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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위해성 평가, '사면초가' 식약처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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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위해성 평가, '사면초가' 식약처를 구할 수 있을까?

[안종주의 안전사회] 식약처를 딜레마에 빠트린 생리대

생리대 역학조사 쉽지 않고 위해성 밝혀내기도 어려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살충제 달걀에 이어 잇달아 터져 나온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 그리고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또 생활화학제품과 식품에 이어 의약외품의 안전성을 정부가 얼마나 제대로 관리해왔는지, 앞으로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신뢰성을 주며 잘 관리할지에 대한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생리대 유해성 논란도 살충제 달걀 사태처럼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안이었음에도 현재로서는 가래로도 막기 쉽지 않은 형편이어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의 위기관리와 위험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여성환경단체, 전문가, 기업, 식약처 등 이해관계자들과 정부가 복잡하게 얽혀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고 있어 매끄럽게 해결되기 쉽지 않은 구조를 하고 있다.

먼저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먼저 문제가 됐지만 우리처럼 폭발력 있게 진행되지 않아 위해성 평가, 역학조사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관련해 우리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거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 생리대 유해성 여부는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으로 생리대 위해성 평가와 역학조사를 하게 됐다는 점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갑론을박이 필연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시사한다.

유해성과 위해성은 천양지차

먼저 위해성 평가부터 따져보자. 유해성과 위해성은 다르다. 엄청난 유해성을 지녔더라도 위해성이 전혀 없을 수 있고 유해성이 약하더라도 위해성이 있을 수 있다. 강원대 김만구 교수가 분석한 생리대 유해물질, 즉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김 교수는 TVOC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과거 실내공기 중 오염물질 분석 때 사용하던 것으로 현재 국내 학계는 물론이고 국제 학계에서도 사용하는 VOCs로 함)의 검출과 검출양은 유해물질의 존재만 드러낸 것이지 위해성을 말하는 결과는 아니다.

더군다나 김 교수가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아 조사·분석한 생리대에서 검출된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등 주요 유해 휘발성유기화합물의 농도는 불검출이거나 1조분의 1 이하에 해당하는 극미량 중의 극미량이다. 생리대 개당으로 보면 ppb 수준이지만 20리터 용기에 생리대를 넣어 휘발성유기화합물이 3시간 동안 나오게 해 포화시킨 뒤 이를 포집해 분석했다고 밝혔으므로 공기 중으로 보면 20ng 이하는 1조분의 1 이하가 된다. 초정밀고성능분석기기의 검출한계에 가까운 수치여서 이 농도가 100% 질 점막 등을 통해 흡수된다 하더라도 위해성을 논하기가 쉽지 않은 양이다.

김만구 교수가 분석·발표한 주요 유해성 VOCs는 초극미량

생리대에서 나온 총유기성휘발화합물의 양이라고 김 교수가 발표한 것은 10억분의 1 수준, 즉 ppb 수준이며 이 또한 극미량에 해당한다. 점막은 일반 피부에 견줘 물질 흡수가 잘 되는 부위이다. 하지만 점막 흡수의 경우 독성 여부와 독성의 정도, 표적 장기(Target organ) 따위를 밝혀내기 위한 동물실험이 쉽지 않다. 쥐나 생쥐의 경우 경피흡수를 통한 독성실험을 하는 실험동물로는 많이 쓰이지만 생리대의 경우처럼 질 점막 흡수를 통한 생식 독성 등을 연구하기에는 사람과 너무나 달라 사용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김 교수는 화학물질의 위해성 평가의 첫 단계, 즉 유해성 확인에 해당하는 실험분석을 했다. 위해성 평가는 유해성 확인에 이어 양-반응 평가, 3단계로 노출 평가까지 거쳐 이루어진다. 유해성 확인이 됐다 하더라도 비발암성물질의 경우 양-반응 평가를 해 무영향관찰양과 최소영향관찰양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유해성 확인이 마치 위해성 평가를 거쳐 위해성 확인까지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한다. 위해성 확인까지는 갈 길이 너무나 먼데도 말이다.

"멍청아! 문제는 유해성이 아니라 노출이야!"

