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국회에서 열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김성환 후보자 대신 증인으로 출석한 김태효 비서관을 두고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공방을 벌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후보자는 "(김태효 비서관은) 수석비서관인 내 지시를 받고 일해 왔다, 이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이날 청문회는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해 온 김태효 비서관의 무게감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김성환 청문회서 벌어진 '김태효 논쟁'…"비서가 입이 없어야지"
실제로 청와대 안팎에서 "김성환보다 김태효가 세다"는 평가가 일종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비서관은 1급 비서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도 참석한다. 대통령과 김 비서관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장·차관급이다.
그는 대통령의 외교안보자문단 간담회에도 배석하는 유일한 비서관으로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유지돼 온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해 왔다.
야당 의원들은 김태효 비서관이 그 동안 각종 언론을 통해 대북정책을 포함한 각종 외교적 현안을 언급해 온 점을 문제삼았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비서는 입이 없고, 자신이 모시는 분을 통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김태효 비서관은 각종 내·외신 언론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 정상회담, 북핵, 천안함 출구전략, 이산가족 상봉, 대북 인도적 지원 등 남북관계의 모든 현안에 대해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비서관은 "전반적으로 옳으신 지적"이라면서도 "다만 저는 대통령이 언급하시기에 너무 구체적인 사안,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감안해 사회적 혼란이 있다고 판단될 때만 이야기를 했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김동철 의원은 "비서관이 이야기를 하려면 청와대를 박차고 나오든지, 아예 행정부로 와서 일을 하라"고 맹공을 폈다.
김 의원이 "이명박 정부가 이런 식으로 남은 임기를 끝내면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보다도 후퇴한 정권으로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 것"이라며 "한 번 두고 보라"고 질타한 것도 김성환 후보자가 아니라 김태효 비서관을 향해서였다.
같은 당 박주선 의원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이 우리의 사과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이대로 가는 것이냐"는 등 남북관계 현안과 관련된 주요 질의를 김 비서관에게 던졌다.
▲ 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가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
○…문제의 '김태효 발언록', 어땠길래? 이날 청문회장에서 지적된 것처럼 김태효 비서관은 그 동안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 등을 통해 남북관계의 주요 현안을 두루 언급해 왔다. 그 주요 발언들은 다음과 같다. "단호한 대북정책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북경협이 가능하려면 북한의 천안함 문제 인정과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수십만톤 수준의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도 천안함 사과가 있어야 한다." (2010년 9월, 한국국방안보포럼 세미나)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에 북한이 획기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요청에 대해 결심해주면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기존 고집을 꺾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은 대응을 해온다 해도, 이명박 정부는 임기가 끝난 뒤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2010년 2월, 통일연구원 토론회) "북측이 자꾸 우리 문을 두드려 만났다. (남북 정상회담이) 언론에서 생각하는 것 만큼 진전되는 건 아니다." (2009년 12월, <신동아> 인터뷰) |
"뭘 좀 알고 대통령 보좌하라"…송민순의 질타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김태효 비서관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반을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송 의원은 "김태효 비서관은 북한의 천안함 사과가 전제되어야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요지로 발언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북한은 KAL기 사건, 랑군 사건, 동해 잠수함 사건 등 손에 피가 묻은 채 발견된 경우에도 시인과 사과를 안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비서관이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과 김신조 사건 등 두 차례 사과를 했다"고 답변하자 송 의원은 "당시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다. '남북 간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라고 표현했고, 국제사회는 이를 '관대하게 해석된 사과(generousely interpreted apology)'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뭘 정확하게 알고 대통령을 보좌하라"고 쏘아붙이며 이같이 말했다.
또 송 의원은 "김 비서관은 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상생과 공영은 목표, 비핵개방3000은 방법, 그 협상전략은 그랜드바겐'이라고 했더라"며 "그런데 외국의 어떤 원수가 그랜드바겐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비서관은 "우리 정부가 만든 표현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취향과 색깔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일 뿐 내용적으로는 동일하다"고 답변했지만 질타는 계속됐다.
송 의원은 "그런 인식은 심하게 이야기하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며 "예를 들어 과거 한미 간에는 '패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내용이 같으면 이름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설렁탕집에서 칼국수를 팔면 되느냐"며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나라의 외교와 안보를 책임진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몰아쳤다. 김태효 비서관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이날 여야 의원들은 김 비서관을 두고 남북 관계를 포함한 주요 외교안보 정책 전반과 관련한 공방을 벌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뉴시스 |
"누가 장관 후보자야?"…한나라도 '김태효, 김태효'
김태효 비서관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장관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청문해야 하는 자리에서 마치 김태효 증인에게 정부의 외교·안보·국방정책을 따지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며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제동을 걸었지만, '감태효 쏠림 현상'은 다른 여당 의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윤상현 의원은 "김태효 비서관은 대외활동이 활발한데, 김성환 후보자보다 몇 배 더 많지 않느냐"고 촌평했다.
홍정욱 의원 역시 "일개 비서관에 불과한 김태효 비서관이 최근 대외적으로 나서서 남북관계 해빙 무드를 깨고 있다"며 "김태효가 김성환보다 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질타했다.
김성환 후보자는 "그렇게 보도하고 있는 언론 매체는 대체로 성향이 일정하지 않느냐"며 "모든 매체가 그렇게 보도하지는 않는다"고 재차 반박하는 모습이었다.
김 후보자는 "제가 한 발언도 언론에 상당히 여러 번 났는데 (김 비서관의 발언이) 몇 차례 난 것을 갖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그런 지적을 유념해 우려하실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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