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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백성'만은 우습게 보지 말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11> MB의 '견해'와 '의지'

연평도 사태가 터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4대강' 사람들, '대포폰' 사람들, '인권위원회' 사람들, '과거사정리위원회' 사람들이라 했다. 자기들의 '이야기'가 여론의 관심대상에서 멀어져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것 하나 숯불 사위어가듯, 그렇게 없어질 수 있는 화두(話頭)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특히 '인권'에 대한 '관심'의 끈을 우리가 그냥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인권(人權)은 한자표기에서 보듯,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다. 민주주의의 출발점도 바로 인권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나라치고 인권기구가 없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우리도 뒤늦었지만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다.

그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단이 났다. 파열음이 터져 나온 것은 현임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운영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선은 보인다. 한 달여 전쯤 2명의 상임위원이 반발해 동반사퇴하면서 불거진 사태다.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퇴·성명·농성이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다. 현 위원장은 사퇴할 생각이 없다 했다.

그는 작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청와대는 그때 "현 위원장이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취임한 뒤 인권위 조직이 축소되는 등 인권 '무력화 작업'이 사정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취임직후부터 그랬다. 쌍용자동차 농성진압 때 그는 "테이저 건(taser gun)과 최루액은 규정을 잘 지켜 신중히 쏘라"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테이저 건은 '근육의 자율적 통제를 붕괴시키는 전류를 발생시키는 전기충격기'다. 해외에서는 사망사례까지 보고된 비인간적 '무기'로 더 알려져 있다.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해야 할 인권위원장이 오히려 "쏘라"했다. 적어도 인권위원장만은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MBC <PD수첩> 문제, 용삼 참사, 야간시위 문제, 민간인 불법사찰 등 숱한 현안 앞에서 인권위는 '식물위원회' 노릇만 했다. 국정감사장에서도 현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는 행정부 소속"이라고까지 태연히 말했다. '사오정'수준이다. 인권위법에는 '인권위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고 되어있다.

문제는 표면에 나타난 현병철 위원장의 그런 '운영방식'이 아니다. 위원장이 사퇴한다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 점을 바로 보아야 한다. 현병철 위원장은 잘못 끼워진 하나의 '단추'일 뿐이다. 그 '단추'가 아니라 그 '단추'를 끼운 '사람'을 주목해야 한다. '단추'를 그렇게 끼운 '사람'의, 인권에 대한 '견해'와 '의지'를 읽을 필요가 있다.

한국 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 모범인권기구였다.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때 이 나라는 '인권 선진국'이었다. 그런 인권선진국에 걸맞도록 '단추'를 끼웠는지, 의도적으로 '단추'를 잘못 끼운 대목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초점이다. '시달림이 지겨워' 현 위원장은 지금 그만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큰일 나게 돼 있다. 그만두는 것은 '단추'끼운 사람의 '의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퇴한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추천된 인사들도 그렇다. 인권단체들은 대통령과 한나라당 몫으로 추천된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뉴라이트 계열'이거나, '인권기준과 너무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들 역시 '단추'일 뿐이다. 끼운 사람의 '의중'(意中)을 보아야 한다.

한국은 금년 3월 관례에 따라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의장국이 될 예정이었다. 그 기회를 이 정부는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한 것부터가 그렇다. 현 위원장측은 말로는 "그 일보다는 국내에 산적한 인권현안을 해결하는 데 힘 쏟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권지식과 경험이 없어서' 의장국 자리를 포기한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외에서도 다 안다고 했다. 국제적 위상실추를 자초한 것이다. 그런 '실추'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단추'를 그렇게 끼웠다. 그게 인권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이고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인권쯤이야 중요치 않다'는, 그런 '견해'와 '의지'일 것이다.

ICC는 어떤 기구인가. 세계 120여개 인권기구가 가입된 국제인권기구의 3대축 가운데 하나다. ICC 의장은 유엔인권이사회 의장, 유엔 인권최고 대표와 함께 국제인권 공동체를 대표하고, 국제 인권논의를 주도하는 자리다. 의장국이 되면 그야말로 MB정권이 좋아하는 '국격'(國格)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ICC 의장자리를 발로 차낸 게 MB정권이다.

