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 문재인 대선후보의 "외교특보"로서 활동했던 입장에서, 게다가 아직 "새 정부"라는 딱지를 채 떼지도 못한 정부에 쓴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외교가 곧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렇게 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또 문재인 정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러한 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의 외교와 관련하여 9월 4일자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 진영 내에서조차 외교안보정책의 전면 재검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넉 달 동안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전임 정부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있을 때마다 미국·일본 정상과의 소통, 국제사회의 제재·압박 강화 동참 등 관성화된 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대응 무력시위와 국방비 증강 등에 보수정부 때보다 더 과감하다는 점이다.
정부에 외교안보정책을 조언하는 한 인사는 '초기 넉 달간 정부의 대응은 과거 정부 때처럼 미국에 더욱 강하게 밀착해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일 대 중·러의 대립 구도 변화에 어떠한 변수도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촛불혁명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또한 9월 5일 자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그걸 깨고 있다"며 위와 다르지 않은 지적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들에 대해 뼈저리게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전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과거의 보수정권들 보다도 더할 만큼 "대미 외교"에 치중했지만, 그렇다고 한미 관계가 과연 얼마나 좋아졌는가? 그 속에서 남북 관계는 더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문 대통령의 당선을 우리만큼이나 반기며 좋아했던 중국과의 관계는 또 얼마나 좋아졌는가?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 측의 외교적 입장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유연함과 애매모호함 등으로 주변국들이 저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관심으로 지켜볼 정도로 "외교다운 외교"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불현 듯 너무나도 당혹스럽게 바뀌더니, 급기야 "지금 외교는 전혀 민주당 정부의 외교답지 않다. 마치 자유한국당의 외교와 같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갑자기 급전직하 되었을까?
이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언론들은 "최근 여권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정부 소식통은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구상하고 조율해야 할 안보실이 현안 대응과 의전·일정만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며 "이런 분위기는 한 회의에서 안보실에 답답함을 느낀 문 대통령이 현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전략과 비전'을 주문했으나, 안보실이 다시 '의전과 일정'에 대한 보고를 되풀이했다는 '일화'로도 전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보도는 외교특보로서 대선 및 당선 이후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볼 때, 아쉽게도 국가안보실의 "첫 단추"를 낀 순간부터 어렵지 않게 예측될 수 있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번 생각해 보자.
현재의 국제정세는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20세기에는 약소국에 불과했던 우리가 오늘날에는 중견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될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닌, 중견강국으로서의 외교 프레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과연 어떤가? 위에서 언급한 <한겨레>에 의하면, "복수의 소식통은 <한겨레>에 80여 명의 안보실 인력 가운데 관료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가 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이 큰 요인이라고 꼽았다. 안보실 내 외부 출신은 1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관성이 압도적으로 강한 인적 구성에서 새로운 정책과 비전이 나오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라고 하고 있다.
즉,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중견강국 대한민국은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외교"의 토대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현실은 과거에 익숙한 인적 구성 등으로 인해 "낡은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낙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앞서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새 정부"라는 딱지를 떼지도 못한 상태가 아닌가. 더 어긋나기 전에 새로운 인적 구성과 정책 등으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떠한 외교를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1995년부터 2017년 초까지 일본, 미국 그리고 중국 등을 비롯한 다양한 해외 현장에서 거주하는 가운데 체득하게 된 바를 토대로 "밖에서 바라본 21세기 대한민국 외교 : 문재인 정부가 지향해야 할 그랜드 외교 전략"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1. "조류(鳥類)외교"를 지향하라!
먼저, 우리는 "조류(鳥類)외교"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왜 조류외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조류 외교, 즉 새를 형상화한 외교야말로 한반도의 지정학상,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왼쪽 날개, 즉 '좌익(左翼)'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대륙세력을, 오른쪽 날개, 즉 '우익(右翼)'에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해양세력을 가진 한반도가 아닌가. 새는 양쪽 날개의 힘과 크기에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이뤄져야만 비상할 수 있듯이, 새의 몸체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한반도에도 이와 같은 역학 논리가 적용된다.
