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마무리됐다. 결과에 대한 청와대와 정치권의 논평이 즉각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에너지전환(탈핵) 로드맵'과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후속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론화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된 상황에서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 공약 철회에 대한 사과 없이, 공론화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차분한 성찰과 분석이 생략된 채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론화 위원회 최종보고서에는 한국사회에서 탈핵과 같은 이슈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등이 고스란히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공론화 보고서에 담긴 시민들의 생각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원전 공사 중단 여부와 탈핵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최종 판단의 결정 요인으로 제시된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관점은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사안에 적용될 수 있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때, 결정의 순간이 점점 다가올 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정 요인 중 하나는 '지역 및 국가산업'이었다. 공론화에 건설 중단 측 토론자로 참여했던 인사는 원전 건설 재개 측의 경제·산업성장 논리에 질 것 같다는 예언을 한 바 있는데, 그 예언이 어느 정도 결과로 증명된 것 같다.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 측 모두에서 최종 결정의 순간이 가까워올수록 지역 및 국가산업 요인이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시민들은 또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어느 정도 절충점을 선택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라는 현실과 탈핵이라는 미래 사이에서 시민들은 고민했고 선택했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단 쪽의 자료 준비가 미비했고 주로 외국 사례를 들어 현실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1~2명의 인터뷰 내용이 모든 참여자들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시민들에게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미래이고, 원전 산업의 일자리나 원전 수출은 현실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현실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었다. 건설 재개를 선택한 시민들에게 안정적 에너지 공급은 최종 판단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중에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전으로 전력을 공급 받는 현실과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 측의 결정 요인은 안전성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건설 재개 측의 결정 요인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 안전성, 전력 공급 경제성, 환경성, 지역 및 국가산업, 전기요금인데 반해 건설 중단 측의 결정 요인은 안전성, 환경성, 안정적 에너지 공급, 지역 및 국가산업, 전력 공급 경제성, 전기요금의 순이다. 또 건설 재개 측 결정요인 사이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에 건설 중단 측의 결정 요인은 안정성과 환경성과 다른 요인들, 특히 경제성 관련 요인들이 큰 차이를 보인다.
건설 재개 비율에 비해 원전 축소 비중이 높다고 해서 위안을 삼을 수만은 없다. 앞으로 전력 공급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거나 전력 공급 경제성이 나빠지거나 탈핵 정책으로 지역 및 국가산업에 악영향이 미칠 경우 여론은 바뀔 것이다. 주요 보수 및 경제지 언론들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탈핵 재생에너지 확대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고 경제성을 확보하면서 지역 및 국가 산업으로 성장해 일자리가 생기는 미래를 가까운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원전 축소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탈핵의 시점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뻔하지만 진실을 담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남긴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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