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군대는 '훈령'으로 성소수자 관련 지침을 내놓았다. '동성애자에게 성 경험과 같은 사생활을 물으면 안 된다', '동성애자를 아웃팅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에게 에이즈 검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마련됐다.
하지만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2007년에는 선임병과 간부에게 40여 차례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동성애자 병사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네 차례 자해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군대 내에서 대대적인 '성소수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면서 사회 문제가 됐다. 군인권센터는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피해자는 총 22명이고, 이들은 2차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수사관들은 피해자들에게 포르노 취향, 민간인과의 항문 성교 경험, 첫 성경험 시기, 평소 성욕 해소 방법, 자주 가는 게이업소, 성교 장면에 대한 자세한 묘사 등을 강요했다. 군 수사기관이 동성애자 인권 침해를 금지한 부내 대 훈령을 어긴 것이다.
군 당국은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군대 내 사기 저하'를 꼽는다. 외국에서는 어떨까.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27일 군인권센터, 호주, 캐나다, 미국, 영국 등 주요 4개국 대사관과 함께 '한국과 선진국 군대의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김종대 의원은 합의된 성관계일지라도 군인이 항문 성교를 하면 실형을 살도록 한 군형법 92조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미국대사관 "성소수자 차별은 미국 안보에 반해"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은 사실상 '군대 내 동성애 처벌 조항'인 군형법 92조를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의 법 제도는 호주 군 장병을 원하지 않는 성적 행동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지만, 군대 내의 성소수자를 겨냥하는 특정한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런 법이 있다면 지난날의 과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들 여길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성소수자 차별은 미국 안보에 반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에릭 퐁 주한미국대사관 인권 담당 서기관은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우려한다"며 "한국에서도 모든 군인이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성별,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에 따라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은 미국 헌법에 기초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에릭 퐁 서기관은 "미국에서는 여러 조치로 군대 내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미국 국무부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성소수자의 달(LGBTI Pride Month)'을 인정했고, "(성소수자, 비백인 등) 취약한 그룹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미국 공동의 안보와 공동 가치에 반한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 국방부도 '성소수자 군인의 고군분투와 희생은 미국의 역사와 모든 관용을 만든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영국 해군의 '다양성과 포용 담당관'인 레베카 달라모어 소령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해서는 군 지휘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국방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이 군내에서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군대 내에 성소수자 네트워크가 있고, 여성이 군내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모니터링한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더 나아가 군대 내 성소수자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 군대에서는 성소수자나 여성도 정체성과 상관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포지티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캐나다 군이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주한캐나다대사관의 제임스 코터 대령이 설명했다.
호주에서는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성소수자 군인'의 인권을 위해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성소수자의 주'에 군인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한다. 이날 참석한 4개국 대사관은 지난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해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바 있다.
"한국 국방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 재생산"
이날 국내 사례 발제에 나선 김형남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군형법 92조를 옹호하는 논리로 국방부가 내세운 '군기 저하' 논리가 자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2010년 레바논에 파견된 남녀 군인이 영내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지만, 군 당국은 형사 처벌하지 않았고 '품위 유지 위반'으로 징계하는 데 그쳤다. 군 지휘부가 대대적으로 '동성애자 색출'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에 실시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 사례 중 가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성폭력과 현 군형법을 분리해 봐야 하는 이유다. 여군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우, 군 당국이 가해자 처벌에 미온적인 때가 잦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국방부부터가 군대 내 성폭력의 가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편견을 재생산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팀장은 "국방부가 군형법상 추행죄를 통해 그토록 보호하고 싶은 보호 법익이 '엄정한 군기'라면, 성소수자 군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것은 도리어 전투력을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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