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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 돌려 안보력 증강에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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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 돌려 안보력 증강에 쓰자"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10> 북한, '관리대상'이어야

- 도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참한 모습을 한 피난민들의 물결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애통하게 울부짖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에는 몇 세기를 두고 침착하게 고난을 이겨온 자랑스럽고 강인한 민족의 후예들이 가고 있었다…… 겁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도 울지 않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남쪽을 향해 무거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

울컥하며 이 대목이 떠올랐다. 6.25가 터진 지 나흘 뒤였다. 일본 동경에서 날아온 맥아더는 수원에서 한강까지 둘러본 광경을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었다. 60년이 지난 2010년 11월 24일 해경 경비정을 타고 빠져나와 인천부두에 도착하는 '연평도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초겨울 찬 바닷바람 속의 풍경을 취재기자들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젖먹이를 놓칠세라 꼭 껴안은 젊은 엄마가 배에서 내린다.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은 젊은 아들이 뒤를 따른다. 무엇을 쓸어 담았는지 잔뜩 배부른 가방을 들고 주름이 깊게 팬 노인도 뒤뚱거리며 하선했다. 이마에 핏자국이 남아있는 사람, 배부른 임산부에 겁먹은 눈동자의 중학생도 보인다. TV화면에서는 포성 울리는 대피소에서 겁에 질려 있다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든 어린 것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눈물겹고 속이 뒤집어진다.

▲ 개인 어선을 통해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부두로 들어오는 연평도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모두 4명이 죽었다. 민간인도 포함돼있다. "20년 동안 피땀 흘려서 집 한 채 장만했는데 아무 것도 없이 모두 불타버렸다"는 아낙네의 절규가 들린다. "다시는 연평도에 안 들어간다"는 단호한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한 쪽에 대한 분노가 끓는다. 이와 함께 우리만 일방적으로 당한 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심정을 가눌 길 없다.

억장 무너지는 것은 우리 쪽의 약하디 약한 허약체질 때문이다. 허망함이다. 아무리 치밀히 계산된 기습이라 해도 그럴 수는 없다. 그간 최선을 다해 대비했느냐 하는 의문이 먼저 치솟는다. 이른바 '천안함 사태'가 있었고 지난 8월엔 NLL 남쪽에까지 북한 포탄이 떨어지는 사태도 있었다. 그 뒤에 준비를 하기는 한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북한의 1차 포격이 시작된 것은 지난 23일 오후 2시 34분이었다. 2차 포격까지 170발을 쏘았다고 했다. 우리가 대응 사격한 것은 겨우 80발이었다. 그동안 국민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게 교전규칙이다. '적이 사격해 왔을 때 대등한 무기체계로 2배 이상 대응 사격한다'고 했다. 포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나 적어도 수치상으로 우선 열세다.

유효율도 뒤쳐졌다. 북한 측은 170발 중 90발이 빗나가 바다에 떨어졌다. 연평도에 떨어진 80발은 전체의 47%다. 우리 측은 80발의 37.5%인 30발만 북한 포 발사지점인 '개머리 포진지'를 목표로 날아갔다. 나머지 50발은 개머리 포진지에서 서북쪽으로 15km나 떨어진 무도에 쏘아댔다. '헛발질'이었다. 적의 포탄의 탄도를 추적해 발사지점을 알아내는 레이더가 먹통이기 때문이었다.

1차 포격이후 38분 지나서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됐을 때에야 레이더는 작동됐다고 했다. 결국 1차 포격 51분 뒤인 오후 3시25분 우리 측 2차 대응 포탄은 비로소 개머리 포진지를 향했다. 민주당의 신학용 의원은 지난 8월 북한이 NLL 남쪽으로 포를 쏘았을 때도 이 문제가 불거졌다 했다. 고쳐지지 않았다고 했다.

