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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의 '잔인한 가을', 시련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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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의 '잔인한 가을', 시련은 이제부터

[분석] 종북주의 논란과 닮은 꼴…암초에 걸린 '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신중한 정치인이다. 치밀한 논리와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송곳 질문'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사석이나 인터뷰 자리에서는 분위기가 완연하게 달라진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질문을 두고 한참 동안 뜸을 들이는 습관 아닌 습관을 갖고 있다. 차분한 시선을 허공의 한 점에 고정시킨 채, 두 손으로 턱을 괴기도 한다. 주요 정치 현안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신변잡기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그랬다. 질문을 던진 쪽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는 특유의 단호하고도 빠른 말투로 몇 번이고 되새긴 듯한 답변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에도 몇 번이고 서로의 말이 충돌하는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북한의 '3대 세습 논란' 한 가운데 서 있는 이정희 대표는 자신만의 '타이밍'을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경향신문>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민주노동당을 공개 비난한 것은 지난 달 31일. 이 대표는 일주일 여가 경과한 지난 8일에야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 시간 동안 이정희 대표가 곱씹었을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끝내 그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며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곧 논란은 겉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번져 나갔다. "진보도 북한을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과 "남북관계 파탄도 감수하라는 말이냐"는 반론이 거세게 격돌한다. 해묵은 감정싸움의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스타 정치인으로, 그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40대 당 대표'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정희 대표의 첫 번째 시련이다.

▲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비난전 가세한 진보신당, 눈치보는 민주당

무엇보다 민노당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대목은 '고립'의 가능성이라고 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경과하면서 일궈 놓은 만만치 않은 정치적 성과물에 심각한 타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민노당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있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아우르는 민노당의 통합-연대 전략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 연대론이 본격적으로 부상할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을 둘러싼 논란은 두고두고 갈 길 바쁜 이정희 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2008년 소위 '종북주의 논란' 끝에 갈라선 진보신당과의 통합 논의는 공론화 단계 이전부터 암초를 만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번 '3대 세습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도 양 당은 일단 물밑접촉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양 당의 기층 정서에 자리잡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이질감이 분당 이후 오히려 강화됐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진보신당은 아예 공개적으로 민노당 비판에 가세했다. 조승수 대표는 "북한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인데, 중요한 현상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의 기본적 의무"라며 이정희 대표와 민노당의 선택을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규정했다.

민노당 정성희 최고위원은 "현재로선 이번 논란이 진보대통합 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솔직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분당 당시와 닮은 꼴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논란이 양 당에서 각각 통합론을 앞장서 이끌어 가고 있는 주체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민노당이 또 다른 연대의 축으로 상정하고 있는 민주당도 이정희 대표의 편은 아니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조영택 대변인)" 비판론과, "북한 사람들의 상식에 따른 것(박지원 원내대표)"라는 암묵적 용인론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

별개의 사안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이 최근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빈소에 조문하는 문제를 두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오다 결국 뒤늦게, 그것도 당 대표가 아닌 원내대표단을 보내는 형식을 취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된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민주당이지만 여론의 추이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게다가 이번 논란이 민노당 내 일각의 <경향신문> 절독 선언을 통해 더욱 확산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당초 이 대표를 포함한 민노당 지도부는 이 신문 사설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중앙당 차원에서 구체적인 대응은 하지 않기로 방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이같은 의도된 침묵을 용인하지 않았다. 민노당 울산시당(위원장 김창현)이 이 신문에 대한 절독 통지문을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할 것을 종용하고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하여 북한 추종세력, 종북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이정희 대표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처럼 반론과 재반론이 맞서는 과정 속에서 나왔다. 대중적 인기에 비해 확고하지 못한 당내 기반은 그의 '입장 표명'을 압박하는 또 하나의 변수다. 이 대표와 함께 '침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반드시 그의 편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이 대표의 당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정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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