. 섬도 육지다. 한반도와 한 몸으로 연결된 진정한 땅끝은 추자군도의 섬들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상추자도 대서리. 추자도는 영광 법성포와 연평도 어장에서 사라진 조기잡이의 새로운 메카다. 추자항 주변 물량장에서는 조기 따는 작업이 한창이다. 연안유자망 어선 해창호(7.03톤)도 부두에 정박 작업중이다. 오늘 해창호는 추자와 제주 사이의 바다에서 조업했다. 해창호는 조기가 걸린 그물을 그대로 싣고 입항했다. 품팔이를 나온 마을 여자들과 선원들 12명이 일렬로 서서 배에 실린 그물을 뭍으로 끌어당기며 조기를 딴다.

조기들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추자도 역시 올해 조기는 잘다. 오늘 해창호의 어획량은 200여 상자. 잡어는 추려내고 조기만 한 곳으로 모은다. 모든 작업을 마치려면 7~8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물에서 따낸 조기는 깨끗이 세척한 뒤 얼음물에 한 시간 남짓 재워둔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후에는 다시 꺼내 나무상자에 넣고 얼음을 채운다. 하루 정도 지나면 조기의 몸이 더욱 노란 빛깔로 변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해창호 선주 부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낚싯줄 재료인 경심줄로 만든 그물은 그 자체로 바늘 없는 낚시다. 조기들은 낚시가 아니라 그물에 낚인다. 그물코에 머리가 걸린 조기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발버둥 치다 생을 마감한다. 조기 따는 작업장 옆에서 선주 부인이 저녁상을 차린다. 삼치와 조기찜, 김치찌개, 방어전, 고등어회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다. 선주 부인이 나그네에게도 저녁을 권한다. 허기진 나그네는 염치없이 합석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어부를 위해 선주 부인은 해물된장찌개를 따로 끓였다.

▲추자도는 이 나라 최대의 황금어장이다. 추자도로 귀항하는 어선들Ⓒ섬학교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세상은 늘 부족한 곳

수산전문가들은 흑산도와 제주 근해 참조기 풍어는 참조기의 자원량 증가와는 무관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1974년까지만 해도 전국 조기 어획량은 9만4천 톤이었지만 해마다 줄어들어 1984년부터는 1만 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2007년에는 7천여 톤에 불과했다. 올해는 조기 어획고가 다시 1만5천 톤까지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흑산도나 제주 근해에서 잡히는 조기의 90% 이상이 2살 미만이며 평균 몸길이는 14~16cm에 불과하다. 과거에 비해 시기가 당겨졌다 해도 조기들이 산란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몸길이 21.7cm) 이상은 성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린 조기들에 대한 남획이 계속 된다면 연평도나 칠산어장처럼 흑산도나 추자도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조기를 따는 작업장의 불빛으로 추자도의 가을밤은 환하다. 추자어화가 부둣가에 피었다. 기관 돌아가는 소리, 수천 촉 백열등 아래 어부들은 그물을 당겨 조기를 딴다. 밤 10시, 이제 추자도의 조기 따는 일도 끝이 났다. 일꾼들은 돌아가고 선주와 선원들이 남아 그물을 세척하고 다시 배 안으로 끌어올린다. 내일의 출어 준비를 마친 다음에야 선원들의 고단한 하루도 마감될 것이다.

이 조기잡이 풍경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연평도와 칠산어장에서 조기가 멸족한 길을 흑산도와 추자도가 그대로 밟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에 눈 감는 선주들의 욕심이 줄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세상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히 풍족한 곳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언제나 모자란 곳이다.

추자의 신, 최영 장군

한국의 섬들에는 저마다의 신들이 있었다. 연평도의 신은 임경업 장군이고 어청도와 외연도의 신은 중국 제나라의 망명객 전횡 장군이다. 변산 바다의 신은 계양할미고 진도의 신은 영등할미다. 완도의 신은 송징 장군이고 청산도의 신은 한내구 장군이다. 제주 본섬에는 1만8천의 신들이 있지만 추자도의 신은 최영 장군이다. 추자도는 상하 추자 두 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중 하추자에 최영 장군신을 모신 사당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에 의해 제주목사도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군사용 말을 기르던 몽골 출신 목자들이 중심이 된 ‘목호의 난’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영 장군에게 전함 300여 척과 2만5천여 명의 군사를 주어 목호들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최영의 군사들이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잠시 추자도에 대피했다.