아시아 인권위원회와 전국 223개 시민사회단체가 최근의 한국인권위원회 사태와 관련해 그 ICC에 서한을 보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고 했다. 인권을 옹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정부를 감싸는 일에 매달리는 정부 부속기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규명팀을 특파해 긴급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인권선진국이 어쩌다 인권후진국이 돼버린 객관적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MB정권은 인권선진국이었던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권의 후퇴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거꾸로 돌아간 민주주의의 시계, 그것을 아파하는 사람들의 심장에 최근 한 사람이 비수를 질러 넣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장이었다. "(제주) 4·3은 폭동이고, (광주) 5·18은 민중반란"이라 했다. 나이를 계산해봤다. 그해 1980년 그는 25세였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리 없는 나이였다.

시대가 평가해 경건히 머리 숙이고, 정부가 공인한 처절한 '민주화 운동'이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펴낸 영문책자에 그 '광주'를 '민중반란'이라 썼다.

4·3도 3만 명이나 되는 죄 없는 민간인이 목숨을 강탈당한 사건이었다. 정부가 공식 사과까지 한 '항쟁'이었다. 폭동이 아니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아픈'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고 화해의 마당을 만들어내는 국가기구다. 그간 목숨까지 바쳐가며 밝혀낸 진실을 왜곡하고, 갈등을 만드는 기구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단추'다. '단추'를 끼운 사람의 '견해'와 '의지'가 '폭동'과 '민중반란'인지도 모른다. '그런' 소리 해놓고도 위원장이 아직까지 아무 일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인권위원회 사태나 진실·화해위원장의 망발을 놓고, 소통의 단절에서 빚어진 일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통의 단절'도 대통령의 '견해'와 '의지'인지 모른다.

촛불시위 때는 안 그래 보였다. 처연한 목소리로 사과하면서, MB는 국민과의 소통을 철석같이 다짐했다. 그는 순하디 순한 양의 모습으로 '사과'하고 '소통'을 말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소통에는 통로가 필요했으나 그게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 바늘귀만한 숨구멍까지 화풀이하듯 틀어 막아버린 듯하다. 소통을 약속할 때 그는 그저 양의 탈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이 삽질돌격대와 함께 온통 강을 후벼 파대고, 누구의 뒤를 캐는지 불법사찰이 음산한 바람을 일으키며 나라를 헤집고 다닌다. 국민들은 소통이 없어 연속적으로 불안하다.

소통단절은 '천안함' 쪽에도 있다. 그때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들은 했으나, 진상은 아직껏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까운 젊은 목숨을 46명이나 잃었다. 우리가 보기에도 과정에 분명히 잘못은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MB는 그 과오를 분명히 가리라고 감사원에 지시했다. 그렇게 시작된 조사에서 감사원은 지휘관과 고위층 12명을 형사처벌하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등병 한명도 처벌하지 않은 채 끝났다. 국방장관의 뒤늦은 경질도 따지고 보면 연평도 사태가 급해져서 이뤄졌을 뿐이다.

더 할 수 없이 수상한 대목이다. 처벌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 중이라는 소리나 들으면서, 인명피해에 속이나 상하고, 성금 내라면 그저 돈이나 갖다 바치는 '백성'들로서는, 영문도 모르는 갑갑한 처지가 기막힐 뿐이다.

인권 우습게 보고 있다. 민주주의 우습게 보고 있다. 4·3 우습게 보고 5·18 우습게 보고 있다. 소통 우습게 보고 자기들 빼고는 다 우습게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장 로비의혹 이야기가 터져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그 '우습게 보는' 행태를 확인했다. 그래서 나온 소리가 "이희호 여사는 대통령 '마누라'이고, 김윤옥 여사는 '국모님'인가"였다. 이른바 김대중 정부 '옷로비' 사건 때,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아무 죄 없는 이희호 여사를 국회건 어디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흔들어댔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슨 소린지 다 안다.

국회에서 "국모님이 상처를 받으셨다"는 '발언'도 있었다. 어떤 신문은 '가만둬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담은 기사를 1면 톱에 올리기까지 했다. 자기들 빼고는 다 우습게 보기 때문이었다.

우습게 보고 또 우습게 보고 다 우습게 보고, 그것이 MB의 '견해'이고 '의지'일지라도, 제발 그래서는 안 될 일이 하나 있다. 절대로 '백성'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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