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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제, 본래 목적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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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제, 본래 목적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결선투표제의 이상과 현실

결선투표제는 무엇보다도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살펴보면 결선투표제가 특정 정치세력의 배제나 선거결과의 조작이라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결선투표제는 대체로 2라운드에서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결선투표제는 선거결과를 뒤바꾸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결선투표제는 선거경쟁을 부추기고 정당의 파편화를 이끄는 경향이 있다. 이와 더불어 결선투표제는 2라운드에서 네가티브 컨센서스에 기초한 불안정한 선거연합을 구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필자)

결선투표제의 정의와 제도적 목적

결선투표제는 득표율을 기준으로 할 때 당선자에게 대체로 50% 이상의 득표를 요구하는 절대다수제(majority system)와 동격으로 간주된다. 결선투표제는 투표의 횟수를 기준으로 할 때 승자를 결정하기 위하여 대체로 두 번의 투표를 요구하기 때문에 ‘투 라운드 시스템’(two round system: TR system)이라고 불린다(Grofman 2008). 하지만 지구상의 결선투표제 가운데에는 절대다수제라는 본원적 기준인 50% 대신 더 낮은 기준을 제시하는 조건부 결선투표제(qualified runoff system)도 있고 두 번의 투표 대신 한 번의 기표로 결선투표까지 마무리하는 즉석식 결선투표제(instant runoff system)도 있다(Cox 1997; Golder 2005). 물론 옛 사회주의 유라시아 국가 가운데는 50% 대신 3분의 2나 5분의 3 같이 더 높은 기준을 두기도 하고 결선투표를 의회에서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추구하는 목표나 정치적 효과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당선자의 정치적 정통성과 대표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Blais, Massicotte, and Dobrzynska 1997). 둘째,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한 번 더 유권자를 고민하게 만들어 ‘지적인 선택’(intelligent choosing)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Sartori 1994, 64). 셋째, 두 번의 투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극단적인 성향의 정당(extreme parties)이 집권할 가능성을 줄이는 대신 온건한 정당(moderate parties)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Laveri, Benoit, and Sauger 2006). 넷째, 제1차 라운드에서 살아남은 최상위 두 후보와 탈락한 후보들 사이에 다양한 정책협상과 선거연합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실제적 배경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실제로 도입되는 구체적인 과정과 배경을 대륙별로 살펴본다면 앞에서 거론했던 결선투표제의 제도적 목적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Bormann and Golder 2013; Golder 2005). 먼저 미국에서는 주로 남부에서 1902년부터 여러 수준의 예비선거에서 결선투표제가 이용되었는데(Engstrom and Engstrom 2008), 민주적인 이상이나 대의와 달리 선거과정에서 배제(exclusion)를 위한 조작적 도구로 결선투표제가 활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Elgie 2005). 19세기 후반 미국의 남부에서는 민주당의 지배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후보로 결정되기만 한다면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 확실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예비선거에서 당내 경쟁을 촉진시키고 지지기반이 넓은 후보를 검증하여 선출한다는 명목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Key 1949: Kousser 1984). 그러나 V. O. Key(1949) 이래 많은 정치학자(Cohen 1984; Davidson 1984; Lamis 1984; Stewart, Sheffield, and Ellis 1995)들은 남부의 결선투표제가 흑인 후보가 1위를 차지해도 2라운드에서 백인 유권자의 결집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백인 후보가 민주당 티켓을 쥐게 만드는 제도로 작동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흑인들은 결선투표제를 두고 결선의 저주(‘runoff curse’)라고 부를 정도였다(Patterson 1983, 239).

그래서 1980년대 미국에서는 결선투표제의 공정성이 많이 의심을 받았고 이에 대한 공식적인 수정이 이루어졌다. 1982년 대법원에서는 1965년 이후 흑인참정권의 침해를 치유하기 위하여 하급법원에 결선투표제 규정을 폐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같은 해 미국 의회는 결선투표제가 소수자의 참정권을 약화시키는 제도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Stewart, Sheffield, and Ellis 1995, 808). 특히 1994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제시 잭슨은 당내 예비선거 과정에 남아있는 결선투표제가 자신을 포함한 흑인에게 차별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포퓰리스트적인 후보가 갑자기 등장하고 또 당선될 가능성을 줄이려는 차원에서 결선투표제가 확산되었다(Shugart and Taagepera 1994; Blais, Massicotte, and Dobrzynska 1997). 대표적으로 1970년 칠레 대통령선거에서 아옌데가 36%라는 저조한 득표율로 당선되자 장차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려고 1980년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모두 14개 국가(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아이티, 과테말라, 니카라과, 페루, 우루과이)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고 현재까지 니카라과를 제외한 나머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한 번 이상 결선투표를 실시했다.

다른 한편 과거 유럽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대개 의회선거를 위하여 결선투표제를 이용했다(Birch 2003). 그러나 선거권의 대중적 확산과 더불어 유럽에서는 비례대표제가 결선투표제를 대체하였다. 그 뒤 현재 프랑스가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의회수준에서 결선투표제를 이용하는 국가로 남았다. 유럽에서 결선투표제 대신 비례대표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당제적 정당구도에서 비례대표제가 보다 더 많은 유권자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반면 결선투표제는 선거에서 예측불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Carstairs 1980).

20세기 이후에 급격히 줄어든 의회수준의 결선투표제는 1980년대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선거제도로 밀려났고 프리덤 하우스 점수(Freedom House scores)를 기준으로 대체로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국가들로 전파되었다(Birch 2003). 다시 말해 1989년부터 1999년 사이에는 다시 의회수준의 결선투표제가 16개 국가에서 29개 국가로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말 소연방 및 동유럽의 붕괴와 1990년대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다. 1980년대 소연방이나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몇 개 국가들은 붕괴 전과 마찬가지로 의회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는 프랑스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프랑스와 유사하게 결선투표제를 채택했다(Mozaffar 2004).