다시 말해, 어느 한쪽 날개가 기형적으로 크고 강하거나(즉 한 곳에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혹은 작거나 약하면(즉 한 곳을 지나치게 경시하면) 균형이 깨어져 한반도는 비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의 동북아 국제정세와 21세기 문재인 정부가 놓여 있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20세기 당시는 이데올로기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북으로 분단되며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된 한국으로서는 싫든 좋든,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미국위주의 외교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외교 전략의 방향을 놓고 토의할 대안조차 전무한, 오로지 오른쪽 날개(미국) 위주의 이른바 '남방 3각 안보협력체제' 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미․일 남방 3각 안보 협력체제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빚어낸, 냉전 상태에서 유효했던 체제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어떤가? 우선, 냉전은 종식된지 오래됐다. 아울러 그동안 대립하고 적대시했던 왼쪽 날개의 한 축인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여 우리의 제1의 교역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지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오른쪽 날개보다 왼쪽 날개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소리마저 분출될 정도가 되었다. 이는 곧 현재의 우리는 좌와 우를 골고루 아우르는 외교 정책이 절실한 시기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쪽 날개에만 치중하게 했던 상황은 냉전 종식 등과 더불어 이미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건에 부합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한다. 즉, 현재의 우리에게는 미국이니, 중국이니 하는 어느 한 편을 들기 보다는 모두를 아우르는 가운데 비상할 수 있는 '조류외교'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2. "돌고래 외교"를 지향하라!
다음으로 "돌고래 외교"가 필요하다. 돌고래는 비록 고래보다는 덩치가 작지만, 스마트함과 민첩함 등으로 덩치가 큰 고래와의 공생을 유도해 나간다. 한국 외교에도 이러한 요소가 필요하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G1인 미국, G2인 중국, G3인 일본 등도 생존경쟁을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고려시대 때나 조선시대 때는 분단되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번히 침략당하고 식민 지배 또한 당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현재의 우리는 분단국가의 상태에 놓여 있다.
남북이 힘을 합쳐도 주변의 대국들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거늘,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은 또 동서로 나뉘었고 여당은 친문이니 비문이니, 야당은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안타까운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G1, G2, G3에 잘 대처하고 그들과 윈-윈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현재의 우리는 더 이상 6.25 직후의 약소국이나 최빈국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속에서 중견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새우등 외교나 혹은 샌드위치 외교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스스로를 20세기 약소국이라고 판단하고, 이 때의 외교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돌고래가 고래와의 상생을 유도하며 살아나가는 것처럼, 고래들인 G1, G2, G3 등 사이에서 국익의 균형점을 잘 찾아 조율하며 이끄는 가운데 우리 국익도 최적화시켜 나가는 스마트하며 민첩한 돌고래 외교가 절실하다.
3. "홍익중용 외교"를 지향하라!
현재의 대한민국은 "홍익중용 외교(弘益中庸外交)"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홍익중용"이란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弘益)과 중국 고대 사서의 하나인 중용(中庸)을 융합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먼저 홍익이란, 주지하다시피 "세상에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써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이다. 다음으로 중용이란, 사서의 하나인 <중용>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의 핵심 개념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도리에 맞는" 혹은 "이성과 지견(智見)으로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함"을 의미한다.
이로써 유추할 수 있듯이, "홍익중용외교(弘益中庸外交, Bebefit All By Moderation Foreign Policy )"란 세계적으로는 모든 국가에 골고루 이익이 되도록 하는 홍익외교를 표명함과 동시에 특히 동북아에서는 관련 각국의 국익이 과대도 과소도 아닌 올바른 中이 되도록 협력과 통합을 이끄는 중용외교를 지향하자는, 21세기 중견강국 대한민국의 스마트 외교 전략이라 할 수 있다(이 홍익중용 외교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보다 더 상세히 밝힐 예정이다).
4. "중국 및 러시아 활용외교" 를 강화하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중국 및 러시아 활용 외교를 강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먼저,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과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 중국에 대한 적지 않은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살면서 한국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중국과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중국에 대한 인식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21세기 현재의 중국에 대해 아직도 과거로부터 기인한 다양한 편견과 선입견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에게 남다른 기회의 땅이요 "보물단지"인 중국을 "애물단지"로 여기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그것도 매우 절실하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을 제대로 간파하고 중국을 정치경제적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드 문제만 해도 우리가 중국의 표면적 모습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그 속내를 보다 더 면밀히 간파해내면 우리의 우려만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어려울 일만은 아닐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중국전문가 양성 또한 절실하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동안 소홀히 해 온 러시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 역내에서 그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옅었다.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이나 성장 잠재력 그리고 주변국과의 복잡한 관계 및 한러 관계 강화에 대한 러시아 측의 열망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북한의 도발 등으로 인해 점점 더 암울해져 가는 동북아 정세를 호전시킬 돌파구가 될 수 있다. (☞ 관련 기사 : 문재인이 야심차게 준비중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이러한 맥락에서 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새 정부의 새로운 외교로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를 비롯한 북방지역을 대상으로 중견강국 대한민국 외교의 역량을 새롭게 펼쳐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 및 중국 그리고 일본 등에 대해 착목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세심히 다져 온 정계의 "동북아 통"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임명 역시 새로운 외교를 전개할 인물로서 손색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잘 끼워진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거울삼아 잘못 끼워진 분야의 인적 구성도 새롭게 함으로써 잘못 나아가고 있는 외교를 속히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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