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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서 마흔으로, 진보 길찾기는 계속 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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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른에서 마흔으로, 진보 길찾기는 계속 된다. 쭈욱~"

[좌담] 진보신당 부대표로 출마한 마흔 동갑내기 김정진-박용진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진보신당은 지지율 1.7%를 기록했다. 창당 이후 형편이 좋은 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은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른바 '5+4' 테이블에 한발을 걸쳐놓았었지만 6월 지방선거는 당 안팎에 적잖은 상처를 줬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의 완주도 깊은 골을 남겼다. 지방선거로부터 4개월이 지났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고 당직자는 물론 지지자들의 피로감도 역력해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노회찬 대표의 임기를 단축해 3기 지도부를 선출하고 있지만 이 역시 뜨겁진 못하다. 당대표 후보에는 조승수 의원이 단독출마했고 네 명을 뽑는 부대표 후보에도 네 사람 밖에 출마하지 않았다.

안으론 당을 다시 추스르고, 밖으론 반MB연합 혹은 진보대연합 등 연합의 과제에 응전해야 하는 차기 지도부의 과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진보신당 지도부 선출에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박용진 서울 지방선거 후보사업단장과 김정진 당대회 부의장 1971년생 동갑내기 둘이 나란히 진보신당 부대표 후보로 나선 것. 1969년 생인 민노당 이정희 대표에 이어 진보신당에 1971년생들이 부대표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한국 진보정당의 한 분절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이로 갓 마흔인 두 사람의 정치 구력은 만만치 않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박 후보는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를 수행했고 민주노동당 창당 기획부장을 거쳐 두 차례 총선 출마에서 모두 두 자리 수의 득표율를 기록했다. 그리고 대변인을 오래 지내 일반에도 잘 알려진 편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변호사인 김 후보는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정책부장, 법제실장, 법률지원단장을 지냈고 진보신당에서 정책연구소 감사, 당대회 부의장을 지냈다. 일반 인지도는 박 후보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지만 진보정당 사정에 눈 밝은 사람들에게 김 후보는 부유세 공약의 입안자로 알려져 있다. 2002년 권영길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던 부유세는 최근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나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은 민노당 창당에서부터 이어지는 진보정당 활동의 허리에 비유될 수 있다. 12일 오후 <프레시안>사무실에서 마주 않은 두 사람은 어떤 의제에 대해서도 막힘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하면서 차이점을 짚어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적극적 진보통합론자로 알려진 박 후보와 독자역량강화파로 비쳐진 김 후보는 향후 진보신당 내 상이한 두 흐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다.


"피로도가 쌓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역량이 있다"

▲ 김정진 진보신당 부대표 후보ⓒ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현재 당원투표가 진행 중이다. 사실상 내주 월요일(18일)부터 두 사람 다 부대표 임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선거 기간의 소회를 먼저 간단히 밝혀 달라.

김정진 : 진보신당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 2주간 전국을 순회해보니 지역에서도 어려움이 많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역 당원과 간부들은 여전히 중심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에서 몸은 힘들었으나 희망을 발견했다.

박용진 :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했다.

첫째, 여전히 우리에게 지적되는 문제가 있다. 광장으로 나가야하고 밖으로 의지를 표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번 선거가 내부로의 속삭임이 됐다는 점이다.