1980년대 제3의 민주화 물결의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구체제에 위협적인 인물들이 대체로 과반수를 득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구체제 인사들이 선거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을 탈락시키기 위한 도구로 결선투표제를 이용하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도자로 남아 있던 구체제 세력은 결선투표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조작적 효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면서 구체제의 잔존과 유지를 위하여 이 제도를 활용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민주화 이후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국가에서는 결선투표제가 독재자의 친구(‘dictator's friend’)라는 평가를 얻었다(Birch 2003, 330).

또한 결선투표제는 이들 국가에서 선거결과의 정통성을 파괴시킬 수 있는 기회를 남겨주었다. 제1 라운드가 끝난 뒤 결선의 결과가 확연하게 예측되는 경우에는 당선 가능성이 적은 후보나 정당이 선거에 불참하거나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를 불복하는 등 비선거적인 방식에 의존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례는 콩고(1993), 마케도니아(1994), 아이티(1995), 토고(1994), 알제리(1991) 등에서 발견된다(Birch 2003). 도미니카 공화국의 2000년 대통령선거 1라운드에서 1위 후보가 49.9%를 획득하자 24.9%를 얻은 2위 후보가 확연한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고 2라운드까지 안 간 경우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2003년 대통령선거 1라운드에서는 현직 대통령으로 24.4%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메넴이 22.0%를 확보한 2위 후보에게 대통령직을 양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7대3으로 뒤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메넴이 제2 라운드에 불참한 행위가 민주주의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Segl 2006).

이에 비하여 의회선거 수준의 결선투표제는 당선자의 정통성을 향상시키기보다 집권당의 승리를 위한 선거개입을 매우 쉽게 만들어준다. 의회선거의 결선투표제에서 집권당은 1라운드가 끝난 뒤 선거결과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집권당은 2라운드 전 짧은 기간 동안 선거에 필요한 자원을 재분배하고 정부의 지원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을 꾀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혜택을 받은 후보는 선거가 끝난 뒤 새로운 정부와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그리고 선거에 승리하기 위하여 이러한 선택을 받도록 결선에 진출한 다른 당이나 무소속 후보들도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Birch 2003).

결선투표제의 실제적 효과

이미 자명해진 것처럼 결선투표제는 때때로 고유의 제도적 목적과 다르거나 오히려 정반대의 정치적 효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첫째, 결선투표제는 선거과정에서 특정한 인구나 정당이 정치세력화하고 권력을 잡는 것을 배제하고 선거결과를 조작하는데 기여한다. 둘째, 결선투표제는 대체로 2라운드에서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셋째, 결선투표제는 선거결과를 뒤바꾸는 경향이 있다. 넷째, 결선투표제는 선거경쟁을 부추기고 정당의 파편화를 이끄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결선투표제는 2라운드에서 네가티브 컨센서스에 기초한 불안정한 선거연합을 구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결선투표제는 동시선거제 국가의 선거를 사실상 비동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실 결선투표에서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은 전 세계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예컨대 미국의 남부 주지사 등의 예비선거(Bullock, Gaddie, and Ferrington 2002; Ewing 1953), 노스캐롤라이나 연방의회와 주지사 예비선거(Lanier 1983), 민주당의 연방의회와 주지사 예비선거(Bullock and Johnson 1992; Wright 1989)에서 실시된 과거 수많은 결선투표의 경우 투표율이 대체로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 의회선거에서 실시된 결선투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Indridason 2008; Fauvelle-Aymar and Lewis-Beck 2008).

결선투표제 아래 두 번의 투표과정에서 후보의 순위는 빈번하게 바뀌었다. 1940년대 자신의 연구 사례 가운데 약 3분의 1 이상의 결선투표에서 제1차 라운드와 순위가 서로 바뀌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한 바 있는 키(Key 1949)의 연구결과는 아직도 후속 연구에서 대체로 지지를 받고 있다. 연구대상의 시기가 1970년부터 1986년 사이의 예비선거(Bullock and Johnson 1992)로 바뀌거나, 1980년부터 2002년 사이의 예비선거(Engstrom and Engstrom 2008; Glaser 2006)로 바뀌어도 미국의 결선투표에서 상위 득표자 2인의 순서가 약 4분의 1에서 3분의 1정도 바뀌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프랑스의 대통령선거에서도 최종당선자는 빈번하게 뒤바뀌었다. 1958년 제5공화국 이후부터 실시되었던 총 8번의 대통령선거에서 3번씩이나 최종당선자가 달라졌다.

결선투표제와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

앞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한다면 결선투표제가 지향했던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은 온전히 달성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결선투표제는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의 투표를 허용하면서까지 과반수의 지지를 확보한 당선자를 탄생시켜 민주적 정당성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을 갖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정치적 효과나 구체적인 작동 결과는 이러한 제도적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두 번 투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 투표용지에서 제외된 유권자가 제2차 라운드에서 기권을 하거나 차선의 후보를 선택한 결과로 당선자를 선출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 정통성을 향상시켜주는 제도인지 신중하게 생각해볼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 사라진 유권자가 아예 투표소로 가지 않거나 아니면 차선의 선택을 내리는 행위는 결선투표제에서는 사라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결선투표제의 고유한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한 결선투표에서 투표율이 더 낮아지고 순위가 뒤바뀌는 것을 막기는 본질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약 결선투표제가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파생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정치적 문제들은 오히려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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