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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화백 “고부 갈등을 통해 머리카락의 가치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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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화백 “고부 갈등을 통해 머리카락의 가치를 알았다”

세계 최초 ‘머리카락이 화폭에서 춤을 춘다’

‘광부 화가’, ‘민중미술가’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황재형(65) 화백이 ‘사고’를 쳤다.

황 화백은 세계 최초로 머리카락을 이용해 탄광촌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화폭에 담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30여 년간 강원도 태백에서 광부의 시각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황 화백은 지하 막장에서 헌신해온 탄광촌 광부와 그 가족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그동안 다양한 장르로 표현해 왔다.

▲황재형 화백이 세계 최초로 머리카락을 이용해 광부의 초상화 작품을 탄생시켰다. ⓒ프레시안

그런 그가 이번에는 탄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재료로 대작 20점을 화폭에 담았다.

화폭에서 춤을 추는 머리카락은 강렬한 눈빛으로 승화하거나 행복한 모습의 광부와 가족들 나들이 표정에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삶의 표정’을 주제로 한 머리카락 그림을 중심으로 한 개인전시회를 오는 11월 29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갖기로 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소재로 하도록 만들었을까.

지난 15일 태백문화예술회관 근처에 있는 화실에서 그를 만났다.

“2년 전 현역에서 은퇴하신 한 여자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그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황혼이혼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황 화백이 강한 충격을 받은 여교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처녀 교사는 70년대 시집을 갔다. 첫 딸을 출산하자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 내왔다. 첫 숟가락을 뜨는데 이상한 것이 걸렸다. 흰색과 검정색이 섞인 머리카락 한 움큼이었다. 시어머니의 질투였다. 며느리가 먹을 미역국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넣은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았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은퇴한 여교사의 한스러운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끝나지 않은 숙제를 떠올렸다. 고부간의 갈등은 대한민국 모든 갈등의 시작이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였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처럼 말이다. ‘맞아! 인류는 과거부터 계급이 지배해 왔다.’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삶의 감정과 인생에서 머리카락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어머니가 머리카락으로 표현한 것은 직관으로 물질성과 정신성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노동의 가치를 탄광 막장의 순수하고 진정한 의미를 화폭을 통해 전달해 왔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은 피부를 통해 (신체)밖으로 성장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갖는 의미를 그 여교사를 통해 절감했다. 폐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우리들의 삶의 표정을 표현하는 기회를 만들자. 좀 더 진지하고 리얼하게 머리카락을 통해 탄광촌 사람들의 표정을 전달해보자는 생각으로 머리카락 그림이 시작된 것이다.”

▲광부가족이 산업전사위령탑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도 황재형 화백이 100% 머리카락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프레시안

황 화백이 머리카락으로 옮긴 표현들은 ‘휴식을 즐기는 광부가족’, ‘노동의 가치’, ‘광부의 초상’, ‘불평등’ 등 20점이다.

그는 “머리카락 그림에 쓰인 재료는 모두 태백지역 미용실에서 미용사들의 협조를 통해 수거한 것이다. 탄광촌의 사람들을 소재로 하는 그림에 탄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색, 갈색, 흰색까지 미용실을 돌며 정성스럽게 모은 머리카락이 화폭에 옮겨진 것이다.”

그의 손은 두툼하고 투박하지만 가슴은 한 없이 포근하다. 그래서일까. 은퇴한 늙은 광부의 모습을 표현한 ‘아버지의 자리’(2013년)는 대한민국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한겨레신문 만평가로 잘 알려진 박재동 화백은 ‘아버지의 자리’를 보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원폭을 받은 느낌이었다”며 “어떻게 이런 인물화를...”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충격을 전했다.

또 그는 “황재형의 이 그림은 한국 역사속의 인물화에서 정점을 찍는 인물화로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며 “이제 인물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부들의 그림과 함께 광부의 아버지, 어머니도 화폭에 담았다.

“광부로 퇴직한 어르신을 요양원에서 만나보니 애절한 눈빛이 절절했다. 그 어르신은 자녀와 가족을 위해 막장에서 희생했다. 그런데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말년을 지내는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서리고 코 아래 인중에는 막장에서 생긴 흉터자극이 눌러 앉았다.

그분들의 노력 덕분에 연탄으로 안방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었다. 2013년 작품 ‘아버지의 자리’ 그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황 화백은 ‘머리카락 그림’과 함께 ‘흑연 그림’ 10점도 선보인다.

흑연을 각별히 사랑하는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검정 흑연을 문지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색상이 분명하게 갈리는 흑백사진처럼 (흑연그림은)영혼이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났다가 바이칼 호수를 만났다. 2500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바이칼호수를 보면서 민족의 뿌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바이칼호수를 ‘거대한 침묵’으로 재현했다. 장엄하고 신비한 호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신채호 선생의 초상화도 흑연으로 재탄생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3개월간 전시될 예정이다. 그 후 삼성박물관에는 신채호 선생의 초상화를 거꾸로 거는 조건으로 전시를 결정했다.

신채호 선생을 통해 우리 역사를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2세, 3세들이 우리 역사가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는 점과 이를 통해 긍지를 갖게 하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황재형 화백이 머리카락으로 제작한 광부와 딸의 평화로운 나들이 모습. ⓒ프레시안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황재형 화백은 중앙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임술년’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79년 열차를 타고 강원도 탄광촌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그는 삼척군 도계읍, 정선군 구절리와 사북, 고한을 둘러보고 황지에 둥지를 틀었다.

1980년 4월 사북에서 터져 나온 사북사건을 접하고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이원갑씨도 만났다. 1980년대 탄광촌 정보기관에서는 ‘민중그림’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그를 보고 ‘간첩화가’라며 수근 거렸다.

중앙미술대전 장려(1980년), 민족미술상(1993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2016년)을 수상했다.
또 그는 미술인들과 ‘함께 나누며 같이 바라보기’ 태백미술연구소를 열어 미술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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