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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별! 송광사 암자순례길과 낙안읍성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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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을 이별! 송광사 암자순례길과 낙안읍성 속으로

2017년 11월 두발로학교

강의 마감했습니다.
학교 사정으로 당분간 휴강하고
2월에 뵙겠습니다^^

11월 18일(토),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61강으로,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전남 순천 송광사와 낙안읍성으로 떠납니다.

순천의 명산 조계산은 낮지만 깊은 산입니다. 산자락 양편으로 태고종찰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를 품었지요. ‘춘마곡 추갑사’란 말을 빌리면 ‘춘선암 추송광’이라 할 만합니다. 선암사는 봄 풍경이 좋고, 송광사는 가을빛이 눈부십니다. 송광사는 탑전(오도암), 불일암, 감로암, 광원암 등의 암자를 품고 있는데, 그곳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장엄합니다. 불일암에서는 법정스님(1932-2010)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요. 스님이 떠난 암자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아울러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의 부도를 돌아보는 일도 매력적입니다.

▲송광사 율원에서 감로암 가는 길에 가을이 깊었다. 길에서 만난 스님과 보살은 극진하게 합장을 나눈다.ⓒ진우석

송광사 인근의 낙안읍성은 가을 기운이 가득한 야산들이 감싸안은 분지에 초가와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조선 시대 읍성의 모습을 잘 간직한 전통마을이죠. 조선 태조 때, 왜구가 침입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처음 흙으로 성을 쌓았고, 300년 후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하여 지금과 같이 돌로 된 성으로 고쳐 쌓았습니다. 낙안읍성 안에는 기와집의 관아건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100여 채의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민속마을입니다.

▲우화각을 건너면 송광사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간다.ⓒ진우석

진우석 교장선생님은 저명한 여행가이자 여행작가이십니다. 스스로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라 하며 ‘걷기 달인’, ‘길의 탐미주의자’로 통합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 알프스, 백두대간 등 국내외 굵직한 트레일을 걸었으며, <서울신문>에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연재를 시작으로 국내외 ‘날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으로 있으며, 삼성 SERICEO‧여행작가학교 등에서 여행강사로 활동합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1월의 걷는 길에 대해 들어봅니다.

승보사찰 송광사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주석하며 대대적으로 중창했고, 지눌의 법맥을 있는 16명의 국사스님을 배출해 승보사찰로 불린다. 16국사 중 일곱 국사의 부도가 송광사 일대에 퍼져있다. 그래서 송광사 암자순례는 국사들의 부도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송광사 매표소를 지나자 좋은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와 킁킁거리며 향기를 좇는다. 은목서다. 짙은 녹색 잎사귀 아래에 손톱만한 흰 꽃이 총총 피었다. 가까이 코를 들이대니 훅~ 끼쳐오는 진한 향기. 단풍철에 피는 향기로운 흰 꽃은 참으로 특별하다. 덕분에 송광사로의 입장이 기분 좋다.

청량각을 건너지 않고 계곡을 따르는 길이 송광사로 가는 옛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불일암, 광원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말끔한 포장도로가 아닌가. 법정스님이 다니던 오솔길은 어딜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불일암을 먼저 가려는 계획을 바꿔 감로암으로 향한다.

그윽한 삼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면 탑전(오도암)에 이른다. 탑전은 구산 수련스님(1909-1983)의 사리탑을 모신 곳이다. 탑전의 입구를 구산선문이라 하는데, 형태가 특이하다. 문 중앙에 작은 고목을 파서 다시 작은 문을 만들었다. 이곳을 들어가려면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한다. 문을 넘으면 적광전과 부도전이 나온다. 경내는 인적이 없어 고요하다.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인 감로탑은 송광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았다.ⓒ진우석

불일암과 법정스님

감로암은 탑전에서 오른쪽 방향이다. 돌담이 정겨운 완만한 오르막에는 갈참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어우러져 고운 빛을 내뿜는다. 율원 옆의 부도암 담장 뒤에는 29기의 부도와 5기의 비가 층층 모여 있다. 이어 구불구불한 길을 따르면 거북좌대에 앉은 당당한 비와 감로암을 만난다. 비는 6세 국사인 원감대사 충지(1226∼1292)의 탑비다. 감로암을 세운 충지는 19세에 장원급제해 10여 년 외교관으로 봉직하기도 했다.

감로암부터는 산비탈을 타고 돈다. 낙엽 수북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대숲이 나타나면서 불쑥 불일암이 나타난다. 법정스님은 1975년부터 이곳에 머물며 낮에는 채소밭을 일구고, 밤이면 글을 썼다. 그의 명징하고 아름다운 글은 <무소유>란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가 영화 <빠삐용>을 보고 만들었다는 ‘빠삐용 의자’에는 책갈피와 사탕바구니가 놓여 있다. 의자 앞의 후박나무 아래에 법정스님이 잠들어있다. 불일암 한쪽에는 7세 국사 자정대사의 부도가 있다. 본래 불임암은 자정대사가 창건했다.