그때 최영이 주민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추자도 사람들은 사당을 세우고 매년 백중날과 음력 섣달 그믐에 풍어제를 지내왔다 한다. 최영이 정말 어로법을 가르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추자도 사람들에게 대군을 이끌고 온 노장군 최영은 두렵고도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신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추자가 상추자보다 면적은 세 배 이상 크지만 인구는 상추자가 두 배 이상 많다. 상추자가 고깃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이 발달하고 상업시설이 많은 까닭이다. 섬이나 뭍이나 사람은 이익을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하추자도에는 신양1리, 신양2리, 예초리, 묵리마을이 있고 상추자도에는 대서리와 영흥리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추자섬 주변은 크고 작은 무인도와 여들이 자주 뱃길을 막는다.

섬과 여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섬이 되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암초다. 여는 섬과 섬 아닌 것 사이에서 존재와 부재를 거듭한다. 큰미역섬, 작은미역섬, 밖미역섬은 미역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일 터다. 개린여, 납덕이, 두령여, 상섬, 구멍섬, 덜섬, 쇠머리, 검은가리, 노린여, 문여, 오동여, 검등여, 열섬, 예도, 공여, 악생이, 염섬, 수려섬, 직구도, 관탈도, 푸랭이, 병풍도, 수덕도, 쇠코. 추자의 무인도와 여들. 그 무인도와 여들로 인해 추자 섬은 풍족한 어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추자 섬에 살지만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모두 무인도와 암초들이다.

▲추자도 조기잡이 그물에서 조기를 떼는 어부들Ⓒ섬학교

‘성수대교’는 섬에도 있다!

상추자 영흥리 입구부터 해안가를 따라 상가들이 시작된다. 미원일반음식점, 신안종합건설주식회사, 멸치액젓, 대영듸젤, 여로소주방, 왕족발, 별천지 단란주점, 대림게임장, 스카이 단란주점, 해피다방, 에덴헤어샵, 추광약방, 제일식당, 오동여식당...어선들이 많이 드나드는 포구답게 유흥업소도 많다.

추자면 소재지 부근 영흥리와 대서리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어 마치 거대한 성의 일부분 같다. 옆집과 떨어져 있으면 태풍이나 파도에 휩쓸려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양 옆으로 혹은 앞뒤로 밀착되어 있다. 오래된 습속.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람은, 섬은 군집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섬에서는 모여 살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 바다일은 협업이었다. 또 왜구나, 해적들의 노략질과 살육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모여 살아야만 했다. 삶을 이어가고 죽음에 맞서기 위해서는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추자도의 주거양식은 확실히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구조다.

두 개의 마을은 추자항을 따라 몰려있다. 마을의 반대편 해안은 비탈지고 옹색하다. 상추자 북서쪽의 무인도 직구도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그 풍경을 달리한다. 안개의 날에는 섬의 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사물은 객관적이지만 풍경은 주관적이다. 풍경은 속도에 종속된다. 걷는 속도, 탈 것의 속도, 바람과 안개와 구름의 속도, 마음의 속도에 지배된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 와서도 그려내는 풍경이 사람마다 제 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가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 낸다.

추자대교를 지나 상추자에서 하추자로 건넌다.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추자대교는 하추자도 묵리와 상추자도 영흥리 사이 바닷길을 이어주는 212m의 작고 아담한 다리다. 1966년 착공되어 1972년에 완공된 다리가 있었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교각과 슬래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88년 무렵부터 붕괴 위험에 빠졌다. 부실공사 탓이었다. 다리는 결국 1993년 4월 새로운 다리 공사를 위해 모래를 싣고 가던 트럭의 하중의 견디지 못하고 아주 붕괴됐다. 그 사고로 두 사람이 죽었다. 토목공화국의 부실공사는 외딴섬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감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 낙도일수록 더욱 심했다. ‘성수대교’는 섬에도 있었다.