김 교수가 분석했다고 하는 주요 휘발성유기화합물, 즉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스티렌, 크실렌, 트리클로로에텐, 아세톤 등은 대부분 양-반응 평가가 이루어진 물질들이다. 따라서 위해성 평가에서 관건이 되는 부분은 노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을 때 주요 유해화학물질이 질 점막(그리고 일부 경피흡수)을 통해 얼마만한 양이 흡수돼 인체에서 대사되느냐하는 것이다. 이를 정밀하게 분석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교수가 생리대에서 분석했다고 한 휘발성유기화합물 가운데는 발암성물질이 들어 있다. 김 교수는 벤젠은 1등급 발암물질이며 에틸벤젠과 디클로로메탄이 3등급 발암물질이라고 발표했다. 발암물질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와 미국 환경청 모두 등급(grade)으로 분류하지 않고 그룹(집단)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김 교수가 1급, 2급, 3급 식으로 설명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등급으로 표시하면 마치 1급은 조금만 노출돼도 암에 걸리고 3급은 그보다 더 많은 양에 노출돼야만 암에 걸리는 것으로 일반인들을 오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발암물질은 인체발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석면, 벤젠, 크롬 등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임이 확실하면 그룹1(인체발암물질, 미 환경청은 그룹A), 스티렌, 폴리염화비페닐 등 동물에서는 암을 확실히 일으키지만 사람에게는 발암 증거가 제한적인 경우는 그룹2A(인체발암추정물질, 미 환경청 그룹B에 해당), 에틸벤젠 등 동물에서는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됐지만 사람에게는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동물에서는 충분한 증거가 없으며 사람에게서는 제한된 증거만 있는 것, 그리고 사람과 동물 모두에서 발암성 증거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는 그룹2B(인체발암가능물질, 미 환경청의 그룹 C에 해당)로 각각 분류한다. 발암성의 강도에 따른 등급이 아니라 인체발암성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비슷한 성격을 지닌 물질을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발암물질의 위해성 평가는 이론적으로는 무영향관찰양을 정할 수 없기에 암 발생 관리 목표, 예를 들면 해당 농도의 발암물질에 40년간 노출됐을 때 10만 명 당 1명 또는 100만 명 당 1명 식으로 정해 그 이하로 사람들이 흡입하거나 섭취하도록 정해 놓은 것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발암물질은 적게 노출될수록 좋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발암물질, 특히 인체발암물질의 경우 사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발암추정물질과 발암가능물질도 마찬가지로 제조·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하고 있다.

생리대 사용자 역학조사는 넘기 힘든 스무고개

일각에서는 독성 평가를 통한 위해성 평가보다 실제로 화학물질(휘발성유기화합물)에 노출되거나 화학물질 제품(생리대)을 사용한 사람 가운데 증상이나 질병을 호소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하여 생리대의 유해성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여성·환경단체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등이 생리대 유해 논란 파문 이후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정부도 최근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 정리를 한 바 있다.

문제는 과연 이번 생리대 파문을 역학조사로 그 원인을 밝혀내거나 아니면 원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낼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 생리대 사용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역학조사를 벌일지 방법과 대상, 그리고 평가를 내려야 한다.

감염병이든, 환경병이든 새로운 질환 또는 증후군을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낸 경험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많지 않다. 식약처는 기존 독성자료를 바탕으로 위해성 평가를 한 경험이 있지만 생리대 유해성 파문과 같은 일에 역학조사까지 벌인 경험은 없다. 이 때문에 식약처에도 의사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역학조사를 관장하면서 진두지휘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질병관리본부와 협조해 역학조사를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역학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어려운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사례-대조군 연구를 즐겨 사용한다. 다시 말해 질병에 걸린 사람과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를 비교해 노출 유해요인과 해당 증상 내지는 질병의 위험비를 내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가 중증 폐손상의 원임임을 밝혀낼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10~50대 여성 가운데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을 구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똑같이 생리대를 사용하고도 질병이나 증상 호소를 하는 양상이 서로 다른 여성을 그룹으로 나눠 비교분석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간호사 코호트 사용 검토, 편견 없애려면 진료기록부 활용 필수

예를 들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난 뒤 월경주기 변화, 생리혈 감소 등의 이상 증상을 호소해온 여성들과 같은 연령대의 간호사 코호트를 대조군으로 해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각 증상보다는 진료기록 대조를 통해 차이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코호트 : 특별한 기간 내에 출생하거나 조사하는 주제와 관련된 특성을 공유하는 대상의 집단.)

생리대가 엄청난 사회 문제로 번진 뒤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집단폭발에 따른 불안과 분노라는 심리적 요인이 개입해 회상편견(recall bias)이 작동한 것일 수 있으므로 객관적 진료기록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이를 위해서는 조사대상이 자신의 의무기록을 연구진들이 볼 수 있도록 동의해주는 절차가 필요하다. (회상편견 : 환자로 분류된 쪽이 과거 위험 노출을 회상하는 데 더 적극적인 현상)

미국의 경우는 각종 여성 질병, 예를 들면 유방암 발병률 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간호사 코호트를 매우 긴요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011~2012년 2만 명의 간호사 코호트를 구축해놓고 있다.

식약처는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생리대 사용 여성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책임지고 해줄 연구진들을 정부 연구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정한 뒤 이른 시일 안에 본격 역학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하지만 역학조사를 통해 생리대 사용 여성들이 호소하는 증상이나 질병이 생리대 자체의 유해성분 때문인 것을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누군가는 다치게 되어 있는 게임 : 생리혈 자체가 유해요인일 수 있어

생리혈 자체가 유해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리대에 흡수된 생리혈은 시간이 갈수록 세균 번식의 온상이 될 수 있고 다량 번식한 세균에서 나오는 유해성분이 여성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1978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젊은 여성들의 독성쇼크증후군들도 흡수력이 뛰어난 삽입식 생리대인 탐폰에서 증식한 세균이 범인이었다.

생리대의 유해성을 놓고 여성환경연대를 비롯한 여성·환경단체, 강원대 김만구 교수, 식약처 등이 물러 설 수 없는 대결 국면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느 한쪽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한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 또는 집단이냐를 놓고 뜨거운 공방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다 '깨끗한 나라' 쪽이 김만구 교수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최근 고소했기 때문에 연구비 출처와 유무죄 등 법원의 판결결과도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래저래 식약처는 힘겨운 딜레마와 씨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생리대 역학조사와 위해성 평가가 사면초가에 놓인 식약처를 과연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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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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