▲소담한 채소밭이 인상적인 불일암. 법정스님은 낮에 일하고 밤에 글을 썼다.ⓒ진우석

송광사와 감로탑

불일암을 나와 울창한 대숲을 통과하면 광원암을 만난다. 암자 뒤편 조망 좋은 자리에 2세 국사 진각대사의 부도가 앉아 있다. 진각대사는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했다고 전한다. 부도에 조각된 작은 동물들이 귀엽다. 부도에서 바라보면 앞산이 포근하게 암자를 감싸주는 느낌이다.

광원암을 내려오면 편백나무 숲 앞에서 포장도로와 오솔길이 갈린다. 오솔길이 법정스님이 다니던 일명 ‘무소유의 길’이다. 순하고 부드러운 길을 휘휘 돌아내려오면 탑전 앞이다. 불일암으로 가는 오솔길을 한참 찾았는데, 놀랍게도 출발점 옆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 우화루를 건너면 송광사 경내로 들어선다. 송광사에는 국보와 보물 등이 수두룩하니 천천히 둘러보자. 송광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1세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인 감로탑이다. 관음전 뒤편의 가파른 계단 위를 오르면 감로탑이 나온다. 이곳은 가히 송광사 최고의 전망대다. 빽빽하게 들어찬 송광사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유로운 지붕선들은 건너편 가을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원감국사 충지의 당당한 탑비. 뒤로 자리한 암자가 감로암이다.ⓒ진우석

두발로학교가 11월 18일(토) 걷는 제61강 <송광사 암자순례길과 낙안읍성>의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06:50 서울 출발(0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61강 여는 모임
-송광사 도착
-송광사 암자순례
-점심식사 겸 뒤풀이
-낙안읍성으로 이동
-낙안읍성 산책
16:00 서울 향발
*위의 일정은 당일 교통상황과 현지 사정, 날씨 등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송광사 암자순례길와 낙안읍성> 걷기 약도 ⓒ두발로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스틱, 모자, 장갑, 선글라스, 윈드재킷, 식수, 우비, 여벌옷, 자외선차단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함). *점심식사가 늦어질 수 있으니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세요^^

<참가 신청 안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반드시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두발로학교'를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와 해외캠프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낙안읍성은 100여 채의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민속마을이다.

[학습자료]
[송광사]
한국의 삼보 사찰 가운데 승보 사찰인 송광사는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선수행의 도량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했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라 칭하고, 도와 선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했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때까지 송광산이라 불렸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렸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2년(1097) 대각국사 의천이 일으킨 천태종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이 따로 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천자암·감로암·부도암·불일암·판와암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 및 탑전 등이 있다. 목조삼존불감(국보 42), <고려고종제서>(국보 43), 국사전(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보물 90), 경질(보물 134), 경패(보물 175)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
(1)보조(普照)국사 지눌(知訥, 1158-1210
(2)진각(眞覺)국사 혜심(慧諶, 1178-1234)
(3)청진(淸眞)국사 몽여(夢如, ?-1252)
(4)진명(眞明)국사 혼원(混元, 1191-1271)
(5)원오(圓悟)국사 천영(天英, 1215-1286)
(6)원감(園鑑)국사 충지(沖止, 1226-1292)
(7)자정(恣靜)국사 일인(一印)
(8)자각(恣覺)국사 정열(晶悅)
(9)자오(慈悟)국사 담당성징(湛堂聖澄)
(10)혜감(慧鑑)국사 만항(萬恒, 1249-1319)
(11)자원(慈圓)국사 경린(景麟)
(12)혜각(慧覺)국사 경총(景聰)
(13)각진(覺眞)국사 복구(復丘, 1270-1355)
(14)정혜(淨慧)국사 복암(復庵)
(15)홍진(弘眞)국사 선현(禪顯)
(16)고봉(高峰)국사 법장(法藏, 1350-1428)

[낙안읍성]
조선시대 읍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마을이다. 태조 임금 때인 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인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키고 방어하기 위해 처음 흙으로 성을 쌓았고, 300년 후에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하여 지금과 같이 돌로 된 성으로 고쳤다. 읍성 안에는 조선 시대에 관아로 쓰던 건물과 100여 채의 초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초가는 대개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집의 형태로, 낙안 읍성의 집들은 남부지방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성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표현한 ‘읍(邑)’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읍성이란 고을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을 뜻한다. 낙안읍성도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으로, 조선 시대 읍성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성 안에는 지금도 100여 가구가 전통한옥에서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민속을 잘 보존한 전통마을로서도 가치가 높다.
낙안읍성의 전체 모습은 평평한 땅에 동서쪽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문과 서문 터에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으로 성벽을 쌓은 옹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곽은 자연돌로 쌓았다. 큰 돌이 움직이지 않도록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 돌로 ‘쐐기박음’을 했는데,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여전히 튼튼하다. 읍성 안에는 1536년에 지은 객사, 관아 등이 온전히 남아있다. 또한 마을에는 부엌과 토방, 툇마루 등 원래의 모양을 간직한 집이 많아 남부 지방의 전통한옥 모양을 살펴볼 수 있다. (자료 출처:<한국사사전1>)

두발로학교를 여는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의 시대입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도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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