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 미국 측 협상 대표를 맡아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대사가 현재 북한과 미국 간 충돌 위기가 높다면서 조건없는 협상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16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제2회 윌리엄 페리 강연 시리즈의 강연자로 나선 갈루치 전 대사는 현재 북미 관계가 "어느 상황에서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위기가 심각해진 것은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대한 역량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내에는) 북한과 협상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리스크를 부담할 것이냐고 질문했더니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갈루치 전 대사는 "북한과 미국 간 쌓인 불신 때문에 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으로는 북한의 핵 무기를 봉쇄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제재를 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제재를 통해 무엇을 얻을지 생각해야 한다"며 "이란은 제재가 효과가 있었지만 이란과 북한은 경제 체제도 그렇고 차이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갈루치 전 대사는 결국 제재든 봉쇄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일종의 (핵 포기와 관련한) 진실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대화의 조건을 걸었지만, 제 생각에는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갈루치 전 대사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제한하는 식으로 (북미 양측이) 주고받을 수 있다"며 "미사일과 핵무기, 그리고 북한이 원하는 어젠다인 연합 훈련 및 체제 인정 등을 (협상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적어도 국무장관이나 차관보 급의 고위당국자 선에서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전술적으로 트랙 1(당국 간 회담)과 트랙 2(민간 대화)로 나눠서 협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면서 구체적인 대화의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남한 정부도 북한과 대화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핵 문제는 미국도 참여해야 하지만 핵무기가 아닌 다른 문제들이 있다. 어떤 주제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대해 갈루치 전 대사는 "북한이 현재는 협상에 관심 없는 것 같다. 자신들의 ICBM의 역량을 보여주고 나서 대화에 들어갈 것 같다. 평등한 대화의 장이라는 것을 확신한 다음에 들어올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그는 "핵무기를 포기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 하나하나를 찾는 것 보다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지를 언급하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등 대통령과 장관이 엇박자를 내는 것과 관련, 갈루치 전 대사는 "대통령과 국무부가 각각 '나쁜 경찰'과 '좋은 경찰'로 역할을 나눠서 맡았다는 견해가 있고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각각 자신의 생각을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데, 내 생각은 후자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에 대해 "굉장히 적절하지 않았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며 "선제 공격은 북한의 공격 조짐이 없다면 먼저 사용해서는 안된다. (선제 공격의) 리스크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강연에 앞서 갈루치 전 대사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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