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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의 눈물'…대통령이 닦아줘야 한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⑤ 울고 있는 KBS

'가장 믿을 수 있는 언론'이었던 KBS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그렇게 나온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예상되던 일이었다.

MB정권 출범 전해인 2007년 9월 <시사IN> 조사에서 KBS의 신뢰도는 27.3%였다. 2위였던 MBC의 신뢰도 16.1%보다 무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그리고는 곤두박질이었다. 역시 <시사IN> 조사에서 2008년 오차범위 이내로 1, 2위 격차가 좁혀지더니 2009년부터 역전, 2010년 최근 조사에서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특히 올해엔 주목해야할 현상이 나타났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가장 신뢰하는 언론' KBS가 이 나라에서 '가장 불신하는 언론'의 반열에 끼어들었다. 지난해 '불신언론' 7위에 랭크되더니 올해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이어 4위의 자리를 파고들어 보란 듯이 얼굴을 내밀었다. 끊임없는 공정성시비 등이 영향을 미쳤겠으나, 이 정권의 민주주의 실천의지나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수준, 이런 것들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신뢰언론'에서 '불신언론'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정부의 '정연주 사장 몰아내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정 전 사장은 2008년 8월 8일 KBS 이사회가 '감사원의 해임요구에 따른 해임 제청안'을 가결시키고, 대통령이 이 제청안을 받아들임으로써 해임되었다.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며 이사회가 열린 날, 31개 중대의 전의경이 KBS를 에워싼 가운데, KBS정문 건너편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확성기로 군가를 틀며 "정연주 퇴진"을 외쳐대는 가운데, 사복경찰 200여 명의 에워쌈 보호를 받으며 유재천 이사장과 이사들은 입장했다. 3명의 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사장은 6대0으로 제청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했다.

그때 수고를 아끼지 않은 유재천 이사장은 지금 상지대 총장의 자리에 앉아있다. 분규에 휩싸인 대학의 관선이사로 파견돼 총장이 되는 절차의 '공로상'을 받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몰아내기'는 잘못한 것이므로 "해고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횡령죄로 기소된 형사재판에서도 정 전 사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KBS만 변했을 뿐이다.

정 사장 추방 이후 '언론사'인 KBS에는 그야말로 그레샴 법칙의 회오리가 몰아친다. 후임 사장 이병순 씨의 취임 제 일성은 "모든 프로그램을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게이트 키핑하겠다"였다. 참으로 별난 '게이트 키핑'이 뒤를 이었다. 언론 본연의 길은 팽개치고 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하는 길을 내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KBS의 신뢰를 높여주면서 사원들에게도 '살맛나는' 자부심을 심어주던 좋은 프로그램들이 제자리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시간대로 '강제이주'시켰다가 날려버리기도 했고, <미디어 포커스>처럼 그동안 조중동을 기분 나쁘게 한 프로는 문패를 바꿔달아 별 볼일 없는 시간대로 몰아냈다. 탐사보도팀과 시사보도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보도물들이 특히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이들 팀의 그동안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정권차원에서는 골칫거리였다.

임대소득 탈세보도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고, MB정권 첫 조각 때는 통일부장관 내정자 등 각료후보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재산검증 보도로 잇달아 낙마하기도 했다. 시사보도팀의 <뉴스 포커스>와 함께 탐사보도팀의 <쌈> <KBS 스페셜> 등을 통해 나간 굵직굵직한 특집들은 KBS의 성가를 올리는 데 문자 그대로 큰 몫을 했다. 그야말로 'KBS 답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이 나라 언론사의 한 족적으로 남기에 부끄럼이 없었다.

우선 손 꼽아봐도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 '파워엘리트 그들의 병역을 말한다' '김앤장을 말한다' '무신불립, 대선후보는 말한다' '고위공직자 검증 연속 보도' 'MB식 인사실태 보고' 'MB정부 부동산 정책 점검' 등 수두룩하다.

많은 상들을 쓸어 담았다. '이달의 기자상'은 셀 수 없이 많고, 한국기자상, 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 최병우국제보도상에 미국 IRE(탐사기자 및 편집인협회)가 주는 TV대상도 받았다. 해양투기 고발프로로 받은 이 상은 IRE가 미국 이외의 나라 방송사에 준 최초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탐사보도팀은 시사보도팀의 <미디어 포커스> 파트와 함께 방송·신문 할 것 없이 이 나라 언론계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때 KBS, KBS 사람들은 좋아했다. 많이 가슴을 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누가 봐도 우수인력으로 짜인 강팀이었다. 그리고 나서 '간섭'은 사장의 언어가 아니었다. 취재대상에 '성역'을 두지 않았다. '게이트 키핑'의 권한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졌다. 최대한의 자율과 철저한 책임의식 속에서 그들은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리는 KBS의 자부심 덩어리가 되었다.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뢰도 1위의 탑은 그렇게 한층 한층 더 높게 올라갔으나, 후임 사장이 부임하고 프로그램 '정비'와 함께 제작진으로부터 '게이트 키핑'의 권한이 회수되면서, 팀의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신뢰의 탑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레샴 법칙이었다.

2008년 9월 17일 부임 한 달여 만에 이병순 당시 사장은 탐사보도팀장을 하던 김용진 기자를 부산 총국으로 발령한다. 헌법재판관 탈세를 리포트했던 최경영 기자는 스포츠 중계부로 발령이 났다.(최 기자는 중계부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 못 견디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 <9시의 거짓말>이란 저서를 펴냈다) 또 몇 사람이 함께 '엉뚱한' 발령을 받았다.

