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청와대 홍상표 홍보수석은 20일 박 원내대표의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관련 발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뿐 아니라 면담 상대인 시진핑 부주석에 대한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 될 수 있다"면서 "국내 정치 목적으로 외교를 악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박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면담을 회고하면서 "시 부주석이 '왜 현 한국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남북 교류협력을 하지 않으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명박 정부는 교과서 문제도 있는데 왜 일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주중대사도 배석했고 면담요록 갖고 있어"
홍 수석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 아니다"면서 "박 원내대표는 이같은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성공을 위해 여야를 떠나 초당적 행동을 해도 부족할 이 시점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대통령을 흠집내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면서 "평화와 외교의 훼방꾼은 바로 자신이 아닌지를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의) 면담요록을 갖고 있다"고 전한 홍 수석은 면담장에 신정승 당시 주중대사와 주중대사관 공사참사관도 배석했음을 상기시켰다.
홍 수석은 "면담요록을 상세히 검토해봤는데 그런 발언 내용이 없었고 참석자들한테 개별적 확인을 통해서, 당시 그런 류의 발언이 있었는지 일일이 확인했지만 그렇게 추론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교동 측 최경환 당시 비서관이 당시 면담록을 자세히 기록해 언론에 릴리스했던 것도 있는데, 박 원내대표의 발언 같은 것은 없고, 우리가 갖고 있는 면담요록과도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일단 박 원내대표의 대응을 기다리겠다"고 말한 홍 수석은 '법적 조치까지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하겠지만 추후에 여러 대응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확전'을 예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해 특별한 발언이나 지시가 있었나? 격노했나?'는 질문에 홍 수석은 "우리가 보고를 했다.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의 말을 일일이 전달할 순 없다"고만 답했다.
확전일로 걷고 있는 靑-朴 갈등
청와대와 박 원내대표의 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달 15일 총리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제1야당 대표를 맡고 계시는 분의 거짓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공당의 대표라는 분이 무책임하게 발언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로 유감스럽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여권에서 총리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은 인사청문회에서 비공개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와대의 반응이 더 격해졌다. 이날 홍상표 홍보수석은 '박지원 원내대표와 갈등이 처음이 아니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 사이를 떠나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대통령을 공격하고 이런 게 과연 합당한 것인지, 그런 본질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홍 수석은 "박지원 대표가 청와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차례 책임 없게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는데, 이걸 연결시켜 보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해 천성관 전 검찰총장 내정자의 낙마에서부터 올해 김태호, 신재민, 이재훈 후보자 낙마까지 박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를 진두지휘하다시피했다. 그 과정에서 "여권에서도 제보가 들어온다"고 말해 '적진'을 교란시키는 등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갈등 양상 초기에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응해봤자 덩치만 키워준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바뀐지 오래다.
이로 인해 여권에서는 '박지원 경계령'과 박 원내대표 정보루트 차단설이 떨어졌고 최근에는 박 원내대표 주변 사정설까지 들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완전 사실무근이다. 우리 대사까지 배석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진실게임 양상으로 펼쳐지는 이번 발언 진위공방의 향배에 따라 어느 한 쪽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 "박지원 발언 사실이다"
청와대의 '이적행위'라는 공격에 대해 민주당은 "누구를 이롭게 했다는 말이냐"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전현희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박지원 원내대표 발언은 사실에 부합함을 밝혀드린다"며 "동북아의 외교균형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박 원내대표가 직접 들은 내용을 이 대통령이 평화적 남북관계에 힘써주시기 바라는 충정에서 밝혔다"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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