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믿기 힘들었다. 그들이 '하청정치'를 끝내겠다며 모였을 때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런 행태 또한 이전에 보였던 환경적응력의 소산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동년배의 정치인들이 자치단체장에 당선되면서 나온 40대 기수론에 무임승차 하려는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486 단일화가 사실상 무산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들은 여전히 부평초다. 뿌리를 땅에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는 존재다.
▲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섰던 486 세후보. 왼쪽부터 백원우, 최재성, 이인영 후보 ⓒ연합 |
돌아보면 그렇다. 486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학생운동판에서 정치판으로 급행열차를 탄 사람들이다. 잠깐 사회 경험을 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 역시 생활현장에 뿌리를 내린 게 아니라 단지 정거장으로 삼았을 뿐이다. 이게 원인이다. 486의 정치행태를 규정하는 주요인이다.
486은 '하청정치'를 끝내겠다고 했지만 끝낼 수 없었다. 그들은 독자적인 원천기술도, 독자적인 판로도 갖고 있지 않았다. 생활현장에서 경험을 충분히 숙성시키지 못함으로써 책 속의 이론을 내면화할 바탕을 갖추지 못했고, 경험을 정치 컨텐츠로 전환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고, 같은 판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대중들을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만들 여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공학적 행태로 일관한 것이다. 자기 철학을 갖고 일관된 태도를 견지해야 할 때 순간의 임기응변력을 발휘한 것이다. 원칙을 갖고 현장을 관찰해야 할 때 감으로 '짱'을 본 것이다. 가치가 없으니 이해관계에 집착한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486은 자신들의 성과물에 옥죄이는 아주 묘한 처지에 빠져버렸다. 6월항쟁의 주역으로서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그들이 자신들의 성과를 탐닉하는 데 급급해함으로써 이후를 대비하지 못했다. 성과에 탐닉하면서 이후를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 이후 부상하는 '생활진보'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지 못했다.
그 귀결이 바로 '오늘'이다.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면서도 어떤 깃발을 들지 정하지 못하는 오늘의 행태, 하청정치 종식을 다짐하면서도 원천기술을 내놓지 못하는 오늘의 처지, 원천기술이 없다보니 동업의 여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은 강제된 게 아니라 자초한 것이다. 2008년 총선 때 대거 낙선하면서 '하방'을 강제 당했는데도 여의도 정가를 어슬렁거린 어제의 행적이 오늘의 꼴불견을 낳은 것이다.
덕분에 자명해진 건 있다. 486이 연출한 궁색한 풍경 때문에 민주당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문호를 열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생활현장에서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일로매진해온 사람들을 영입해야 하고, 그들의 경험과 철학을 생활진보정치 컨텐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요원하다. 그런 사람들은 부동자세를 풀고 있지 않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경계지점에서 부동자세를 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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