만일 북한의 1차 포격 때부터 레이더가 작동했다면, 그래서 1차 대응사격 때부터 개머리 포진지를 때렸더라면, 오후 3시12분에 시작된 북한의 2차 포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연평도에는 북측 해안포 기지를 겨냥한 K-9 자주포가 6문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하나 우선 느낌이 너무 적다. 게다가 23일 이 자주포 가운데 2문은 고장나 있었다. 그나마 최초 사격에는 3문만이 정상적으로 작동됐다고 했다. 북한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겠으나 사실상 '여건'은 '노마크 찬스'나 다름없었다.

'천안함' 이후 국방부는 서해5도에 획기적으로 전력이 증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K-9 자주포의 연평·백령도 추가배치 계획도 없다고 했다. 북한은 황해도 장산곶과 옹진반도, 강령반도 일대 해안에 해안포 1000여 문을 배치해 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국방부 쪽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만 계속 들린다. 북한의 1차 포격과 2차 포격이 있은 후 우리 쪽이 대응사격에 나선 것은 각각 13분 뒤였다. 그간 국회 국방위원들이 들은 이야기는 "적의 포격 후 우리 측 대응사격까지 소요시간은 5분"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13분이면 잘한 것"이라고 24일 국회에서 답변했다.

"적의 포격 중에는 대응사격을 않는 게 원칙"이라는 난해한 이야기도 나왔다. "북한의 포 사격 징후를 파악했으나 바로 사격하리라고 판단하지 못했다"는 기막힌 소리도 들린다. 북한이 수시로 동굴진지를 열었다 닫았다하는 위장전술을 펴기 때문이라 했다. 요컨대 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오후 3시쯤 북한 포탄의 파편이 목에 박힌 병사는 연평도에서 배편으로 평택까지 갔다가 5시간 뒤인 밤 8시경 헬기편으로 국군통합병원에 옮겨졌다. 그제야 4시간짜리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대피시설엔 전기도 수도도 끊겨있고, 이불 같은 기초생활용품도 없다. 연평·백령도 등 북방 한계선 근처 주민들은 그동안 매년 정부에 시설의 보수를 요청해왔다. "예산이 없어 올해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반복해 들었다.

대통령은 처음엔 '확전자제'를 이야기했다가 '단호대응·확전자제'를 거쳐 '교전수칙을 뛰어넘는 강력한 응징'으로 발언수위를 높여갔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하는 것 같다. 믿을 수가 없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자. 미국의 항공모함이 항상 서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일시적인 시위일 뿐이다. 그래서 기초체력을 갖춰두는 것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 체력 갖추는데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 돈 아낄 데가 있고 아끼지 말아야 할 데가 있다.

포탄 탐지 레이더, 최신형으로 사야 한다. K-9 자주포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획기적인 전력증강 계획, 실천에 옮겨야 한다. '접적지역'의 대피시설도 전면적인 보강이 필요하다. 무인비행기가 됐건 열압력탄이 됐건 돈 아껴서는 안 된다. MB정부는 돈 없다는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보다 더 급하고 절실한 용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때마침 MB도 서해5도에 세계최고의 장비를 갖추라고 했다.

바로 국민이 그렇게 반대하는 4대강 예산에서 전용해 쓰면 된다. 국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4대강 사업 중 꼭 해야 하거나 서둘러야 하는 문제는 진지한 토론을 거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해도 결코 늦지 않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북관계다. 한꺼번에 모두를 잃거나 어느 한쪽이 심각한 상처를 입는 선택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피하는 게 옳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동안 북한을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쪽이 다치지 않으면서 타도할 수 있거나 굴복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관리대상'으로 삼는 게 최선이다.

얼굴 자주 보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개성공단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신뢰를 쌓아갈 필요가 있다. 그게 다 관리다. 양쪽 다 이익이 되는 길이다. 철저한 국가 안보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나라를 오기로, 특히 남북관계에서 나라를 오기로 이끌고 가려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하는 오기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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