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젠더'란 말 오늘 처음 들어…트랜스젠더는 들어봤는데"
홍 대표는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불러줘서 고맙다"며 "오늘 행사를 통해 여성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고 우리 당이 지켜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짧게 인사말을 했다. 이어 김은경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해외에서의 여성 정치 진출 사례에 대해, 강월구 전 인권진흥원장이 젠더폭력, 저출산, 가족 문제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할 때까지만 해도 별 탈 없는 평범한 행사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강월구 전 원장의 발표가 끝난 뒤, 자유토론이 시작되면서 홍 대표는 "젠더 폭력이라고 하는 게 선뜻 이해가 안 가는데, 예를 들어 말해 달라"고 하고, 이에 강 전 원장이 보충 설명을 하자 "처음 듣는 말"이라며 "젠더가 뭔가"라고 주변에 물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인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옆에서 "성. 여성·남성을 합쳐 젠더라고 한다"라고 홍 대표에게 알려줬다.
그러자 패널로 참석한 채경옥 한국여기자협회 회장은 "홍 대표가 '젠더가 뭐냐'고 묻고 류석춘 위원장이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며 '아직 한국당은 멀었구나. 이 간담회를 공개로 하는 게 맞나' 걱정되는 지점에 왔다"며 "젠더란 말을 모른다는 게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반증일 수 있다. 신문, 잡지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여당 대표 하고 제1야당 대표 하시는 분이 그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채 회장은 내친김에 "한국당은 일반 국민들에게 '영남', '마초', '꼴통' 이미지가 강하다"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직격탄을 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억울하다는 듯 "아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라며 항변하다가, 채 회장의 발언이 끝나고 난 후 "젠더는 사회적 의미의 성이고 섹스는 생물학적인 의미다….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젠더란 말을 따로 단어로는 오늘 처음 찾아봤다. 그래서 젠더 폭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본 것이다"라고 말했다.
채 회장이나 강 전 원장 등 패널들이 아연한 반응을 보이자, 한국당 관계자들이 긴급히 수습에 나섰다. 행사 사회를 맡은 박성희 혁신위원은 "직접 찾아보셨으니 이제 잊지 않으실 것"이라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 것은 홍 대표가 솔직해서 그런 것이고, 이런 얘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한국당이 변화하려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여삐 봐 줬으면 한다"고 했다.
강효상 대변인도 "상당히 억울하다. 젠더 부분은 사실 어려운 문제"라며 "저는 좀 안다. '집사람'이 대학에서 이것을 연구해서 틈틈이 (봐서) 아는데, 저도 집사람이 연구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학을 연구하는 부인을 '집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눈에 띈다. 강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게 한국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남성사회 전반의 문제다. 저희는 여성 당수(박근혜 전 대통령)를 모신 적도 있고, 청와대 모 행정관은 여성 비하 발언을 하고도 멀쩡히 근무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여성주의적인 의제에서 한국당 등 보수 세력이 궁지에 몰릴 때, 탁현민 행정관이 얼마나 좋은 방패막이가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홍준표 "여성·청년 50% 공천" → "기초의원에서" → "50%는 '목표'"
'젠더가 뭔가'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 후, 홍 대표는 준비해 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여성·청년을 합쳐서 지방선거 공천을 절반 정도 목표로, 특히 될 만한 지역에 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봐도, 여성·청년을 합쳐 50%를 공천한다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다.
다만 홍 대표의 발언은 뒤이은 발언을 통해 의미가 한정됐다. 그는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장, 광역단체장은 당선 위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정치를 하려고 하면 지역에서 활동을 했어야 한다. 그래서 득표력이 있어야 한다"며 "선거는 이기기 위해서 한다. 이길 역량이 되는, 그런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공천을 준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내년에 기초·광역 의원은 여성·청년을 절반 정도 목표로 하려 한다"며 "특히 될 수 있는 지역은 의무 공천을 하라(고 할 것)"고 밝혔다. 즉 '여성·청년 50%'는 지자체장을 제외한 지방의원 공천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의원만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여성·청년 50% 공천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참석자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송영숙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은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여성계가 기대했지만 실제로 여성 인재 등용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만약 (여성이) 정치를 하려 한다면 한국당은 안 간다. 민주당에 가는 게 빠르다고 생각한다"고 한국당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면서도 "50% 공천 약속은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홍 대표는 "목표. 목표로…"라고 다시 의미를 한정했다. 송 부회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 자리의 의미가…. 지켜 달라"고 재차 촉구하자 홍 대표는 "공천을 해 보면 그 수치를 맞출 수 없다. 50%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실 20%가 안 되고 14~15% 정도다. 50%가 목표라는 것도 파격적인 것이다. 50%를 목표로 추진한다, 그것은 약속한다"고 말했다.