밖에는 관심도 못 뒀다. 정치 기획이 당 차원에서도 없었다. 후보자들도 밖의 지지층들, 지켜보는 국민을 향하기보다는 내부 분란을 정리하고 다독이는 과정으로만 생각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또 하나 확인한 것은 진보신당 활동가의 자긍심도 대단하다는 점이다. 지난 1987년 백기완 민중후보 때 부터 민중후보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어온 분들의 눈빛이나 태도가 다르다. "내가 여기까지 같이해 온 사람이다, 무의미한 존재였던 진보정치 세력을 일정한 궤도 위에 올려놨다"는 역사적 자긍심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국민을 향해, 지지층을 향해 적극적 정치의 날개를 펼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프레시안 : 지금이 진보정당 운동의 분절점이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 두 후보들이 대표적이지만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서른이던 사람은 마흔이 됐다. 마흔이던 사람들은 쉰이 됐다. 성장한 측면도 있겠지만 피로도가 많이 쌓인 것 같다. 분당 이전에는 여러 의미에서 "이제 고지가 보인다"는 느낌이 당직자와 지지자들 사이에 엿보였는데 분당 이후 '리셋'이 된 것 아닌가? 10년 간 축적된 역량과 피로도 양면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정진 : 피로도가 상당히 있다. 1987년부터 출발한 진보정당의 흐름으로 보면 23년이 지난 것이다. 개인적인 성과를 보기 위해서 운동했던 건 아니지만 조직의 성장에 수고를 들였던 분과 혜택을 받은 분들의 차이가 상당히 난다. 더더군다나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들을 한다. 솔직히 지역에서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간부들도 공직 진출이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진보정당 운동에 주력했던 사람들의 정당정치에 대한 경험이나 판단력, 현실성, 능력이 타 정당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진보신당만 해도 정당 활동 경험이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다른 거대정당들은 항상 초선 의원이 많다. 오랫동안 정당 활동 경험이 축적된 사람보다는 영입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어쨌든 양 측면이 공존한다. 신규세대가 충원돼 분위기 바뀌면 도약의 기회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후보ⓒ프레시안(손문상)
박용진
: 역사적으로 보면 일종의 분절점이라고 했는데 맞는 성찰이다. 민노당의 창당 동력은 사실상 민주노총이었다. 전노협 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출발한 민주노총도 1997년 총파업 이후 계속 내리막이었다.

진보정당 운동도 10년이 됐는데 새로운 동력과 새 전망을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촛불 정국이 우리에게 동력으로 작용했어야 하지만 이를 맞이할 준비와 역량도 없이 촛불 정국에 끌려다녔다. 이는 정당 운동의 피로도와 맞물린다.

지방선거 종료 후 "앞으로 10년 동안 더 해보자"는 식의 말이 비전 제시 쪽 보다는 고집스러운 쪽으로 들리기도 한다. "10년 동안 지지율이 2~3%만 나와도 살아남아서만 가자"는 식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의 발전 전망, 사회 전체적 전망, 새 동력을 못 만들어 낸다. 이 자체가 우리가 맞닥뜨리는 과제이자 한계이다. 새 동력과 새 전망을 못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 운동 전체에서 다음 선거 때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피로감과 불안감이 드는 것 같다.

"진보적 과제가 승인되고 있다"vs"그게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프레시안 : 지금 말한대로 "우리가 언제 잘 나갔느냐, 다시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당 내에서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고난의 행군을 하자'는 식으로도 들리고. 이게 바깥의 여러 움직임에 대한 역편향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당 밖의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겠나?

김정진 : '고난의 행군을 하자'는 주장이 많다기 보단 일부 그런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방선거 이후 서울시장 선거 결과 이후 항의 전화 때문에 중앙당이 3~4일 정도 업무를 못 봤다. 득표율과 무관하게 그런 항의 전화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진보적 가치나 의제는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측면에 놓여 있다. 그래서 우리 내부의 어려움은 과거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사회적으로 진보적 가치가 확장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당선됐음에도 대중들은 복지국가론과 증세 이슈에 대해서 점점 우호적이다. 버티자는 것은 '되지 않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주장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에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밀면 가능하지 않겠냐는 표현의 표출이다. 과거와 같이 전혀 사회적으로 먹히지 않는 주장을 가지고 우리끼리 하자는 측면은 아닌 듯하다.

박용진 : 현상에 대한 인식은 같으나 이해는 좀 다르다. 진보적 가치와 의제가 바깥에 확산되고 승인되는 분위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물으면 복지국가를 추진할 적임자는 박근혜, 유시민, 손학규라고 한다.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는 이름도 없다. 그렇다고 대중을 탓할 수도 없다. 우리가 변화를 주도하지 못 하면 그냥 쓸려간다. 지금 시점이 중요하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자는 주장을 먼저 했더라도 군부독재 이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끌고 갈 정치 세력을 못 만들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이제 지나갔다고 우리 스스로도 얘기한다. 이 구도가 변하려면 진보 대 보수로 가야 한다. 그 한 축이 복지다. 새 틀에 맞춘 진보진영의 자기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원조' 타령만 한다. 부유세, 복지 의제를 우리가 먼저 얘기했다는 논리에 갇히면 국민이 보기에 고리타분하다. 우리가 먼저 주장했다고 그 의제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조 진보라고 얘기하지 말고 이 변화에 맞는 태도변화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방선거 이후 당의 전반적 분위기가 내부로 침잠해 좁은 길을 택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같아 우려된다.

