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시장 안상수)의 개발행정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굵직한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떡 줄 사람’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발표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안상수 시장의 치적 쌓기와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냐는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이다.
창원시는 지난 5월말 마산합포구 가포신항 옆 가포뒷산인 자복산에 도시형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토지 소유주들과 사전은 물론 사후 협의조차 진행된 것이 없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미 지난 1월 발표한 진해구 장복산 벚꽃 케이블카 사업의 경우에도 국방부 소유 토지 사용 여부에 대해 진해해군 측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덥썩 발표<지난 1월 15일 첫 보도>부터 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자복산 생태공원은 2군데에서 추진될 예정이라고 창원시는 발표했다. 가포동 산1-13 일대 7만9,800㎡에는 ‘가포공원’을 조성하고, 산1-15 일대 자역녹지 9만9,500㎡에는 ‘가포2공원’을 오는 2020년과 2021년까지 각각 만든다는 것이다.
가포공원 예정지는 부영주택이 부지의 97%가량을 소유하고 있고 가포2공원 예정지도 국립마산병원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가 부지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토지 소유권자와 매수·이용에 관한 협의가 있어야 공원조성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창원시와 부영주택·보건복지부 사이에는 이와 관련된 그 어떤 협의조차 진행된 적이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2일 열린 창원시의회 정례회 시정질의에서 밝혀졌다. 이옥선(무소속) 시의원이 진행상황을 물었고, 시청 환경녹지국 측은 토지 소유주와 진행된 협의 내용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날 이영호 환경녹지국장은 협의 없이 어떻게 공원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토지 소유자가 매각을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따라서 나름의) 일정대로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확보를 해나가겠다”는 궁색한 답변을 했다.
이 국장의 답변은 부영주택과 보건복지부가 끝내 땅을 팔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협의조차 진행하지 않았고,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밖에 없는 종착점이 예견돼 있는데도 무리하게 발표부터 하고 추이를 보자는 억지행정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김칫국을 제대로 마신 격이다.
■“공원조성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부영주택과 보건복지부 측은 토지 매매와 이용 등에 관해 창원시로부터 아무런 협의 요구가 없었다고 밝혔다.
부영주택 홍보실은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원조성 발표 전과 후에도 협의가 진행된 적은 없다”며 “매도 용의나 창원시의 일방적 발표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할 게 없다”고 밝혔다. 창원시와의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보건복지부 국립마산병원 국유재산 관리 담당자도 “해당 부지의 가포2공원 조성 계획과 관련해 토지 매매에 관한 어떠한 공식 협의 절차도 진행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창원시가 조성계획을 먼저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실제 진행사항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여서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건축업계에서는 창원시의 개발행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 건축설계사무소 소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토지 소유주와의 사전 협의조차 없이 개발계획만 덜컥 발표했다가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정절차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또 “토지 강제수용은 주로 국가 차원의 개발사업 분야에 해당하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창원시가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사업 불투명을 떠나 추진 자체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지지부진한 장복산 벚꽃 케이블카 사업
자복산 생태공원 조성사업은 진해 장복산 벚꽃 케이블카 사업과 닮은 꼴이다.
창원시는 케이블카 조성 사업을 발표한 뒤 일부 부지 이용과 고도제한 문제 등에 대해 진해해군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또 지난 3월 15일 현장설명회에 참가한 16개 민간투자 희망업체들마저 사업성이 없다며 창원시가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만큼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케이블카 사업은 지난 6월 14일 법문사, (주)알에이치코리아, (주)제암, 스위스 BMF사와 설치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물꼬를 트는 듯했다.
하지만, 양해각서 체결 후 3개월가량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 사항이 없는 상황이다.
담당부서인 창원시 공원개발과 측은 지난 15일 “아직까지 참여 업체들로부터 사업계획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라며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또 해군과의 부지 사용 문제 등에 관한 협의에 대해서도 “사업계획서가 제출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진척된 사항은 없다”고 덧붙였다.
진해해군 측도 18일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실도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았고, 아직까지 협의 요청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안상수 시장의 ‘엊박자 행정’
이런 가운데, 안상수 시장이 간부회의를 통해 대형사업 인·허가와 민자사업 유치 때 신중한 업무처리를 지시해 ‘엊박자 행정’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안 시장은 18일 간부회의에서 “도시의 성장은 1차적으로 공무원이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결정들이 도시를 도약하게 할 수도 있고 퇴보시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특히 대규모 도시계획과 건축 인·허가, 민자사업 유치, 재정사업은 미래도시의 틀을 결정짓는 만큼 보다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취임 이후 현재까지 219회의 정책토론회를 가졌는데, 주요 현안 사업을 소통과 토론으로 풀어가는 협업문화를 정착시켰다”고 자평하고 “각종 사업 추진 시에는 그 행위가 기속행위이든 재량행위이든 시의 미래 발전과 시민의 입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히 처리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어 “용동근린공업사업, 북면 동전지구 도시개발, 성산구 송원타운 등 재정구조가 취약한 업체가 낙찰돼 공사가 중단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런 경우처럼 사업지연이나 피해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다각도로 강구할 것”도 지시했다.
하지만 안 시장의 신중한 업무추진, 소통·토론을 통한 협업문화, 공무원의 책임감 강조에도 불구하고 행정절차상 납득하기 힘든 각종 개발계획 추진이 잇따라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은 시민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창원시의 행정수장으로서 스스로 강조한 것처럼 각종 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타당성과 절차 등에 관해 면밀히 따져보고 검토해야 할 책임이 1차적으로 안 시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생명은 투명성과 함께 절차상 난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며 창원시 개발행정의 문제점에 대해 일침을 놓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안 시장과 창원시가 새겨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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