신양항에는 마을회관과 경로당, 보건진료소, 하추자우체국이 있다. 마을 곳곳에는 공동우물이 여러 곳 남아있다. 다리로 연결된 상하 추자 두 개의 섬은 저수지와 해수담수화 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섬의 생명수였던 우물도 폐쇄되지 않고 남아있다. 물 부족의 고통을 겪어 본 추자섬 사람들이 상수도가 생긴 뒤에도 우물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바다가 이 행성의 피라면 우물은 이 마을의 피다. 우물에서 뻗어나간 혈관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저 우물의 심장에서 배분된 피가 수도 파이프를 타고 마을의 집들로 배달된다. 비 피할 양동이 하나씩을 뒤집어 쓴 펌프는 심장의 피를 옮겨주는 엔진이다.

남으로부터 안개가 밀려온다. 기습전의 명수, 안개는 소리 없이 섬을 점령해 들어온다. 안개의 남쪽은 제주도, 안개의 북쪽은 보길도다. 나그네가 보길도에 살던 때 해변에서 자주 바라보던 추자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었다. 빤히 보이는 두 섬 사이에는 연락선이 없다. 건널 수 없는 섬들 사이의 거리란 대체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추자도에서 보길도는 흔적도 없다. 안개가 모든 섬들을 지워버렸다. 건널 수 없었던 추자도처럼 나그네가 살았던 보길도 또한 환영(幻影)인 것일까.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다!

하추자 산길을 넘는다. 신양리에서 묵리로 가는 길. 추자섬의 산은 높지 않고 길은 멀지 않다. 묵리 하산길의 저수지가 추자도 제3 수원지다. 저수지는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이다. 저수지의 모든 바닥을 비닐천으로 방수했다. 물 부족으로 고심했던 섬의 흔적이 눈물겹다. 수원지 밑에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들어 서 있다. 빗물을 받아쓰는 저수지의 물이 부족하면 해수를 담수 처리한 뒤 함께 섞어서 공급한다. 추자도에는 모두 4개의 수원지가 있는데 저수량은 총 1,720톤, 해수담수화센터는 1일 1천 톤의 담수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물 문제는 인류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 행성에 기대 사는 생명체들의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 있지만 그 물의 97%는 바다에 있다. 담수는 지구상 물의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2%는 빙산이나 빙하의 상태로 있다. 결국 우리는 지구 전체 물의 1%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1%의 물을 사람과 수많은 생물 종들이 고루 나눠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에서 식수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만 한 해에 340만 명이 넘는다.

다행히도 이 나라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조금 가물기라도 하면 이 땅의 모든 언론매체는 당장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생긴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 다음 수순은 이 나라가 물부족국가라고 난리를 치는 일이다. 그러면 토목, 수자원 관련 부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댐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마치 댐 건설 외에는 치수 정책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생떼를 쓴다. 그때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이 섬의 물부족이다. 마실 물이 없어서 뭍에서 탱크로 물을 실어다 급수하는 섬마을 자료화면을 수시로 보여주며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토건 부처와 언론은 정말 물 부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그러는 걸까!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먹는 물을 구하기 위해 종일 걸어가 흙탕물 한 동이를 구해온다. 그마저 없어서 목말라 죽어가기도 한다. 그런 나라가 진짜 물부족국가다! 수도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나라. 수돗물을 변기에도 쓰고, 자동차 세차에도 펑펑 쓰는 나라. 이런 나라에 물부족국가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이 나라는 물부족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다!

실상 가뭄이 들어도 뭍에서 물을 실어다 먹어야 하는 섬은 몇 되지 않는다. 물이 부족한 섬들도 밥을 못해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저 펑펑 쓰던 물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 불편할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마치 모든 섬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어가는 것처럼 사태를 과장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댐 건설로 이득을 보게 될 토건마피아들이 버티고 있다.

