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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강간범, 밉지만 사형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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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강간범, 밉지만 사형은 안돼!

[아메리칸 코트 ①] 살인 아닌 아동 강간, 당신의 생각은?

미국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왜' 미국을 알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사회를 알고자 한다면, 법정을 통하는 게 중요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할 뿐이다. 법정에서의 다툼이 마치 예능프로그램처럼 TV로 중계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만큼 미국사회에서는 많은 일들이 법정을 통해서 드러나고, 다투어지고, 해결된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국의 변화를 이끌고, 변화를 막는 큰 사회적 힘이다. 미국은 한국과 역사, 전통, 문화가 다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하며, 갈등하며 또 때로 싸우며 산다는 점에서는 같다. 미국에서 뜨겁게 논쟁이 되고 있는 내용이 한국에서도 논쟁의 주제가 되곤 한다. 한국에서 갑론을박되는 문제들과 유사한 문제들이 미국 법정에서 해결된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법정의 판결이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판례의 근거로서 직접 사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논리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한국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다듬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법정을 통해서 미국사회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연재의 '취지'이다. <필자 주>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는 성범죄 사건이 늘어나면서, 우리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약해 계속 성범죄가 터지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지난해 7월 살인과 성범죄를 포함하는 8대 중범죄의 형벌기준을 정한 '양형기준제' 도입 이후 성범죄의 형량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엽기적이고, 피해자의 나이가 어리고 육체적 피해가 심각한 경우, 사회적으로 매우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아동 성범죄자에게 사형을 부과하는게 마땅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런 사회적 공분을 바탕으로 아동 성범죄자를 상대로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루이지애나 주 아동 강간범의 위헌 소송 제기

한국 못지 않게 미국 사회에서도 아동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2008년 6월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5대4로 루이지애나를 비롯하여 다른 다섯 개 주에서 아동 강간범에 대하여 사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주 형법으로 12살 이하의 어린이를 강간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이어 조지아, 몬타나, 오클라호마,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리고 텍사주에서는 강간의 전력이 있거나 초범이라 할지라도 가중처벌할 만한 요소가 있을 경우 어린이를 강간한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아동 강간범에게 사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주 형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낸 사건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아동 강간범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두 사람 중 하나인 패트릭 케네디라는 이름의 범죄자가 자신에 대한 사형언도가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비롯됐다. 케네디는 2003년 자신의 8살짜리 양딸을 강간한 혐의로 루이지애나 주 형법에 의하여 사형언도를 받았다. 범죄행위가 매우 잔인해 피해자인 양딸은 큰 외과수술을 받을 만큼 심한 육체적 상해도 입었다.

케네디가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루이지애나 주 헌법이 위헌이라 주장한 헌법상의 근거는 8번째 수정조항이다. 미국 헌법 8번째 수정조항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보석금과 벌금, 그리고 잔인하고 이례적인 형벌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되어있다. 비록 자신이 아동을, 그것도 양딸을 강간한 범죄자이지만 사형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이례적인 형벌이라는 것이 케네디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살인이 아닌 범죄행위에 사형을 언도하는 것은 '위헌'

공교롭게도 범죄자와 같은 성을 가진 앤쏘니 케네디 판사가 다수 의견을 대표하여 범죄자 케네디의 주장을 옹호하는 판결문을 썼다. 그는 판결문에서 8번째 수정조항은 살인이 아닌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형을 언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의도된 1급 살인행위와 아무리 잔인하다 할지라도 살인으로 귀결되지 않은 범죄행위는 형량에 있어서 구분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다.

그리고 특정 범죄에 사형을 언도하는 일을 국가적 합의에 의거하여야 하는데, 아동 강간범에게 사형을 가능하게 하는 주 형법은 6개 주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들어 그 문제에 관하여 국가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음이 판결문에서 지적되었다.

또 케네디 판사는 2005년 한해만 해도 5702건의 12살 이하 아동에 대한 강간 범죄가 일어났음을 지적하며, 이 모든 범죄자에 사형판결을 내리는 것은 자의적일 수 있는 판결의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국가의 형법체계에 지나치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그의 논리는, 아동 성범죄의 경우 가족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에게 사형까지를 언도할 수 있다고 하면 피해자인 어린이가 자신에게 비록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아버지 혹은 오빠나 삼촌을 사형까지 받도록 하는 증언을 하겠느냐 하는 문제제기이다. 오히려 사형이라는 가혹한 형량이 사건을 감추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판결문을 통해 아동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어린 아동이기 때문에 그 증언을 믿기 힘든 경우도 많다고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판결에 반대 의견 표명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낸 알리토 판사는 케네디 판사를 비롯한 다수의 위 의견은 실제로 사형이 아동 강간이라는 범죄의 성격과 내용 비추어 "잔인하고 이례적인가"를 물어 본 법률적 주장이 아니라 일종의 '정책적 주장'이라고 비판하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판결이 나온 후 정치인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 판결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있었다. 당시 유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아동에 대한 강간 범죄는 매우 흉악한 것이므로 신중하게 법을 적용한다면 사형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아동 강간범일지라도 무조건 사형은 안 된다고 한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소수에 속하는 사형제 존속 국가이다. 그런데 미국 연방 대법원은 살인범이 아닌 한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것은 형량 부과의 균형성을 고려할 때 옳지 않다고 하며, 아동 강간범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루이지애나 주를 비롯한 몇몇 주의 형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최근 잔인한 아동 성범죄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도 이들 강간범에 대해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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