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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라는 검증인을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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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라는 검증인을 의식해야 한다

[기고] 어떤 국가발전 모델인가?

진보,개혁 진영 안에서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진보적 자유주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진보, 개혁 진영 내에서 정권탈환의 주요한 수단으로 국가발전모델을 생각하고 이의 마련을 위해 애쓰는 일은 크게 다행한 일이다. 물론 이런 담론들이 완성된 상태는 아니다. 논의가 진행 중인 국가발전모델들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모순들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한국사회가 지닌 특수성에 천착해야

먼저 한국사회가 지닌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사회의 사익추구집단(재벌, 관료, 조중동, 검찰 등)과 진보,개혁 진영이 가진 물적, 상징적 자원의 비대칭성이 심각함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사익추구집단과 진보, 개혁 진영이 가진 물적, 상징적 자원의 비대칭성은 극심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이라는 공통의 절대목표가 있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는 무시하고 단결하는 반면, 진보, 개혁 진영은 계기만 있으면 분열을 거듭한다. 양 세력이 가진 자원의 크기가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사익추구집단은 설혹 실수를 하거나 집권에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언제나 기회가 있지만, 진보, 개혁 진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면 사익추구집단의 공격과 검증(예컨대 현재 통계로 잡히지 않는 광범위한 복지수요와 예산 제약의 문제, 증세의 어려움, 도덕적 해이 등)을 이겨낼 수 있는 모델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집권도 어렵거니와 집권하더라도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진보, 개혁 진영에게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불공평한 일이지만 그게 객관적 현실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이외의 구조적 모순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식민통치, 외세에 의한 해방과 분단, 전쟁, 군사독재, 압축적ㆍ폭력적 산업화, 민주화 등을 1세기 만에 경험한데다 그 이행과정이 질곡으로 점철돼 있기에 식민, 분단, 반민주 등의 적폐가 여전히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적폐들이 반칙, 특권, 불공정, 비합리, 몰상식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양태들이 공정한 경쟁의 부재, 승자 독식 및 패자부활전의 부재, 불로소득 추구행위의 만연, 패거리주의와 학벌주의의 기승, 사익추구행위의 창궐 등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모순과 한국사회의 전근대성 혹은 불공정성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모순은 구별되어야 하며 그 처방도 달라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의 개념적 징표들을 나열해 보면 각종 정부 규제의 철폐, 민영화, 시장개방, 무역자유화, 고용유연화, 경쟁의 촉진, 제조업에 대한 금융업의 우위,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일 것이다. 확실히 신자유주의적 정책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해지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인 양극화(산업간, 기업간, 지역간, 노동간, 계층간)의 주범이 신자유주의인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부동산 및 주식 불로소득의 편중으로 인한 자산양극화 및 부동산 가격 폭등, 기회(교육과 의료, 금융 서비스 등)불균등의 심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한 내수 시장의 위축 및 실업률 상승 등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위와 같은 문제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특권과 반칙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나 횡행하던 특권과 반칙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근대 이전에 있으며 특권과 반칙, 불공정성, 비정상성, 반/비합리성을 폐절하고 근대성과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박하다.

셋째, 한국인들 특유의 집단심성을 고려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특수한 역사적 기원과 경로를 통해 형성된 한국인들의 집단적 심성에 주목해야 한다. 증세하더라도 복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우세한 현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모델이 미국이라기 보다는 스웨덴이라는 여론이 우세한 현실 이면에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 보다 좋다'라는 여론이 엄존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 심성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즉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든 걸 국가가 해 주는 후견적 국가 보다는 사회 안전망을 튼실히 구축해 주는 국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가, 출발의 합리적 평등과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지지하는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토지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토지가 지닌 중요성은 새삼 긴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토지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첩경이다. 토지문제를 단순히 주거복지나 집값 안정 차원에서 다루지 말고 국가발전모델을 구성함에 있어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가경쟁력 제고,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 담보, 자산 및 소득 불평등 완화 등을 실현할 길은 없다.

다섯째, 광범위한 잠재적 복지수요의 존재와 증세의 어려움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광범위한 잠재적 복지수요가 존재하며, 이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려면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낭비성 예산의 절용, 토건 및 국방 부문 예산의 사회복지예산으로의 전용, 세원 기반 확충(간이과세제도폐지, 탈루 세원 포착 등)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GDP대비 예산 규모를 보면 이 역시 한계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고 대규모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도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 개혁 진영이 설계하는 국가발전모델에는 복지의 범위와 수준, 방법(공적부조 혹은 사회보험), 복지의 우선순위, 재원마련 등에 관한 치밀하고 정교한 로드맵이 필수적이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시장과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위에서 열거한 것들은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함에 있어 반드시 주의해야 할 한국사회의 특수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함에 있어 보편성의 영역을 사상(捨象)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와 개인 관의 관계, 시장과 노동에 대한 관점이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설정이라는 문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주제이다. 다만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입장들을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국가가 개인이 직면한 대부분의 필요와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해결해주는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간섭은 적을수록 좋다는 입장, 국가는 개인이 창의와 자유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도록 법과 제도로 보장하고, 경쟁에 참여할 수 없거나 경쟁에서 낙오한 개인들을 보살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진보, 개혁 진영에서는 이들 입장 가운데 하나를 취해 국가발전모델에 반영해야 할 것인데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한 관점 중 마지막 관점이 정의와 형평, 효율과 장기지속성 측면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장과 노동에 대한 관점도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함에 있어서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 시장과 노동에 대한 입장이 어떠한가에 따라 설계되는 국가발전모델이 전혀 상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악마의 맷돌로 보는 입장, 시장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맹신하는 입장, 시장이 불완전하지만(그래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이 요구되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우수한(정의와 효율 양 측면에서)경제체제라는 입장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할 것이냐에 따라 구성되는 국가발전모델의 기본원리와 정책패키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노동에 대한 관점도 중요하다. 노동가치설에 입각해 노동을 존중하는 관점과 노동가치설을 기각시킨 채 노동을 생산요소의 하나로 보고 자본과의 힘의 비대칭성을 보완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로 노동 3권 등을 보장하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생각건대 시장이 지닌 우수성을 인정하면서 시장이 작동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이를 교정하는 관점, 노동에 대한 숭배나 지나친 애호를 지양하고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몫을 보장해 주는 관점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한 국가발전모델 설계해야

지금까지 진보, 개혁진영이 설계하고 있는 국가발전모델에 반영되어야 할 요소들을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진보, 개혁진영이 설계하는 국가발전모델은 총체적이고 유기적이어야 하며, 현실적합성이 있어야 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또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형평, 분배와 효율 같이 길항관계에 있다고 평가되는 요소들이 그 안에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물론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국가발전모델을 만드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조중동이라는 엄혹한 검증인이 있는 한 설익은 국가발전모델을 내놓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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