▲ 김 후보는 "지금이야말로 더 자기 확신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프레시안(손문상)

김정진 : 복지 의제 확대는 두 가지가 맞물려 가능했다. 첫째 사회적 필요성이 커졌다. 경제 규모가 커졌고 언론을 통해 복지 지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는 것이 알려졌다. 삶의 문제가 복지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객관적 필요성이 나왔다. 둘째는 그래도 진보진영이 정책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복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기에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이후 무상급식이 바로 시행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 10여 년간 학교 급식 관련 활동과 운동이 있다.

국민은 자신들의 의제를 힘 있는 사람이 실현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거대 정당 정치인도 그런 공약을 한다는 점이 진보진영의 딜레마다. 하지만 거대 정당 정치인이 제대로 공약을 실현하지 못 할 때가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활동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치 활동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진보신당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끼리 가자' 차원보다 더 위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긴 한데 사회적 동의를 받은 것인지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민노당 때부터 보면 의정활동에서 복지 이슈의 비중이 막상 얼마 안 됐다. 거대 정당들의 일반 정치 의제에 더 많은 역량을 쏟았다. 그 이면에는 진보진영이 만들어내고 확산시킨 의제에 대해 불안해한 측면이 작용했다. 확신의 부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우리가 외부에 닫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에 대해 우리가 만들었다는 확신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프레시안 : 대중들은 "너희 고생했다. 그런데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해주겠지만 상으로 표를 주진 않겠다"는 식이다. 대신 민주당을 향해선 욕을 하고 표를 준다.

김정진 :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는 특수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중간 범위 이상의 사회경제적 이익 측면에 호소해야 한다. 민노당이 성장한 비결은 1인 2표(정당투표제) 때문만은 아니다. 원내정당 시절에 민노당이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 부분은 대중의 구체적 이해관계와 걸렸으면서도, 큰 제도는 아니지만 사소한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 이상이 될 때까지 이 노선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아니면 다른 정당보다 우월함이나 투표력을 가질 수 없다. 복지국가 노선에 대한 합의와 확신만 회복하면 그런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할 수 있다.

박용진 : 학교 급식 때 지역적인 이슈를 펼쳤다. 어린이집 급식 재활용과 관련된 소위 '꿀꿀이죽'을 강북 지역에서 폭로했을 때 반향이 컸었다. 큰 정당이 놓치던 생활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당이 나섰다. 학교 급식 문제를 이슈화한 게 (민노당의) 원내진출 전인데도 동네 엄마들이 "같이 하자,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런 활동은 지역이든 중앙이든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런데 복지국가 노선 전반을 우리가 주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이 우리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죽기 살기로 진보의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이게 단순히 쇼나 거짓말이라고 생각 안 한다. 복지 진보가 시대적 주류를 형성한다. 대선에도 최고 화두일 텐데, 왜 이것의 원조인 진보진영은 아무 스포트라이트도 못 받고 주도 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우리 스스로의 확신이 없어서 일까? 근본에서 우리를 되짚어봐야 한다. 안 그러면 쉽게 쓸려갈 것이다.

"고립주의가 존재하는가?"

김정진 : 박 후보는 진보진영 안에 고립주의가 있다고 얘기하려는 것 같다. 부유세의 경우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막상 2004년 이후 진보정당 내부에서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대선 총선 때는 중요한 의제였지만, 원내 진출 위해서는 아니었다. 만약 부유세 얘기를 계속했으면 진보정당에 저작권이 생겼으리라고 본다.

확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로는 우선 시차 적응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진보 정당은 (특정 이슈에 대해) 국민이 처음에 시큰둥해 하는 시간을 못 참는다. 둘째로 진보 정당이 기존 정치세력이 만든 정치 의제에 함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의제를 따라가면 진보 정당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열린우리당 시절 4대 개혁법(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사례가 그렇다. 제 문제의식은 단순히 확신을 갖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장했던 것을 끝까지 밀고 가보자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런 경우에 성공사례가 많다.

