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체벌 규정 조항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일부 교장들이 이에 반발해 집단 퇴장하는 등 '체벌 전면 금지'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2010년 8월 19일자 <프레시안> 기사 '곽노현 체벌 금지 시동..." 중)
최근 교사의 가혹한 학생체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7월 2010년 2학기부터 모든 유·초·중·고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위 인용기사처럼 교육 현장의 일부 교장들을 비롯한 교사들은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들어 체벌 전면 금지에 반발하며, 필요한 경우 체벌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0년 플로리다의 한 중학생, 연방법원에 소송 제기
미국사회에서도 학생체벌 문제는 종종 격렬하게 논의되는 주제이다. 1977년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사건이 미국 연방대법원에까지 올라갔다.
1970년 10월 플로리다주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14살의 제임스 잉그래함은 친구들과 학교 강당 무대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것을 본 한 선생님이 어서 내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제임스와 친구들은 바로 내려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은 제임스는 친구들과 함께 교장실로 불려가 엉덩이를 20대 정도 맞았다.
병원에 가서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잉그래함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교장선생님을 피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 학생은 주법원에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교장에 의해 자신의 헌법상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인 제임스가 주장한 헌법상 근거는 두 가지. 미국 헌법 8번째 수정조항과 14번째 수정조항이 그것이다. 제임스는 미국 헌법 8번째 수정조항에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을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을 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14번째 수정조항에서는 국가기관이 개인의 자유 등 권리를 박탈할 때에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그가 그런 절차 없이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처벌을 받았기에 자신의 헌법상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표 차이로 연방법원에서 패소
그러나 연방법원은 5-4의 판결로 제임스의 편에 서지 않았다. 첫 번째, 제임스가 기댄 8번째 수정조항에서 이야기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을 헌법상 금한다고 하는 것은 형사범을 처벌할 때 적용되는 규정이지 모든 처벌에 해당하는 규정이 아니라고 한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처벌에까지 8번째 수정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수 의견을 대표해서 판결문을 쓴 포엘 판사는 또 학교에서는 체벌이 남용될 가능성이 적고, 학교는 교도소등 형법상 기관과 달리 개방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안전장치들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적다고 하였다.
그리고 14번째 수정조항에서 명시되어 있는 '정당한 법적'절차에 대해서는, 체벌로 상해를 입었다면 민사 혹은 형사 소송을 제기하여 법적인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헌법상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헌법상 '정당한 법적 절차'의 하나인 '청문회' 같은 것을 학교에서 체벌을 가해야하는 상황마다 보장해야 한다면 비용과 시간 면에서 지나치게 소모적인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하여 4명의 판사들은 반대의견에 섰다. 반대의견을 쓴 화이트 판사는 8번째 수정 조항이 형사범 처벌의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명시적 문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조항을 형사범 처벌 조항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8번째 수정 조항이 형사범을 염두에 둔 내용으로 해석될 순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1791년에는 공립학교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학교 체벌이라는 상황이 당시에는 예상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화이트 판사는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처벌할 경우,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리고 학생이 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경우 처벌에 앞서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헌법상 보장된 바른 법적 절차를 보장한 것이라고 하며 원고인 제임스의 14번째 수정조항에 기댄 주장을 지지하였다.
화이트 판사는 다수 의견에 의할 것 같으면, 교도소의 죄수를 야만적인 대우와 처벌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같은 대우를 당한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다수 의견과 같이 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결국 5-4라는 한 표 차이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학교에서의 체벌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도 아니며 체벌과정이 14번째 수정조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30개주에서 학생체벌 금지…20개주에선 허용
그러나 이 판결이 미국 전역에 학생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판결문에서도 단지 8번째 수정조항과 14번째 수정조항에 의거하여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 것이지, 체벌의 교육적 효과 운운하며 학교에서의 체벌을 전면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다수 의견을 쓴 포웰 판사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체벌이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위 사건이 일어난 플로리다주 다데 카운티에서도 학교에서 학생에게 체벌을 할 경우 나무로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하여야 하며 그 도구의 길이는 2피트가 넘지 않아야 하고, 넓이는 4인치 그리고 두께는 1과 1/2인치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법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벌을 가하기 전에 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학생체벌에 관해 각 주가 자체적으로 관련 법령을 만들어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30개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학생체벌을 주법으로 금하고 있다. 반면 주로 남부에 위치한 20개 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의 학생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인 1867년 학생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뉴저지주와 아이오와주에서는 사립학교에서도 학생체벌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체벌이 가능한 주의 학교에서도 핸드북 등을 통해서 체벌에 관한 규정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고 있으며 체벌 방법과 정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 학생에게 체벌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학교라 할지라도 학생들이 체벌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벌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위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학생체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학생체벌이 가능한 학교라 할지라도 학생들을 교장실에 가두어 놓고 20대를 때리는 것과 같은 일이 또 다시 미국사회에서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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