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선거 결과는 무엇을 말하나?
일본 정치사에서 혁명이라 불릴 만한 결과가 나왔다. 외부에서 보면 정권교체가 그리 큰 변화가 아닐 것처럼 보이겠지만, 일본은 수십 년간 정권의 변화가 없었다. 1955년 이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이후 자민당이 제1당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정권교체의 배경은 구조적인 측면과 상황적인 측면으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조적인 측면을 먼저 보면, 사실상 1980년대 이후 자민당 정치는 여러 문제를 노출하면서 지지기반을 상실해 갔다. 1986년 300석을 얻은 것이 자민당의 최대 승리라면 그 후 23년 동안 의석수가 꾸준히 하락하는 장기 추세를 보였다.
유권자들의 지지 철회는 관료가 정치를 주도하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자민당 체제는 기본적으로 관료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자민당이 그걸 따라 가는 시스템이다. 반민주적인 성격도 있는 관료 중심 체제에 국민들은 염증을 느꼈다.
반면, 민주당은 기존의 야당에 비해 정권 장악 능력을 갖추고 있다. 참신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어 자민당이 아닌 선택을 내려도 일본이 흔들리거나 무너질 염려가 없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상황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던 자민당이라는 축이 무너져 내린 점을 들 수 있다. 고도성장은 멈춘 지 오래고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자민당 선택=경제성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고이즈미가 추구했던 시장일변도의 개혁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일본은 본래 평등사회였는데 이른바 격차사회로 만들면서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청년실업을 비롯한 실업 문제가 부각돼 사회 분열을 낳았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자민당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일본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회경제 세력이 늘어나면서 민주당은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갔다. 생활정치를 내세워 경제적 약자들에게 실업 수당, 의료 지원 등의 복지 패키지를 선물로 준비했다. 일종의 포퓰리즘 선거였다고도 볼 수 있다.
- 대외정책을 전망한다면?
속단하기 어렵다. 국내 정치 위주로 쟁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할 부분은 있다. 역사·안보 문제에서 네오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민당 지도부 상당수가 낙선하거나 궤멸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지도부인 하토야마 유키오(대표), 간 나오토(대표대행), 오자와 이치로(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간사장)의 역사 인식은 자민당에 비해 건전하고 전향적이다.
이미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종군위안부, 교과서 문제 등에 전향적인 인식을 표명했다. 또한 안보·군사 문제에서도 군사 대국보다는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독도나 교과서 문제로 들어갈 때 이들이 얼마나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인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게 없다.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정서 또한 변화가 없다.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고 대북정책 궤도를 수정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북한의 대남정책에 최근 변화가 있는데 만약 일본에 대해서도 북한이 유사한 노선을 취한다면 민주당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본다.
대미 기축외교에는 큰 틀의 변화가 없을 것 같지만 선거 국면에서의 발언을 종합하면 상당히 대등한 미일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 3원칙'을 강조하며 미군의 핵 탑재 항공모함을 일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일본 내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서도 요구할 건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파병 및 미군 급유 지원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 한국 정치에 주는 의미라면?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번 선거에서도 확인됐듯, 지금은 '변화의 시대'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과 일본의 선거 결과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민의는 변화와 진보에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8년간 지속됐던 부시 전 대통령의 네오콘적 발상이 종식됐다. 일본은 반세기 동안 지배했던 보수 지향 정치지형이 뒤집힌 것이다.
우리와 연관시켰을 때 김대중 정부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출연한 정치시스템이 역으로 일본에 영향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것이 구조적으로 보수화돼가고 있는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이 출연하는 시대가 돌연한 것이다. 일본은 그게 되지 않아 문제였는데 드디어 그런 시스템이 변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 어떤 의미가 있는 선거였나?
일본의 전후 정치사에서 흔히 말하는 자민당 '55년 체제'가 최종 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다.
사실 자민당 독주체제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무너졌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등장하면서 그의 인기로 자민당은 좀 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고이즈미 체제하에서 자민당이 연명했다기보다는 고이즈미로 인해 결국 자민당이 깨진 셈이다. 왜냐하면 고이즈미가 선보인 정책들은 본래 자민당이 고수했던 스타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선거 결과는 1990년대에 깨졌어야 할 자민당 체제를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일본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보인 표심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민주당이 좋아서 찍었다기보다는 자민당에 실망한 마음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면 이번 정권교체가 일본 유권자에게 엄청난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두 당의 이념적 차별성이 크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자민당 지지자들도 민주당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선거에서 보인 전체적인 흐름이다.
민주당의 집권은 대내적으로 자민당의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내세웠던 생활정치 구호는 고이즈미 체제에서 가속화됐던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이 빈부격차 문제를 만든 것에 대한 반발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그동안 축적되어왔던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바꿔보자는 마음에서 민주당으로 표가 쏠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자민당의 정경유착 문제 등이 많았음에도 지지층의 표가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국내 정치와 달리 민주당의 외교·안보 노선이 자민당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이 안보 문제에서 불안감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선뜻 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렇다면 대외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따라서 한반도를 포함인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 쟁점을 외교·안보에 두지 않으려고 했다. 반대로 자민당은 이를 끌어들이려 애썼다. 외교·안보 이야기가 나오면 일본 헌법 개정, 미일동맹 체제,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에서 어느 쪽의 입장을 취해도 유권자에게 인기를 끌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 내부를 봐도 구성원이 다양하기 때문에 외교·안보 측에서 쟁점이 형성되면 당내 분화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도 그것이 큰 약점이란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으려 했다. 집권 후에도 그런 문제가 터져 나오면 당론을 정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에게는 당장 자위대 급유활동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현재 미군 전투기에 기름을 제공하는 자위대의 활동은 헌법에 위배되지만 아베와 아소 정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한시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다. 특별법의 시효가 만료되는 내년 1월에 민주당도 다시 특별법을 만들 것인지 자위대를 철수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급유 지원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외교·안보에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 둘러싸고 민주당 내 갈등이 터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급유 지원을 계속 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현재 민주당에서 당선될 후보들의 대부분이 오자와 이치로 측 사람들이고, 이들이 현재 미일동맹을 강조하고 헌법 개정에 우호적인 것을 봤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의 정권교체가 동북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100%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힘들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기존의 대북 강경모드에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맞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6자회담으로 풀겠다는 식의 접근은 반발이 심해서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미국과 물밑 교섭을 통해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이 일종의 '떡고물'을 주게 되면 이를 기회로 전격적인 유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가능하다.
한일관계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 정부가 강경하게 나가서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유화적으로 나갔는데 자민당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문제 등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면서 악화된 점이 크다. 민주당이 들어서면 적어도 정부 차원에서 그런 우를 범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흔히 국내 정치가 외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변화는 항상 비대칭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쪽에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다른 쪽엔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현상이 전후 역사에서 반복되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간단히 말해서 서로 맞지 않는 것이고 서로를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 최근 일본에 다녀왔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지난 일주일간 일본에서 체류하며 경험한 것은 일본이 정치적인 모색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새로운 발상과 변화가 30~40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사회운동이 다 사라지고 별 볼일 없게 되었던 상황에서 다시 백가쟁명의 시대로 접어든 듯도 하다.
이는 기존의 좌와 우라는 이념적 틀 안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이념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념적 정치구도와 다른 차원에서 젊은 세대에 잠복되어 있던 정치적 모색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그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는 점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정치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아직도 '80년 체제'가 만들어낸 문화론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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