洪 "나는 엄처 시하" vs. "그게 전형적 꼰대 발언"
홍 대표는 이후에도 참석자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한 참석자가 "한국당은 전반적으로 남성 우월, 가부장적 이미지"라고 하자 홍 대표는 "그건 저 때문에 그렇겠죠"라고 농담으로 받더니 "그 전부터 그랬다"는 재지적에도 "제가 대표가 두 번째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홍 대표는 2011년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다.) 발언자가 "20대 여성들은 꼰대 당이라고 한다"고 토론을 이어가려 했지만 홍 대표는 또 "박근혜 당수 때도 그런 얘기를 했나? 아니다"라며 "그 시작은 이회창일 것이다. 이회창 총재 보시면 꼰대거든요. 그게 남아 있어 그렇지 제가 어디를 봐서 꼰대 같느냐"고 주장했다. 발언자는 "살짝 그런 느낌이 있다"고 맞받았다.
홍 대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저 때문에, 제가 당 대표가 되고 난 뒤에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것인데, 제가 '집사람'하고 산 지가 37년이다. 37년 동안 나는 엄처 시하에 살고 있다. 집에 들어가면 집사람 말 거역해본 일이 없다. '11시 전에 들어와라.' 들어간다. '여자 나오는 술집 가지 마라.' 내가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시킨 대로 37년 사는데, 경제권도 내가 안 갖고 있다. 결혼한 이래 월급 전액이 집사람 통장으로 들어간다. 내가 집에 앉아서 잔소리도 안 한다"고 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그게 전형적인 꼰대 발언"이라고 응수했다.
홍 대표는 또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말이 투박하다. (그래서) 경상도에서는 문제가 안 되는 발언이 전국, 서울 기준으로 하면 아주 이상한 발언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당이 '마초', '꼰대' 이미지라는 전문가 지적에 대해 "저희 당, 우파 정당에서 가장 못 하는 게 '쇼잉(showing)'"이라며 "우리는 '생(生)쇼'를 못 한다. 얼마 전에 사드 반대하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성주에 가 가지고 가발을 쓰고 생 쇼를 하더라. 의원을 계속하려고 저 짓을 해야 하나 느꼈다"라고 맞받기도 했다.
위태위태하던 토론회는 결국 주제 발표자인 강월구 전 원장의 마무리 발언 순서에서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강 전 원장은 "젠더 개념이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야당 대표는 좀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며 "결국 젠더 불평등은 가부장제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홍 대표가 대선 때 '설거지를 내가 어떻게 하나'라고 말한 것을 (사람들이) '설거지 천부론'이라고 한다. 전업주부라도 전일제 노동이 돼서 노동 착취가 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조목조목 나무라듯 목소리를 높였다.
강 전 원장은 이어 홍 대표가 국회 입법보조원(인턴) 갑질 문제와 관련해 "의원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토론 중 말했던 데 대해서도 "그런 말 하나하나가 인격이고 그 사람 생각이 드러난다. 그게 가부장적 생각이다. 의원 한 분 한 분이 헌법기관이다. 평등하게 소통해야지 '내가 맞으니 따라와'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또 홍 대표의 '쇼잉', '생쇼' 발언에 대해서는 아예 격분한 어조로 "생쇼요? 여기서 말하는건 '생쇼'를 하라는 게 아니라 왜 여성들이 한국당을 안 찍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지 누가 쇼를 하라고 했나!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존중해 달라. 배려도 필요 없다.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강 전 원장의 마무리 발언 후, 김은경 연구원의 마무리 발언이 있었고, 이후 채경옥 회장이 순서에 없던 발언을 자청해 했다. 이 시간 동안 홍 대표는 내내 자신의 바로 왼쪽에 앉은 강 전 원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홍 대표는 채 회장의 발언이 끝나자 "한국당 성토장도 아니고, 감정이 실려서 그렇게 토론을 하니까 제가 더 말하기가 그렇다. 더 이상 안 하겠다. 오늘 많이 들었다. 저희들 여성 정책 수립하는데 많이 참고하도록 하겠다"라고 끝인사를 하고는 바로 토론회장을 빠져나갔다. 강 전 원장이 홍 대표를 따라나가 "인사는 하고 가셔야죠"라고 말하고, 떠나는 홍 대표의 등 뒤에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홍 대표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류석춘 "요즘 세상에 무슨 젠더폭력…지나간 일", 참석자들 경악
토크콘서트는 여러 의미로 홍 대표의 독무대가 됐지만, 류석춘 혁신위원장의 발언도 현장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인 류 위원장은 이날 강 전 원장이 젠더 폭력 관련 발제를 듣고 난 후 "강 전 원장이 말한 문제 지적은, 과거 우리 사회에 그런 문제가 심했던 것은 사실인데 요즘 세상에 무슨 남자가 우월적 물리력으로 여자를 강제로 어떻게 한다거나 알량한 권력으로 지배한다든가(하는 일이 있겠나), 이미 지나간 일이라 생각한다"며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참석자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동의 안 할 것"이라는 반응이 즉석에서 되쏘아져 왔다. 류 위원장은 그러나 "오히려 성 평등을 넘어 여성 우월적 지위까지 가지 않았나 하는 사회가 됐기 때문에 강 전 원장 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토론 사회를 맡은 박성희 혁신위원도 "위원장님이 아슬아슬하시다"며 진땀을 뺐다. 김은경 연구원은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류 위원장이 '우리나라에 젠더 폭력이 있느냐' 해서 깜짝 놀랐다"며 "오늘 화두가 젠더인 것 같은데, 정당 차원에서 젠더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