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태백산맥 서편 마을에 겨울이 오면 비싼 생선을 못 먹는 사람들도 먹던 바다고기가 있었다. 다른 생선에 비해 값이 싸서 겨울이면 삽으로 퍼주던 물고기. 나는 ‘도루묵’이라고 부르는 이 물고기를 볼 때마다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착한 생선’ 이라고 생각한다.

10월의 마지막 주말 일요일인 29일. 속초로 가는 자동차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뚝 떨어진 날씨와 함께 산악지방은 첫 눈 소식까지 가능하다는 기상예보가 흘러나온다.
오늘 아침 양양을 거쳐 속초로 가는 고속도로는 주말 휴일만큼은 시골길보다 못하다.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지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와 관광버스 틈에 끼여 4시간이 더 지나서야 속초바다가 보였다.
양양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속초항으로 가는 국도 역시 차들로 붐볐다. 아마도 나처럼 속초항의 겨울철 별미 도루묵을 먹으러 가는 차들의 행렬 같아 보인다.
축제장으로 가기 위해 금강대교와 설악대교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설악대교 옆 항구에는 도루묵 등 바다고기 그물을 끌어 올리며 바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고깃배들이 하루를 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첫 번째 교차로 우측에 보이는 거대한 수산물 가공 공장 앞 너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겨울철 별미 도루묵을 먹으러 온 관광객들로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겨우 주차 공간을 확보한 나는 마침 양미리를 굽고 있는 한 가게로 들어가 점심으로 동해안에서만 잡힌다는 도루묵찌개를 시켰다.
어릴 적 이맘때이다. 우리 집 제재소에서 하루 일을 마친 사람들은 그역자로 된 톱밥난로에 커다란 양은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 냄비 속에는 얼큰한 도루묵찌개 보글보글 끓었다. 그리고 도 다른 난로 위에는 양미리가 노랗게 구워지고 있었다.

그 때 아저씨들이 똑같은 생선인데도 도루묵에서는 비린내가 없어 고기 맛이 담백하고 국물이 시원하다고 하던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값싼 도루묵이라 가난한 노동자들도 술 한 잔 에 한 마리를 구어서 입에 넣던 그 모습이 식당 유리창에 비치던 사람냄새 나던 모습들이 이 식당에서도 느껴진다.
나는 아주머니한테 도루묵찌개를 시켰다. 차를 운전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소주 한 잔은 어렵지만 밥 한 그릇을 비워 낼 찌개 맛이 기대되었다.
옆 좌석에서는 도루묵이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점심이라며 도루묵구이를 드시는 아줌마들 옆에서 나는 부글부글 끓는 도루묵을 들여다 본다.
그러면서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차별없이 먹을 수 있는 도루묵을 보며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도룩묵은 한 때 왕도 처음 먹고 반한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조선 14대 왕인 선조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어리석은 군주로 남은 선조가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을 피하기 위해 한양성과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할 때였다.