▲ "역사성이 있는 '고립주의'를 떨칠 때"라고 강조한 박 후보ⓒ프레시안

박용진 : 자기가 만들어낸 의제 화두에 대해 끝까지 책임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회 문법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저쪽 의제, 즉 보수 정당들의 논쟁에 숟가락 얻는 것은 빨리했으나 장기적으로 우리가 끌고 갈 의제는 제대로 못 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고립주의가 있다. 이른바 심상정 사태가 벌어지자 '완주만이 원칙인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분노하는 사람이 있었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각급 선거에서 목표가 당선인 경우는 극히 최근, 일부의 경우다. 근 20년 가까이 우리에게 선거는 독자출마와 완주가 하나의 문법이었다. 하지만 이젠 이를 넘어서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실질적으로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 민중이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는 성취됐다. 우리는 정치적 시민권 자체는 획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진보신당 지지율이 1.7%에 불과하지만 다른 정당들이 진보신당을 빼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진보정당들 빼놓고 4대강 반대와 반MB 연대를 못 한다. 이미 국민의 10% 이상이 이 정체세력을 지지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당의 일부는 여전히 20년 전 정치활동 노선을 고수하려 한다. 이는 독자주의, 완주주의, 고립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문제를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지방선거 국면의 5+4회의에 참여하면서도 명확히 해놓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도 정리 못 하고 봉합하면서 우리가 선거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도 협소해진다.

"삼자정립, 의석 수 이상의 의미가 되어야"

프레시안 :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2012년 대선과 총선은 모든 정치세력의 눈앞에 있는 목표다. 조승수 후보 공약을 보니 선거 이전에 보수-자유주의개혁-진보 3자 정립을 목표로 내걸었는데, 과연 지금 현재에서도 적실성 있고 실현 가능한 공약인가? 국민들이 바랄까?

김정진 : 한국의 여러 정치사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 같은 선거제에서는 양당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선거제도가 당장 바뀌지 않으리라는 예상 속에서 제3당이 선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자민련이나 선진당 같은 지역 기반 정당 외에 제3당이 오래 존속한 적이 없다. 이 조건에서 3자 정립은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 정당이 의석수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3자 정립은 가치와 노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진보신당이 정치적 시민권은 획득했지만, 국민들이 볼 때 민주당과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모호하다. 국민들 다수는 이명박 정부의 반대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자 정립은 다른 세력 집단과 다른 기능을 하는 정치세력임을 호소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시민권만 얻은 것이지 아직 일급 시민은 못 됐다.

2002년 권영길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좋은 얘기를 하고 표를 얻어 사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얻은 측면이 있다. 지금 3자 정립은 그런 결과와 무관하게 가치와 노선 중심으로 정당을 정립해 선거에서 세력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반향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선거에서 구체적 성과, 즉 의석수 확보에서는 어려운 점이 있다.

박용진 : 삼국지의 위,촉, 오 세 나라 중에 촉나라는 땅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독자적인 나라로서 정치적 의미는 컸다. 자민련의 경우 남들이 보기엔 하나라당과 별 다를바 없지만 자신들은 정치적 존재 이유를 내각제로 꼽았었다. 우리는 민주당 왼쪽에 존재한다. 우리를 대표할 만한 정책과 대의명분에서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틀을 만들어낸 이후로 유명한 인물은 만들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인물은 만들었을지언정 무엇으로 남으려는지 대의명분은 없다.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제 테이블에 공식적인 초청 대상이다. 그 테이블에서 할 얘기가 무엇인지 정리해 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두 가지는 한미 FTA와 비정규직 문제 였다. 진보정당이 선거제도에서 정당별 비례대표제를 전면 도입하고 소선거구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큰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자민련 하면 내각제를 얘기하듯이, 우리가 국민적 설득력을 얻는 의제를 정리해서 제시한다면 3자 정립에서 막상 의석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3대 세습, 통합의 걸림돌 될까?

프레시안 : 3자 정립이란 말은, 진보 세력의 통합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민노당, 사회당, 지식인 그룹, 사회운동단체 등을 다시 내용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하는데, 민노당을 '원 오브 뎀'으로 치부하는 것은 좀 비겁한거 아닌가?. 민노당은 다른 그룹과 정치적 무게감이 다르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김정진 : 민노당에 대해서는 당내에 해결되지 않는 공통적인 공감대가 있다.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들 한다. 민노당의 위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을 위해 진보신당이 민노당과 단지 회귀적으로 재통합을 하지 않기 위해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이 힘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아닌 양 묘사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민노당과 경쟁하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구조다. 그래도 민노당과 관계 문제에는 미완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있다. 3대 세습이 그렇다. 단순히 국가보안법으로 민주노동당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북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국민이 북에 대해 정당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고 하면 곤란하다. 민노당에 모욕이나 창피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북에 대한 논평은 상식적인 입장 표명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더 큰 단계에서 정치적으로 공동 행동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민노당 입장에서도 진보신당에 대해 짚을 게 있을 것이다. 짚는다는 의미가 '이런 저런 문제가 유감이지만 앞으로 잘해보자'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같이 못 한다'는 뜻일까?

