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체불 하면 월급을 못받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국민연금 보험료까지 체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용자가 국민연금 보험료 중 노동자의 기여금을 분명 월급에서 공제하였건만 보험료를 국민연금공단에 납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 징수를 담당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해당 노동자에게 체납 사실을 통지합니다(국민연금 보험료는 2010년 징수 통합의 과정을 통해서 건강보험공단이 징수하고 있습니다).
월급도 못 받고 연금보험료도 체납당한 노동자
이 경우 노동자는 5년 이내에 체납된 국민연금 보험료의 자신 몫 기여금을 다시 개별 납부할 수 있습니다. '기여금 개별 납부', 이 단어가 굉장히 낯설고 어려우실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기여금이란 것은 회사를 다니는 분들이 월급에서 공제되는, 즉 본인이 납부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몫을 의미합니다. 다른 한 짝를 이루는 것이 사용자가 내는 부담금이지요. 회사를 다니는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소득의 9%입니다. 예를 들어, 월급이 200만 원이 되는 분은 9%인 18만 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데요, 사용자가 부담금으로 절반인 9만 원을 부담하고, 노동자가 기여금으로 또 절반인 9만 원을 기여합니다. 그렇게 200만 원의 9%인 18만 원이 만들어지고, 사용주가 이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합니다.
<표 1>을 보면, 올해 6월에 월급에서 공제되었으나 납부되지 않은 기여금은 875억 원입니다.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된 1988년 이후 지금까지 미납된 기여금의 누적액은 1조 1066억 원입니다. 회사가 노동자의 월급에서 원천 공제를 하고서 국민연금공단에 납부하지 않은 금액입니다. 사장이 횡령을 했을 수도 있고요,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이런저런 채권자들에게 흘러갔을 수도 있겠지요.
허울뿐인 '기여금 개별 납부'
체납 사실을 통지 받은 노동자에게 이는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자신은 보험료를 이미 납부했는데 말이죠. 국민연금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설계된 것이 기여금 개별 납부입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가 본인의 기여금을 한 번 더 납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월급에서 공제되었지만, 회사의 체납으로 가입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므로 사후에라도 다시 납부하라는 취지입니다.
사실 국민연금법에는 원래 이런 경우 가입기간으로 인정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국민연금법 제17조 제②항입니다.
제17조(국민연금 가입기간의 계산) 제②항
가입기간을 계산할 때 연금보험료를 내지 아니한 기간은 가입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다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임금에서 기여금을 공제하고 연금보험료를 내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내지 아니한 기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을 근로자의 가입기간으로 산입한다. 이 경우 1개월 미만의 기간은 1개월로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③항이 '체납 사실을 통지한 경우'에는 가입 기간으로 산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사업자의 체납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가 안게 되는 것이지요. 이 때 노동자가 가입 기간을 인정받는 길이 '기여금 개별 납부'입니다. 다시 자신이 이미 낸 보험료 기여금을 납부하면 가입 기간을 인정해 주겠다는 제도입니다.
제17조(국민연금 가입기간의 계산) 제③항
「국민건강보험법」 제13조에 따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근로자에게 그 사업장의 체납 사실을 통지한 경우에는 제2항 단서에도 불구하고 통지된 체납월의 다음 달부터 체납 기간은 가입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이 경우 근로자는 제90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여금을 건강보험공단에 낼 수 있다.
시행령 제24조(기여금의 개별납부)에 따르면 납부 기한으로부터 5년 이내에 기여금 개별 납부를 해야 합니다. 기여금을 개별 납부하고 만일 건강보험공단이 지속적인 징수 활동으로 해당 사업장으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하면 이자(국세환급가산금의 이율, 현 연 1.6%)를 더해 개별 납부한 기여금을 돌려주게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는 기여금을 개별 납부하기 힘듭니다. 5년 내에 경제적 여건이 크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도 서울 등 수도권은 전세 폭등으로 빚을 내어 주거 비용 충당에 급급한 분들이 많습니다. 당장 생활 문제, 주거 문제, 교육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세월은 어느덧 흘러 연금 수급 시기가 다가옵니다. 뒤늦게 국민연금이 필요하고, 특히 가입 기간이 연금액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기여금을 개별 납부하지 못합니다. 여력이 있더라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표 2>에서 보듯이, 체납 사실을 통지 받은 노동자가 매년 100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2016년 기여금 개별 납부에 참여한 노동자는 162명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데, 다시 납부해야 가입 기간을, 그것도 절반의 가입 기간만 인정해준다니 선뜻 개별 납부에 나서겠습니까?
국민연금에서 가입기간이 중요한 이유
국민연금에서 가입 기간은 은퇴 이후 연금수급액 결정에 가장 중요한 변수입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연금법 제51조(기본연금액)에 의해 정해진 산식으로 연금액을 계산하여 지급합니다. 어떤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납부하였을 때 얼마의 연금액이 결정된다는 확정급여형 제도이지요. 사실 기금운용 수익률이 연 10%를 기록하든 -10%를 기록하든 우리의 연금액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연금액은 아래 기본연금액 산식에 의해 결정되는데, 여기에 수익은 변수가 아니지요. 이 기본연금액에 지급률을 곱하면 우리가 받는 국민연금 노령연금, 장애연금, 유족연금이 됩니다.
소득 대체율 ✕ (A값+B값) ✕ 가입 기간
*연(年)금을 월 연금액으로 계산하기 위하여 비례상수를 12개월로 나눈 소득 대체율로 표기하였습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국민연금은 '소득 대체율 ✕ (A값+B값) ✕ 가입기간'으로 계산됩니다. A값 부분이 균등 급여, B값 부분이 소득 비례 급여입니다. 여기서 소득 대체율과 A값은 고정되어 있는 상수이고, B값과 가입 기간은 변수입니다. 전체 평균 소득인 A값(2017년 현재 약218만 원)과 본인 소득인 B값이 괄호로 묶여 있기에 (A+B)는 산술 평균이 됩니다. B값은 괄호속의 한 부분에 불과하나 가입 기간은 A값에도, B값에도 곱해지기에 가입 기간이 바로 가장 큰 변수가 됩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는 가입 기간도 길지만, 불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가입 기간이 짧겠지요. 연금 격차는 소득에서도 발생하지만 이렇게 가입 기간의 격차에서도 비롯됩니다.
연금보험료 체납 시기를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야
여러분께 묻습니다. 사업자가 연금보험료를 체납했는데, 왜 노동자가 피해를 당해야 합니까? 회사에 일찍 출근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 보험료도 냈는데 말입니다. 사업자가 연체했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그 기간을 가입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제안합니다. 국가가 체불당한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먼저 대납해주고 행정력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에 대하여 사업주에게 대신 받아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말입니다. 이미 임금 채권 보장 제도에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제외한 임금, 퇴직금, 휴업수당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체납 보험료를 받지 못하고 '관리 종결(결손 처리)'할 경우에는 그 피해를 억울한 노동자가 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즉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지도록 합시다.
저를 포함한 다수 시민들이 지금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잘 납부하고 있다 해도 언제든 체납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성실하더라도 회사가 불성실하면 노동자는 성실 가입자가 되지 못합니다. 국민연금 보험료의 체불은 바로 미래 임금의 체불입니다. 공통의 위험에 함께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문명사회가 세금과 복지제도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함께 하나씩 일상의 공포를 제거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