추자도가 그랬다. 처음 하나의 상수원 댐을 만들었으나 가뭄이 들자 역시 물이 부족했다. 물 공급이 증가한 만큼 물의 사용량도 늘어난 까닭이다. 그렇게 모두 4개의 댐을 건설했으나 여전히 물은 부족했다. 결국 해수담수화 시설을 도입했다. 그 다음부터는 가뭄 때 물 문제가 해결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을 낭비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담수화 또한 궁극적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물부족 사태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을 풍족하게 쓸 방법보다는 물을 아껴 쓸 방법을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추자도의 또다른 비경, 용등봉 전망대의 저녁ⓒ섬학교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하추자 신양항 대합실은 섬을 빠져나가려는 여객들로 혼잡하다. 난바다의 섬에는 큰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배가 다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바람이 아니라도 바다는 자주 안개의 군단에 포위당한다. 완도에서 오는 여객선은 안개의 포획에 걸려 출항이 두 시간이나 늦어졌다. 도착 시간은 그보다 더 늦어질 것이다. 안개, 바람이나 거센 풍랑을 피해갈 수 있는 노련한 선장도 안개를 피해갈 도리란 없다. 안개에는 틈이 없다. 세상의 어떠한 지식도 안개의 세상에서는 무용하다. 여객선은 그저 안개의 눈치를 봐가며 느릿느릿 나아갈 뿐이다. 대합실의 노인들은 배시간이 늦어져도 느긋하다. 조급해봐야 달리 방법이 없음을 잘 아는 것이다.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노인의 말은 제주도보다 전라도 방언에 가깝다. 추자도는 오랜 세월 전라도 문화권이었다. 배는 예정보다 늦었지만 끝내 추자도까지 도달했다. 이제 나그네도 추자 섬을 떠날 때가 왔다. 나그네의 무게를 추자 섬의 땅과 바다가 받아준 것일까. 추자 섬으로 오기 전에 무거웠던 마음이 섬을 걸으며 가벼워졌다. 사람의 마음이 늘 무겁거나 가볍기만 하겠는가. 무겁기만 하다면 가라앉아 버릴 것이고 가볍기만 하다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추가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마냥 마음의 오고감에 끄들리며 살 이유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섬학교 <송년특집>, 12월2(토)∼3(일)일의 <추자도1박2일>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2월 1일(금)
밤 12시 서울 출발(2일 완도항에서 아침배를 타기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1일(금) 밤 11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 탑승바랍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66강 여는 모임

12월 2일(토)
05:00 완도 도착. 휴식
-아침식사(남도밥상)
-완도항 출항
-하추자도 신양항 도착
-하추자 올레길 걷기(9km)
신양항-모진이몽돌해안-황경한의묘-신대산전망대-예초리기정길-예초포구-점심식사(야외도시락)-엄바위장승-돈대산입구-돈대상정상-묵리교차로-담수장-추자교삼거리-등대전망대-추자항
-저녁식사 겸 뒤풀이(삼치회, 방어와 탕)
-휴식 및 취침(다인실)

12월 3일(일)
06: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조기탕백반)
-상추자 걷기(4km)
추자면사무소-최영장군사당-봉굴레산-용등봉전망대-숙소
-상추자 출항
-해남우수영 도착
-점심식사(남도밥상)
13:30 서울 향발. 제66강 마무리모임
*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12월의 섬학교 <추자도> 답사지도 Ⓒ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선글라스, 장갑,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지참하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습니다).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꼭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섬학교'를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학습자료>

[추자도]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 떨어진 섬. 상하 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상추자도가 1.5㎢, 하추자도가 3.5㎢다. 거의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라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 조선시대에는 전남 영암군에 속했었기 때문에 지금 행정구역은 제주도지만 전라도 풍속이 많이 남아있다. 주민의 생활상이나 전통 민가의 구조 등이 제주보다는 전라도에 가깝다.

[엄바위 장승] 옛날에 추자도 예초리 엄바위에 억발장사가 있었다. 엄바위 아래 바닷가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 개가 있었는데, 이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죽었다. 그래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여자가 청상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누군가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깎아 세웠으며, 예초리에서는 해마다 엄바위 앞에 와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황경헌묘] 황경헌은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다. 정난주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이며 황사영의 아내다. 남편 황사영이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뒤 두살배기 아들 경헌과 제주 유배길에 올랐다. 배가 추자도 예초리에 머물자 몰래 아들의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저고리에 싸서 바위틈에 두고 떠났다. 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비로 살 것을 염려해서였다. 지나던 한 주민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서는 데려다가 잘 키웠고, 오늘날까지 후손이 이어져 추자도에 살고 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섬왕국 전라남도의 <가보고 싶은 섬>가꾸기 자문위원이며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으로, 섬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12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는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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