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비만백서>를 펴내기 시작했다. 다른 건강문제를 제치고 비만에 한정한 백서라니 비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는지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 비만의 양극화 현상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관련 자료 : 가난할수록 뚱뚱하다? 비만양극화 2010년 이후 최대). 건강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비만이 주요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 비만은 매우 중요한 건강문제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처럼 비만을 건강 문제화하는 경향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연구가 국제학술지 <비판보건학(critical public health)>에 실렸다 (☞관련 자료 : 이데올로기, 비만, 그리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비만과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 이 연구를 수행한 캐나다 연구진은 비만을 중대한 보건문제로 분류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비만을 문제로 삼는 것이 건강을 촉진시키기보다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연구진은 우선 비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문헌들을 검토하여 비만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총 5가지 이론 모델(아래 그림 참고)을 도출했다. 이 모델들은 비만을 심각한 건강위험으로 간주하는 '불안조성자(alarmists)' 진영과 비만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집중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된다고 보는 '회의론자(sceptics)' 진영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각 설명 틀이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될 경우 초래되는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파급효과였다.
먼저, 비만을 부정적 건강결과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모델 1은 불안조성자 진영을 대표한다. 이 모델은 비만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매우 단순화하여 비만을 유발하는 기저의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영향을 놓치고 있다. 이 모델에서 비만은 개개인이 선택한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법은 칼로리 과다 섭취, 신체활동 부족 등 개개인의 잘못된 행태를 나무라고 수정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비만한 사람들에 대한 낙인, 희생자 탓하기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
모델 2는 모델 1과 비슷해 보이지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모델 1과 차별된다. 즉, 비만이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낮은 소득, 고용 불안정, 열악한 주거와 식사 환경 등 사회적 요인들에 따른 대응방식이자 불가피한 행동결과라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만"을 건강위협으로 강조되는 프레임에서 그 해법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의 행동패턴을 교정하는 것에 집중하게 될 뿐이다. 이는 비만상태를 야기한 사회경제적 요인들에 대한 근본적 수정이 아니다.
모델 3은 부정적 건강 결과 대한 비만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된 모델이다. 비만은 나쁜 건강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사회적 결정요인에 비해 그 역할은 미미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프레임 또한 학술 연구를 넘어 공공 담론의 장에서 회자될 때는 결국 비만이라는 문제 중심으로 수용되어 사회경제적 요인들에 대한 직접적 대응전략들은 축소되거나 간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을 건강위협으로 보는 지금까지의 모델들과 달리 모델 4와 5는 회의론자 진영을 대표한다. 모델 4는 비만이 부정적 건강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비만한 상태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비만의 역할을 최소화하거나 부정하고,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건강영향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모델 5는 비만이 부정적 건강결과를 야기하는 것은 비만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통해서라고 본다. 이 모델은 뚱뚱함에 대한 수치, 낙인, 편견, 탓하기 등의 사회적 태도들이 비만한 사람들의 자존감을 악화시키고 건강을 해치는 측면에 주목한다. 모델 4와 5는 모두 비만보다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다섯 가지 모델들 중 어떤 유형이 캐나다 정부가 배포하는 비만 대응 보고서와 임상진료지침에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주로 모델 1과 2의 설명 틀이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우선 이들 문헌들은 모두 비만이 심각한 건강문제라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는 논조를 띠었다. 비만의 발생을 사회적 결정요인과 연계하여 설명하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시한 해결책들은 모두 개개인의 행동 교정을 위한 중재에 맞추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개인차원에서는 식이나 체중조절 훈련을 하고, 지역사회 수준에서는 계단 사용을 장려하는 정보를 보급하고, 보다 거시적 수준에서는 정크푸드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들은 모두 사회경제적 격차를 감소시키는 전략과는 동떨어져 있다.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전략은 그것이 개인수준이 아니라, 집단이나 거시적인 정책 수준에서 실행되는 것이라도 행동 교정 이상의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연구진은 이러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비만을 건강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설명 모델이 지배적인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는 건강불평등을 축소하고 건강 향상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부정적 건강결과들은 그 바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비만이 국제적 관심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세계보건기구가 비만을 '만성병'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비만에 대한 연구 자금의 증가는 앞으로 더 많은 보건학자와 정책가, 사회 미디어가 비만 문제에 경각심을 강화하도록 이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우리로 하여금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더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면? 오히려 비만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켜 그들을 낙인찍고 차별하게 만든다면?
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비만백서>의 표지는 '뚱뚱한' 부모 사이에 아이가 끼여 앉아있는 뒷모습을 담고 있다. "비만을 부르는 부모의 나쁜 식습관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과연 비만과의 전쟁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데 진정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한국의 비만담론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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