부산으로 떠나던 날 보도본부장은 김 기자에게 "미안하다 1년만 있다 오라"했다. 탐사보도팀과 시사보도팀의 부당한 인사와 관련해 기자협회 대표 등이 KBS를 항의방문했을 때, 보도본부장은 "그동안 이념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목의 이야기에 김 기자는 울부짖는다.

"<미디어 포커스>나 탐사보도가 특정이념, 특정이즘에 경도돼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이념은 KBS를 장악한 자들이 그렇게 간절히 딱지붙이고 싶어하는 '소셜리즘'이나 '꼬뮤니즘'이 아니라 바로 '저널리즘'이라는 이념이다!"

그 김용진 기자는 뒤이어 또 기막힌 꼴을 당한다. 부산총국 발령을 받고 간지 1주일째 되던 날 보도국장에게 불려갔다. "울산 발령이 났다. 가줘야겠다" "왜 또 발령이 났죠?" "나도 잘 모르겠다" 울산방송국에 가서 또 물었다. "부산 발령난지 1주일 만에 왜 또 울산 발령이 났죠?" "모른다" 이야말로 KBS의 비극이다. 눈물이다. 많은 사원들이 속으로 울었다. 이야말로 '왜 사냐건 웃지요'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에 의해 멱살 잡혀있는 이 나라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현주소다.

그런 나라의 뉴스는 비록 '땡전'시대는 벗어났을 지라도, 국민 무서워 할 줄 모른다. 오직 '그분'의 유불리가 뉴스가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먼저 알려야 할 건 빼거나 뒤로 밀어내고, 몰라도 되거나 뒤에 자리 잡아도 될 뉴스들이 앞에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예컨대 2009년 1월 20일 밤 KBS 11시 뉴스라인도 그랬다.

이날은 철거민들의 농성현장에 무리하게 진압경찰을 투입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 등 6명이 목숨을 잃고 20여 명이 다친 용산 참사의 날이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난 참변을 놓고 대통령도 "진상파악을 철저히 하라"한 사건이었다. 국무총리도 지방순시 일정을 취소하고 상경해 유감성명을 낸 사건이었다. 야당에선 관계 장관과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했고, 여당의 원내대표도 책임자 문책이 선행돼야한다고 한 사건이었다. 심각한 사건이었다.

이날 뉴스라인에 이 사건은 세 번째로 보도된다. 첫 번째 뉴스는 다음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다는 '예정기사'였고, 두 번째 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이야기였다. '미셸 스타일 따라잡기' 리포트였다.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충정'에서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게 다 KBS의 신뢰도를 끌어내리는 그야말로 '눈물의 씨앗'이다. 이 나라가 '언론자유 후진국'임을 만방에 알리는 '악다구니'다.

1970년대 초 필자는 서울 서대문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건기자였다. 그때 KBS기자였던 한 대학후배가 열심히 쫓아다니며 내게 매달리던 일이 생각난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경찰서 기자실의 한 멤버로서 함께 드나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 문제를 놓고 기자실에서 몇 차례 회의까지 열렸으나 결론은 항상 하나였다. 바로 "KBS기자는 공무원이지 기자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KBS는 조중동에 의해 극도로 왜곡된 여론시장을 바로잡아주는 역할까지 하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내리막길을 걷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서고 있다. "나는 KBS맨"이라고 가슴 펴고 자랑스럽게 외치던 사원들은 지금 일선 현장에서 취재차량이 스프레이 세례를 받는 참혹한 수난까지 당한다. 그래서 KBS는, 적지 않은 사원들은 지금 속으로 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신료 문제까지 고개를 들었다. 1981년 현행 2500원으로 책정된 이후 29년 동안 묶여있는 게 KBS의 수신료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금 정작 KBS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수신료를 받아 광고를 폐지하고 그 폐지되는 광고료 6천억 원을, 조중동이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종편 먹여 살리는 데 돕겠다는 것이 목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여러 차례 그렇게 이야기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순한 생각이다. 'MB특보 체제'의 '불신언론 육성'을 위해 내가 수신료 명목으로 10원이라도 더 내야할 이유도 없고, 조중동 돕는데도 내 돈 보태줄 생각이 전혀 없다.

문제는 언론자유다. KBS나 신뢰도나 공영성이나 조중동이나 다 언론의 자유와 연계되는 이야기들이다. 그 언론의 자유를 놓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나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교과서 안에만 있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이 기지개를 켜고 걸어 나와 우리들의 TV화면이나 신문지면에서 생생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그런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 다른데서와 마찬가지로 바로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기자들의 손에 언론자유를 돌려주겠노라"고 선언하고 조중동의 사주들에게도 "당신네들도 그렇게 기자들에게 돌려주라"고 권하면 그들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결국 KBS의 눈물은 대통령이 닦아 주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으나 대통령의 의지 하나면 된다. 그건 바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이기도 하다.

▲ 지난 7월 KBS 새노조가 파업 중단 선언을 하자 파업에 참석했던 한 막내 KBS 아나운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파업 종료 선언 직후 염경철 위원장을 비롯해 정세진 아나운서 등 참가자들 다수가 눈물을 흘렸다.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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