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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 진짜 죽어 나는 건 월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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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 진짜 죽어 나는 건 월세 가구

[의제27 '시선'] 집값이 내려야 전셋값도 내려간다

언론에서 전세값 얘기가 쑥 들어갔다. 연평도에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도 전국적으로 4000가구 이상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집값, 전세값 동향은 우리 가계의 최대 걱정거리인 것이다.

최근 얘기는 이렇게 흐르는 듯하다.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 → 집값이 바닥 다지기에 들어갔다 → 공급 감소가 장기화되고 있다 → 조만간 다시 오를 것 같다." 말하자면 '전세금의 집값 유인론'이다. 이와 관련된 논쟁도 다양해서, 텔레비전 토론들이 몇 차례나 다뤘다. 이 글은 이들과 조금 다른 얘기를 다뤄볼까 한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는 무용지물이다

잘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대략 조선 후기부터 전세제도가 출현했다는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든 해방 이후 도시화와 고도성장 과정에서 전세는 보편적인 임대차 제도로 굳어졌다. 왜 전세제도가 번성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제도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점이 크다. 60-70년대는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는데, 방을 한두 칸 전세로 놓으면 부족한 구입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세를 드는 입장에서도 어떻든 무리해서 전세금을 마련하면 나중에 집을 장만하는 밑천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말하자면 집 주인에게는 빚이요, 세입자에게는 저축인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부터 집값, 특히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자 전세금은 다른 기능을 하게 된다. 남의 돈을 빌려서(전세금) 좀 더 비싼 집을 사는 수단으로 전세 제도가 이용되게 된 것이다.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다. 때문에 5억 원짜리 집을 2억 원에 전세로 놓는 '자선사업'을 하더라도, 장차 집값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손해는커녕 오히려 이자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는 투자였다. 특히 전세금을 이용해서 집을 여러 채 늘리는 게 가능해지면서, 이는 그야말로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가 레버리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계속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집값 오를 것을 기대하고 내가 투자한 비용보다 낮은 수준에서 임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전세제도는 당연히 무용지물이다.

▲ 세계에서 유일한 전세제도는 부동산 투기에 있어 일종의 '레버리지' 역할을 했다. ⓒ뉴시스

집값이 내려야 진짜로 전세금도 내려간다

그래서 집값이 안정된 지방 도시들은 이미 전세제도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 전국적으로 2000년 전세가 41.2%였던 것이 2005년에는 33.2%로 줄어들었다. 올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오면 20%대로 내려갈 것이다. 또 수도권에서도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 지역의 주택들은 이미 전세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전세 방식이 여전히 우세한 곳은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를 것으로 기대되었고, 그래서 빚(전세금) 내서라도 집을 사려던 지역들이다. 또 이런 곳들이 최근 전세값이 오른다고 아우성인 지역들이다. 말하자면 돈이 벌릴 만한 동네에 빚 얻어 집을 사두었다가 집값이 안정되거나 내려가자 이제 본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전세금을 올리는 셈이다. 그럼 전세금은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집값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집값이 끝내 오르지 않는다면, 전세금은 집값에 이를 때까지 오르거나 아니면 차라리 은행이자 만큼의 월세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집을 세놓아 받는 수입이 은행이자 수입보다는 높다.

그럼 집값이 안정되는 한 전세금 상승은 불가피한 것일까? 호랑이(집값 상승) 피하려다 늑대(전세금 상승)를 만난 꼴이다. 더구나 월세 전환까지 가속화되면 사정은 점점 나빠진다. 그렇다고 전세값 때문에 집값이 오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하나다. 집값 자체가 내려야 한다. 그래야 전세금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나아가 그것이 월세로 전환되더라도 우리 가계가 감당할 수 있다.

따라서 "전세금이 오르면 집값이 오르고, 그럴 경우 전세는 안정된다"는 것은 악순환일 뿐이다. "전세금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값은 내려야 한다"가 선순환이다. 너무 뻔한 얘기인가? 그러나 지금도 일부 언론과 시장 전문가들은 악순환을 선전하고 있다.

진짜 서민들은 말도 못하고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집값이 오를만하지 않은 지역은 이미 전세보다는 월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집주인들도 자본수익보다는 운용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매달 나가는 월세가 문제다.

그런데 월세는 형편이 어려울수록 상대적 부담도 더 크다. 한 국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저소득계층들은 수입의 거의 절반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 소득계층이 높아질수록 부담이 적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중간소득층은 대체로 20-25% 수준이다. 이 정도면 선진국 기준에서도 어떻든 견딜 수 있는 범위에 들어있다. 가난한 계층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 보다 불안정한 월세일수록 더 손해를 보고 있다. 서울에서만 6만 명 정도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달에 대개 20만 원씩 내면서, 창도 없는 합판 칸막이 1평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월 20만 원은 5000만 원을 은행에 넣어둘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입이다. 그만한 목돈이 있다면 원룸으로 된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목돈이 없기 때문에 같은 부담을 하고서도 더 나쁜 환경에 사는 것이다. 더구나 쪽방은 고시원보다도 형편없다. 하루에 7000원 씩 세를 내는데, 이는 한 달로 따지면 20만 원에 해당한다. 즉, 20만 원이라는 목돈이 있다면 더 깨끗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그마저 안 되니 빈대가 들끓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

더구나 서민층들의 임대료 부담은 매년 더 늘어난다. 고소득층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운영하는 복지패널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저소득층은 '자가에서 전세, 전세에서 월세'로 내려가는 주거하향 이동 경향이 뚜렷하다. 여기는 월세 확대와 소득양극화 영향도 있지만, 뉴타운, 재개발이다 해서 서민들이 살아갈 주거공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동시 다발적인 뉴타운 사업이 위험한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전세값 안정대책의 하나로 도시형 생활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정말 난센스다. 깨끗한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기존 다세대, 다가구 주택을 헐어야 하고, 이는 결국 서민층 주거비를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전세금이 문제가 되는 곳은 집값이 오를만한 동네, 즉 아파트촌인데 대책은 엉뚱하게 월세가 주류인 동네를 대상으로 내놓은 꼴이다.

상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세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기전세주택으로 표를 얻었다. 온통 지하철 광고판을 장식했고, 유엔으로부터 상까지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난리를 부려 확보한 시프트 주택은 2만 호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포함한 공공임대주택은 서울시 전체 가구의 4.6%만 혜택을 줄 뿐이다. 반면 고시원, 쪽방, 여인숙, 사우나, 만화방 등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가구(물론 거의 대부분 단신가구다)는 3%나 된다. 원룸이나 지하셋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10%가 훌쩍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월세다. 이들은 가난하니까 싼 집에 살지만, 동시에 가난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더 비싼 주거비를 부담해야 한다. 주거가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강남권의 체감 전세금 상승률은 어마어마하다. 이를 부담해야 하는 가계의 사연도 절절하다. 그러나 월세 가구들의 고통은 신문에도 나지 않는 전세대란의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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