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로 정해진 상대방의 움직임을 불법적인 수단으로 염탐해 꼬투리를 잡아내려 했다. 그런 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 나라의 민간인 불법사찰사건과 성격이 같다. 다 불법 사찰사건이다.
워터게이트 '드라마'는 '불법침입'에서 '대통령 하야'까지 2년 2개월이 걸렸다. '저쪽'은 전모가 모두 밝혀졌다. '이쪽'은 아직 밝혀진 게 별로 없다. 밝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여당의 최고위원들까지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투성이라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양쪽에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놀랍다. 불법사찰이라는 사건의 성격 말고도 우선 '저쪽'은 백악관과 관련이 돼 있고, '이쪽'은 청와대와 '끈'이 이어져 있다는 점이 닮았다. 양쪽 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다.
'이쪽'에서는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도 근거가 적지 않다.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08년 7월 한승수 당시 총리 앞에서 치러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출범신고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의 그가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 발족에 깊숙이 관여했고, 이 불법사찰기구의 사후관리를 맡게 됐으리라는 추정은 쉽게 나온다.
구속 중인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도 '청와대'의 공직기강 팀장에게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했노라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불법사찰의 증거를 없애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최모 행정관은 '대포폰'을 개설해,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 결코 보통 '끈'이 그냥 이어져 있는 게 아니다.
양쪽 다 '수첩'이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것도 닮은 점이다. '이쪽'에서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국회 법무부 국정감사장에서 공개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원모 조사관의 80여 페이지짜리 수첩이다. 여기에는 청와대(Blue House)의 약자인 'BH 지시사항'이란 문구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청와대의 민정.사회수석에게 보고했다는 대목도 있다.
'저쪽' 수첩은 '그날'새벽 불법침입 현행범으로 붙잡힌 5명중 한사람인 제임스 맥커드의 품속에서 나왔다. 그 수첩에는 닉슨 재선위원회에서 역할을 맡았던 에드워드 하워드 헌트라는 인물의 백악관 연락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이 전화번호 한 개가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의 단초가 된다. '불법침입자 맥커드가 닉슨과 가까운 누군가와 관련이 있다는, 그래서 이 사건은 백악관까지 연루된 사건일 수 있다'고 FBI는 본 것이다. '저쪽'에서는 그렇게 수첩에서 나온 전화번호 한 개로 끈질긴 수사가 시작된다.
'이쪽'에서는 전화번호 한 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단서들이 수첩에서 쏟아져 나왔으나, 밝혀진 게 없다. '이쪽' 검찰은 지금도 그저 청와대는 아니라고만 말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 처음부터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도 양쪽이 닮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후에 문제의 '대포폰'이 튀어 나왔을 때도 청와대는 그랬다. 최 행정관 '개인'이 자신의 '차명폰'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하루 빌려줬을 뿐이라고 했다.
'저쪽'도 불법침입자 체포 후 수첩에서 백악관 전화번호가 나왔을 때 '천만의 말씀'이라며 부인했다. 지글러 백악관 공보담당관은 체포된 사람들이 "3류 도둑(third rate burglary)에 불과하다"며 백악관과는 관계없음을 강조했다.
'저쪽' '수첩'의 임자 맥커드가 닉슨 쪽에서 자금을 받은 사실이 수사결과 드러났다. 닉슨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홀더먼 수석보좌관과 대책을 논의한다. 집무실의 모든 대화는 자동 녹음되고 있었다. 그 녹음테이프가 훗날 결정적 증거(Smoking gun)가 되었다.
닉슨의 은폐·은닉 시도는 처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FBI의 조사를 방해하라고 CIA에 지시한다. 국가안보가 위험하다는 핑계를 댔다. 법무장관에게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도 했다. 그러나 장관은 지시를 거부하며 스스로 사임해 버렸다. 차관도 거부하고 사표를 썼다. 그래도 콕스는 끝내 해임을 당했다.
