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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공동체 위해 놀고먹는 수벌 내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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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공동체 위해 놀고먹는 수벌 내좇아…

[작은책] 벌들의 세계

"요즘은 무슨 꿀 따세요?"

꽃마다 꿀이 넉넉하게 나와서 늘 꿀을 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 꽃에서 꿀이 나올 테지만 저장할 수 있는 만큼의 꿀을 제공하는 꽃은 그리 많지 않다. 칡꽃은 그리도 무성하고 향기롭건만, 꿀벌이 달려들지를 않는다. 꿀이 나지 않거나 꿀벌의 입 구조와 꽃의 구조가 맞지 않아 꿀을 딸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러 봄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꿀벌들이 일제히 아카시아꽃으로 날아간다. 아카시아꽃이 한창일 때는 하루 만에 1, 2층의 벌집을 꽃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꿀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낮 동안 바깥 일벌들이 아카시아꽃과 벌통 사이를 바쁘게 왕복하며 미친 듯이 1층 벌집을 채우면 안쪽 일벌들 또한 미친 듯이 1층의 꿀을 2층으로 물어 올린다. 그리고 밤새 날개바람으로 수분을 날리고 농축된 꿀로 2층 오른쪽 끝부터 차례로 메운다. 며칠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2층의 꿀의 밀도가 높아지면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프로폴리스와 밀랍으로 뚜껑을 덮는 봉개가 일주일 만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밤꿀은 꿀의 양이 적은데다가 묽어 자연 농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한 달이 넘어도 꿀 양이 아카시아꿀의 반도 안 된다. 아카시아꿀을 뜰 적에는 꿀벌들이 아카시아꽃으로 꿀 따러 날아가느라 채밀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밤꿀을 딸 적에는 꿀벌들이 사납게 채밀기로 달려든다. 밤꿀은 잘 나지 않아 모아오기도 힘들고 모아둔 양도 적은데 빼앗아가는 것에 화가 난 걸까? 이미 꿀벌들은 더 이상 충분한 꿀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하여간 우리는 6월 말 밤잡화꿀을 따고는 올해 꿀 따기를 끝냈다. 7월에 꿀을 딴다는 것은 벌과 꿀을 바꾸는 행위라고 벌쟁이들은 말한다. 7월에 꿀을 따면 꿀벌들이 과로와 병충해로 대부분 죽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7월 중순까지 개방산에 가서 피나무꿀을 따왔는데, 올해엔 로열젤리를 시작하느라 꿀은 포기하고 꿀벌을 살리기로 했다.


ⓒpixabay.com


"요샌 뭐 하노? 노나?"

들깨밭 김매러 올라오신 동네 할매가 물으신다. 꿀을 따고 나면 수확이 끝났으므로 양봉의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었으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월동을 위한 꿀벌 돌보기의 시작은 7월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우선 진드기 약 처리를 해 준다. 5~6월에 꿀을 따오는 바깥 일벌들의 몸에 진드기나 가시응애 등이 붙어 들어오지만, 꿀을 떠야 하기 때문에 방제 처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7월이면 병충해가 극에 달해 꿀벌들이 진드기에게 뜯기며 괴로워서 바둥거리는 게 보인다. 우리 몸에 이나 모기를 수십 마리 달고 사는 거와 비슷하려나? 게다가 진드기나 가시응애는 애벌레의 진을 빨아먹고 사는 바람에 꿀벌들이 기형아로 태어나 날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다가 죽곤 한다. 미치고 팔딱 뛰는 꿀벌들에게 방제 처리를 해 주고 나면 벌통에는 건강한 벌들만 남는다.

그러면 인공으로 분봉을 낸다. 일명 벌통 쪼개기. 벌통들이 모두 1층 단상으로 꾸려지면서 벌통 수는 두 배로 많아진다. 산란 잘하고 일벌 관리 잘하는 여왕벌의 벌통을 찜해 두었다가 벌통을 쪼개기 열흘 전에 이충(離蟲)을 해 둔다. 사흘 된 애벌레를 여왕벌집을 모방한 구슬 모양의 플라스틱 왕완(王莞)에 옮겨 담는 것이다. 이충한 지 사흘이 지나면 왕완에 로열젤리가 가득 채워져 있고 로열젤리를 먹은 애벌레는 통통하다. 여왕벌의 큰 몸집을 보호하기 위해 밀랍으로 고깔을 씌우듯 길쭉하게 번데기를 만들면서 로열젤리를 계속 넣어 준다.

이레가 지나 봉해진 번데기 방인 왕대(王臺)를 들여다보면, 성충의 모습을 갖춘 하얀 여왕벌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미라처럼 우아하게 서 있다. 그 왕대를 교미를 위한 벌통 안에 꽂아 두면 벌들이 달려들어 여왕벌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여왕벌이 태어난 지 사흘 정도가 지나면 하늘로 날아올라 수벌들과 교미를 한 후 돌아온다. 가끔 돌아오지 못하는 여왕벌이나 다른 벌통으로 들어가다 내몰리는 여왕벌도 있다. 잘 돌아와서 산란도 잘하다가 뭔가 틀어졌는지 여왕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여왕벌을 잃을 것을 대비해서 또 미리 이충을 해 둔다. 그 날짜를 잘 맞추지 못해 여왕벌이 미리 태어나면 다른 양봉인들에게 왕대를 넘기고, 다 나눠 준 바람에 우리 여왕벌이 모자라면 다른 양봉인에게 얻어 오느라 양봉인들끼리 연락을 자주 취한다.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하면 육아를 위해 꿀이며 화분을 많이 먹기 시작한다. 우리 부부는 수시로 내검하여 먹이를 넣어 주고 화분떡도 올려 준다. 여왕벌이 잘 있는지를 확인하고 없으면 새 여왕벌을 넣어 줘야 하니 여분의 여왕벌도 늘 준비해 둬야 한다. 새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하고 벌통 안이 안정을 취하면 통 고르기를 한다. 강군이 되어야 겨울을 날 수 있으므로, 약군은 합쳐서 강군으로 만든다.

헉헉! 이렇게 바쁘게 월동 준비를 하다 보면 말벌이 나타나 꿀벌을 채 가기 시작한다. 우리 부부는 꿀벌들과 힘을 모아 말벌과 싸우며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낸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을 보내니, 입추와 말복과 처서라는 절기가 너무 반갑다.

벌의 수가 줄어들고, 여름꽃에서 나오는 꽃가루와 꿀은 벌들이 먹고 저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꿀벌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우선 여왕벌이 교체되고 교미가 이루어져 산란이 시작된 벌통에서는 수벌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덩치는 큰데 꿀은 물고 오지 않으며 놀고먹기만 하는 수벌들은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존재들인 것이다. 일벌들이 수벌들을 에워싸서 몰아내고 수벌들은 다시 들어가려 애를 쓰지만 입구에서 내몰린다. 결국 벌통 밖에서 굶어 죽는 거다. 우리 양봉인들은 설탕물을 조금씩 넣어 주고 화분떡도 넣어 주워 먹을 것이 넉넉하다는 신호를 보내 준다. 이를 '산란 자극 사양'이라고 한다. 이때 벌의 양을 늘려야 9월에 겨울을 나기 위한 꿀장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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