김정진 : '앞으로 문제 될 일은 하지 말자'는 다짐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있으니 가능한 것이다. 다만 말꼬리 잡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모욕주면 안 될 것이다.

박용진 : 걸림돌이 될 줄 알면서 그 부분에 대해 계속 얘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현명한지 모르겠다. 민노당 일각에서 북에 대해서 일정한 태도가 있는지 다 안다. 이것을 돌려 돌려 이정희 대표가 "우리 척도로 볼 때 불만이 있지만, 북에 대해 비판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문제가 커질수록 걸림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걸림돌로 키워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다.

대한민국의 국민이거나 전 세계적으로 합리와 상식이라는 두 단어를 아는 사람이면 3대 세습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남쪽 진보진영이 한국사회 변화에 주도권을 쥐고, 복지국가의 핵심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데 이 문제가 큰 걸림돌인지는 의문이다. 이견을 확인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원히 같이 못할 세력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끌어가면 안 된다.

민노당이 진보신당을 비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우리는 '노-심 사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개인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해왔다. 만약 민노당에서 우리보고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문제를 지양해 나가고 제도적인 장치를 건설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분위기는 대화보다는 반목을 위한 화법으로 가고 있다.

민노당이 진보통합 과정에서 예컨대 사회당과 똑같은 발언권을 갖는다면 당연히 불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만을 내부적으로 끝내지 않으면 결국 민노당이 손해를 볼 것이다. 다른 실체를 가진 사람끼리 만날 때는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DJ는 호남 고립주의를 피하기 위해 꼬마민주당과 합당 때 사실상 흡수 통합인데도 상대편에게 당권의 절반을 줬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서 시작하겠다"vs"쓰나미 몰아칠 때 조개만 주을 순 없어"

프레시안 : '노심 사당'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나마 아무것도 없을 때 노회찬, 심상정이 당의 얼굴 마담 노릇을 하다가 2선으로 물러났다. 조승수 후보가 이제 새 당대표가 되는데, 솔직히 조 후보가 역동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조 후보와 당신들을 포함한 3기 지도부는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정진 : 지방선거 과정에서 큰 충격이 있었다. 이제 내부 조직을 다지면서 애초에 하고자 했던 비정규직이나 민생 의제, 생태를 보호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다짐을 우리 조직 역량에 맞게 하나하나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유세하다가 지하철에서 40~50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모습을 봤다. 유인물을 보니 휴게시설과 샤워시설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가능한데 그분들이 계단과 화장실에서 식사하시더라. 이런 부분은 거시적인 제도 변화 없이도 지역 조직에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이런 활동부터 하나하나 하면서 당 기반을 강화하고 진보적 이념을 강화시킬 것이다. 부대표로 당선되면 여러 가지 의제를 지역과 같이 조직할 계획이다.

2004년에 파리에 간 적 있다. 파리 외곽에 장 조레스(프랑스 사회주의 통합의 지도자) 기념비가 있더라. 뭐라고 쓰여 있나 물어봤더니 "인민의 호민관, 서민의 보호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진보신당의 상이 그래야 한다. 당장에 거시적 구조를 개선하지는 못 하더라도 사람들이 섬세히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서민 등 민생관련 현안에 대해서 그렇다.

박용진: 유세하면서 진보대통합의 중심을 건설하자고 얘기했다. 그러니 "너는 당의 독자적 역량 강화에 관심 없구나"라고들 하더라. 하지만 나도 진보정당 내에서 독자적 지역 활동만큼은 자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3기 지도부, 착하고 모범생처럼 생긴 조승수 대표가 끌고 갈 지도부는 2012년을 향한 지도부다. 격동기의 지도부고 역동성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지도부다. 내가 지금 권투 선수인지 씨름 선수인지 빨리 파악하고 정리해야 한다. 상대를 모래판으로 끌고 갈지 링으로 데리고 갈지 결정해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정리하고, 내 주체적 역량과 주변 상황을 파악해서 2012년 격동기에 역동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천하를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정치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 혹은 역으로 상대가 이것만 실현해주면 우리도 뭐든 양보할 수 있는 것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단지 "우리는 민노당과 다르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진보신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얘기한 적이 없다. 국민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현 단계를 파악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은 무엇인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큰 해일과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바닷가에서 조개만 줍고 있는 듯한 모습도 당 일부에서 보인다. 큰 변화를 예상하고 적어도 이를 주도하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국민에게 명확하게 각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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