궁궐사람들이 미쳐 먹을 음식마저 충분히 갖고 피난하지 못한 탓에 그의 수라상이 꽤 초라함을 본 한 어부가 겨울바다에 도루묵을 잡아 올려서 유명해진 도루묵의 원래 이름은 ‘목어’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도루목'을 '도루묵'으로 부르면서 이름이 바꼈다고 한다.
‘허기가 진수성찬에 버금가는 반찬’이라는 말처럼 피난길에 먹은 선조의 도룩묵 맛은 최고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어’보다는 은빛 배를 가진 ‘은어’로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의 입맛이 간사한 걸까. 전쟁이 끝나고 한양 성으로 돌아온 선조는 그 고기맛을 잊을 수 없어 다시 먹었다. 그런데 그 때 먹을 반찬이 귀했던 시절에 먹던 그 고기맛이 나지 않자 선조가 다시 ‘도루목’이라고 말했다 고한다.
도루묵 역사 하나로도 선조의 이중적인 군주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못하는 그는 진정한 군왕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군왕의 재목감이 아니었음에도 명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이 된 선조는 이이, 이황, 이순신, 유성룡 같은 유능한 인재를 신하로 둔 신하 복도 많은 왕이다.
그러나 내겐 자신의 권력만을 지키기 위해 당파싸움만 구경하다 전쟁을 막지 못한 어리석은 군주의 모습이 도루묵의 또 다른 메뉴가 되었다.
전쟁 와중에도 백성을 배신하고 명나라로 피신하려했던 어리석은 왕이었으니 서민들이 먹는 도루묵 맛을 알 리가 없다는 생각한 그 사이, 도루묵이 다 익고 있었다.
나는 도루묵찌개의 국물 맛을 보았다.
청량고추에 대파를 숭숭 썰어 넣은 얼큰한 국물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그리고 한 마리 건져 먹은 도룩묵은 정말 담백하다.
얼큰하고 담백한 맛에 어리석은 선조의 도루목이 어느새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배가 부른 오후.
나는 도루묵을 구워먹는 사람들 틈을 빠져 나와 온통 도루묵만 보이는 축제장 골목을 사람들 틈에서 구경했다.
10월 마지막 바닷바람이 차갑다. 그렇지만 겨울철 이맘때만 나오는 제철 물고기를 먹으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눈으로 보는 행복보다 더 해복해 보이는 눈빛들. 아마도 방금 내가 먹은 그 얼큰하고 담백한 맛이 추운 속을 확 풀어준 그런 모습들이다.
등푸른 고등어와 달리 고기가 커서 고기 살이 넉넉하지도 않지만 갈색 얼룩 무늬에 은백색의 배를 가진 손바닥 만한 도루묵 국물은 정말 시원하다.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화덕에 숯불 기운이 벌겋게 달아오른 석쇠위에서 도루묵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녀석은 아래턱이 위턱보다 튀어나와 주걱턱을 연상시킨다.
또 수심 200∼400m의 모래가 섞인 뻘 바닥에서 자라다 산란기에 나온 어떤 녀석은 두둑한 알주머니가 불기운에 투두둑 배 밖으로 터져 나와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었다.
뻘 바닥을 다니며 작은 새우와 오징어, 해조류를 먹으며 자란 도루묵을 벌건 숯불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 10월 항구의 풍경은 모두가 배불러 보인다. 이런 풍경은 도시의 골목에서 볼 수 없다. 그래서 바다냄새가 나는 이곳의 도루묵 먹는 오후는 연탄불과 숯이 함께 타는 드럼통의 화덕풍경이 있어 더 이국적이다.

도루묵만이 있는 게 아니다. 도루묵 옆에는 검지 굵기 만한 양미리 굽는 냄새가 진하다.
도루묵 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찌개를 많이 먹는다. 그런데 구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양미리를 좋아한다. 까나리 비슷하나 크기가 작은 양미리 역시 11월의 겨울철 구이 먹거리이다.
주둥이가 뾰족하면서고 아래턱이 튀어나온 양미리는 속초 고성 양양 바다 일대에서 겨울철에 잡히는 물고기로 뼈째 소금구이로 먹는 맛이 기막히다.
이런 모습은 축제장에만 있지 않았다. 주변 항구의 식당들도 도루묵 손님이 삼삼오오 앉아서 휴일 오후를 도루묵으로 보내고 있었다.

항구가 가까운 식당 앞에서는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바다라는 곳은 우리의 눈만 바다처럼 맑게 씻어 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먹거리를 조건없이 주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나무처럼 착한 바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휴일 아침 반나절의 시간을 도로에서 꾸역꾸역 참으며 온 사람들이 소비하는 이 시간은 행복으로 반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눈으로 보는 행복도 좋지만 먹는 포만감에서 오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더한다.
배부른 다음에 보는 바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뜯다남은 도루묵 머리만 남았고, 식당을 빠져나온 사람들 손에는 커피 냄새가 난다.

나도 그들과 함께 방금 커피콩을 갈아 내린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신다.
맛있게 먹은 도루묵찌개와 양미리 구이 냄새가 떠나고, 커피를 바다에서 마시며 하루가 갔다.
10월의 마지막 휴일. 속초항이 저물어 갈 무렵.
내년 이맘때, 나도, 오늘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은어’라는 고상한 이름을 지어주기 보다 우리가 부르기 편한 ‘도루묵’을 또 찾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축제가 열리는 항구를 떠났다.

항구를 떠난 나는 서울로 가는 차들이 밀리는 고속도로 대신 미시령을 넘어 용대리 황태 덕장으로 가는 빨간 단풍이 물든 56번 국도로 들어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아직 내 입안을 감아도는 얼큰한 도루묵찌개의 따뜻한 미각의 겨울 맛을 잊지 못한 채 미시령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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