'이쪽'도 많이 수상하다. 처음부터 누군가 어디에선가 미리 정해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찰수사가 이뤄지는 듯한 강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그저 청와대나 '형님'쪽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다들 기를 쓰는 것 같다.
총리실이 조사에 나선 건 사건이 불거진 지 열흘이 지나서였다. 그 사흘 만에 검찰에 수사가 의뢰됐다.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사건을 주물러 댈 수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일련의 '은닉' 과정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양쪽 모두 '숨기기 위해' 직접 증거를 인멸하는 점도 닮았다. 죽어라고 버티던 닉슨은 궁지에 몰린 끝에, 결국 상원 특별조사위원회에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한다. 그러나 그 테이프는 중간에 중요한 대목 18분 30초가 지워져 있었다. 증거인멸이었다.
▲ 야 5당이 대포폰 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대포폰 의혹이 불거지자 야당들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나오고 있다. ⓒ연합 |
'이쪽'의 증거인멸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악스런 수법으로 이뤄진다. 그간의 민간인 불법사찰내용이 들어있는 컴퓨터 4대의 하드디스크를 수원까지 들고 가, 전체기록을 송두리째 삭제해 버린다. 일찍이 민간기업 아닌 정부기관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지워버리는 증거인멸은 있어 본적이 없었다.
검찰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 건 7월 8일이었다. 결정적 증거인 하드디스크가 삭제된 건 그 하루 전인 7월 7일이었다. 압수수색 예정을 미리 알고 때맞춰 증거를 없앤 게 아니냐는 의혹을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검찰이 법무장관도 모르게 청와대와 직거래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가득찬 목소리도 나온다.
이른바 '윗선' 의혹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손도 대지 않았다. '대포폰 개설'의 최 행정관에 대해서도 재판부에 넘긴 수사기록에서 청와대의 직책과 직위를 아예 뺀 채, 민간인인 것처럼 그냥 '최 아무개 씨'라고만 썼다. 청와대의 일개 행정관을 검찰은 검찰청 아닌 외부에서 그것도 단 한차례만 조사한 뒤 무혐의 처리했다. 왜 그렇게까지 청와대를 감싸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토록 발버둥치며 사건을 덮으려 했던 닉슨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저쪽'에서 진상이 철저히 밝혀진 것은 건강한 언론과 건강한 국회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이 '이쪽'과 다른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두 기자의 활약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다. 익명의 제보자(Deep throat)가 있긴 했으나 이들 두 기자가 선도한 여론은 '저쪽' 온 국민의 눈과 귀를 모아가기에 충분했다.
상원에서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청문회 등 '진실 캐내기' 작업을 끝없이 이어나갔다. 38년 전 '저쪽'에서는 이미 그랬다. 그게 '저쪽'의 국가 경쟁력이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지금 '이쪽' 이 나라의 언론과 국회가 어떤 모습인지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심지어 둘 다 '은닉'에 협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쪽'의 불법사찰사건이 어떻게 결말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얼마나 더 '저쪽' 닮아갈지, 무엇이 닮지 않은 것으로 남을지, '윗선'이 어디까지인지 알 길이 없다. MB나 '형님'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누차 강조했듯이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은 결코 그렇게 그냥 끝낼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일개 이사관급인 공직윤리지원관을 가장 '윗선'의 자리에 억지로 '모셔'두고 수사를 마감할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다. 그 '윗선'이 없을 수 없는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격(國格)과 공정사회와도 직결되는 이야기다. 국회의원 '긴급 무더기 압수수색'이나 개헌 눈속임 같은 것으로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저쪽'의 사례에서 보듯이 '은닉'은 결코 성공할 수 없게 돼 있다.
청와대는 검찰에게 출입문을 열어줘야 한다. 안에 들어가 조사할 수 있도록 우선 쪽문이라도 열어줘야 한다. 여러 분야에서 '자상한' 모습을 보여 왔던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의 재수사 문제를 놓고 지금처럼 침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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