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일요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앞당겨진 느낌이다. 우연인지 마침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여파를 생각하던 중 인터넷에서 뉴스를 확인한 순간, 알 수 없는 냉소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복잡한 국제관계의 역학구조를 한미동맹이라는 한축에만 의지하여 풀어나갈 수 있다고 단순하게 믿은 우리 정부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였다. 북핵위기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한반도라는 유기체가 지속적인 긴장상태에 시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긴 암 덩어리가 북핵인 것이다. 스트레스의 직접적 원인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 신냉전시대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격돌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국면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의 북핵위기는 대단히 위중한 상태이다. 특히 이번 6차 핵실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의 핵무기는 가공할 위력과 함께 소형화에 근접해가고 있다. 이제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하는 소위 레드라인 (red line)도 머지않았다. 그럼에도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책은 안일하다 못해 낭만적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응징 천명, 청와대 안보실장과 백악관 안보실장 사이의 상호 공조 다짐, 그리고 군의 대응 훈련 착수가 고작이다. 조만간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잠시 배치되고 유엔안보리에서 재차 북한에 대한 제재 결의가 통과되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을 통해 이를 추인하는 기묘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30년 전 방식으로 급속히 커가는 암을 잡아 보겠다며 마치 시체해부를 하듯 온 몸을 난도질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에서 죽어나는 것은 우리 국민이다.
북핵위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일차적 원인은 정밀한 북핵 대응 외교 로드맵이 없어서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이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중국과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사실 6차 핵실험은 사드 문제로 발생한 한중 관계의 괴리를 북한이 파악하여 그 허점을 찌르며 들어온 결과이다. 우리와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중국도 속내가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지난 8월 30일자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등 뒤에서 비수를 꽂았다 (Stabbing in the back)"라고 강경한 어조로 맞선 바 있다.
특히,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 따라서 사드 문제에 대한 미중 간 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 갈등이 한국-중국-미국 사이의 전략적 소통을 중단시켰고, 이러한 갈등 국면을 북한이 보란 듯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을 좀 더 적극적으로 대북 압박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규모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재고해야한다. 한반도와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국은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 중국의 기본적 입장은 핵실험과 합동군사훈련의 상호 중단 (suspension-for-suspension) 이다. 협상의 일방 당사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절실한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다. 북핵 해결 여정의 운전석에 앉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중 양측을 기민하고 신속하게 접촉해야할 것이다.
한없이 복잡해 보이는 북핵문제도 일정한 작동 원리가 있다. 따라서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외교적 로드맵을 통해 차근차근 대응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남북한과 미중 사이의 극한 대치를 해소하고 단절된 대화 채널을 재개하기 위하여 유엔을 통한 제3자 거중조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구축된 새로운 틀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당사자 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979년 발트하임 유엔사무총장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주선(good office)을 한 예가 있다.
현재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술핵무기도 전략자산도 아닌 한반도 평화담론의 구축이다. 하지만 평화 논의 과정의 뒤에는 외교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평화=종북, 균형외교=반미'라고 매도하는 적폐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놀랍도록 외교안보적폐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겉으로는 북한을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북핵을 통해 전쟁위기를 부추기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반평화 적폐세력의 청산이 북핵문제 해결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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