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지난 5개월간의 여정이 원래부터 계획된 수순을 밟아온 것이었는지, 아니면 돌고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검찰이 여야 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 등을 동시에 압수수색하는 등 청목회 입법 로비 사건을 최대한 부풀려 청와대가 얻고 싶었던 결론은 '정치개혁'이었다. '돈 밝히는 의원'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강조해 정치개혁에 대한 대중적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 70%가 이번 수사에 찬성한다"고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돌고 돌아 '정치개혁' 이슈로
그렇다면 '정치개혁'에 대한 여론을 등에 업고 이명박 정부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한나라당이 9일 그 답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거구제 개편, 정치자금법 개정 등을 위한 정개특위를 당 차원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선거구제 개편은 6.2 지방선거 직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에서 처음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슈다. 사회통합위는 지난 6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지방선거제도 개혁 방안을 보고했다.
사통위는 특히 현 소선거구제에 대해 "지역적으로 밀집된 지지를 가진 정당에만 유리해 지역주의 정치구조화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다른 당을 지지한 표가 사표화돼 국민 표심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비판한 후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지난 1일 대정부질문에서 "사회통합위원회에서 연말에 선거구제 개편을 건의할 것이고 그것을 참고해서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은 공식적으로는 사통위가 대통령에게 건의한 뒤, 대통령이 이를 받아 정치권에 제안하는 수순을 밟는 모양새이지만, 사실상 '청와대의 기획 작품'이다. 사통위 관계자는 선거구 개편안 검토가 "청와대 오더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사통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임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 청와대는 '청목회 수사'를 통해 정치자금 문제까지 얹어 '정치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려고 하고 있다.
▲ 검찰의 청목회 관련 압수수색 이후 민주당은 연일 검찰을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이번 압수수색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
노무현 대통령도 '권력 분점' 약속하고 선거구제 개편 제안했었지만…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이미 여러차례 제기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여러 차례 '지역주의 정당 타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주장했었다. 2005년에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선거구제 개편에 합의해 준다면 '대연정'에 준하는 수준으로 권력을 넘겨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권력의 절반을 떼어준다'는 미끼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당은 응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진의가 의심되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선거구제 개편은 현역 의원들 입장에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연관된 문제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왜곡된 표심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있더라도 당장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면 반대하는 의원들이 절대 다수다.
한나라당이 여당, 민주당이 야당이 됐다 한들 이처럼 '생존'이 '대의명분'에 앞서는 정치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고, 지난 2년 반 동안 여당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른 적 없어 '거수기 정당'이란 비난을 받아왔다 하더라도 이는 '과거지사'다. 소속 정당을 떠나 개인 의원들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문제는 '2012년 총선에서 내가 살아남을 것이냐'다.
따라서 '정치개혁'이란 명분과 여론을 앞세워 국회를 압박한다 하더라도 실제 선거구제 개편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권력'이란 실질적인 대가를 내놓았어도 바꾸지 못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왜 선거구제 개편을 들고 나왔을까? 개헌과 마찬가지로 선거구제 개편은 '블랙홀'이다. 의원들의 '목줄'이 달린 문제가 공론화 장에 올랐을 경우, 의원들의 관심은 이 문제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6월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가 '정치개혁'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정치개혁은 블랙홀"이라며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었다.
마찬가지로 선거구제 개편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4대강 사업, 대포폰 등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 한미 FTA 등 다른 정치적 이슈가 묻히게 된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진짜 목적은 선거구제 개편이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의 공론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열린 정치적 공간에 이 대통령과 여권 수뇌부는 총선 전략과 후계구도를 재편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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